버락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했다. 쉽게 압승을 예상했던 연초 분위기와 달리 막판까지 힘겹게 롬니와 접전을 벌인 결과 얻은 신승이었다. 미국의 대선은 영화로 치면 큰 제작비가 들어가는 블록버스터같이 현재 가장 첨단의 정치기술들을 총망라해서 펼치는 버라이어티쇼 같은 느낌이다. 특히 선거의 시작점과 같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당대회는 단순한 정치행사가 아니라 감동과 재미를 한꺼번에 주는 아카데미 시상식과 유사하다. 전당대회의 마지막 순서에 후보지명을 수락하기 위해 등장하는 대통령 후보의 모습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기 위해 나오는 배우나 감독처럼 멋있다.
우리나라도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3명의 후보가, 물론 2명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현재로선 매우 높지만, 최후의 승리를 향해 필사의 힘을 다하고 있다. 결국 최후에 웃는 사람이 누가 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정치의 계절답게 정치적인 색깔이 강한 영화들이 개봉되고 있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MB의 추억>이나 <맥코리아> 같은 다큐에서부터 곧 개봉될 <남영동1985> <26년> 등은 분명 선거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인도 출신의 작가이자 정치평론가 디네시 디수자가 만든 정치다큐 <2016 오바마의 미국>이 처음 텍사스의 극장 한곳에서 개봉했지만 점차 보수주의자들의 큰 호응을 얻으면서 개봉 한달 만에 극장이 800여개로 늘어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는 예전에 부시의 재선을 막기 위해 마이클 무어가 <화씨 9/11>을 만들어 개봉한 것과 반대 지점에 서 있다. 비록 그의 목적대로 오바마의 재선을 막지 못했지만, 최소한 오바마로 하여금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게 하는 데는 나름 기여했다고 본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도 그걸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미국사회가 조금은 부러웠다.
누구를 닮았다고 해서 방송 출연이 금지되고, 국가의 권력자를 비하했다고 해서 영화의 제작과 상영이 불가능했던 이전 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사실 그런 금기들이 많이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TV토론에 나온 패널들은 상대방의 얘기를 듣지 않고 서로를 비방하기에 급급하다. 누가 심하고 누가 덜하고의 문제를 떠나 서로의 얘기를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토론 프로그램에서 재미를 못 느끼고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얼마 뒤면 대선 후보들의 TV토론이 열린다. 이번은 조금 재미있는 토론회가 가능할까? 3명의 후보들이 나왔던 모 방송국의 예능프로그램을 사실 다 재미있게 보았다. 그들이 만일 그때만큼의 진실성과 유연한 자세로 TV토론에 임한다면 왠지 자기 할 얘기만 하고 남 얘기는 듣지 않는 고리타분한 토론회는 아닐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3명의 대선 후보와 모두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험이 있는 개그맨이 토론회의 사회를 본다면 확실히 분위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우리가 극장에서 접하는 한국의 정치영화들은 최소한 TV 정치프로그램보단 유쾌하고 진실되고 용기있다. 영화와 영화인의 정치적인 목소리는 그래서 계속 진행형이어야 한다.
<2016 오바마의 미국>(2016: Obama’s America)을 연출한 디네시 디수자는 작가이자 정치평론가다. 과거 레이건의 보좌관으로 일한 그는 현재 뉴욕 킹스대학의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 영화는 그의 책 <오바마의 분노의 근원>(The Root of Obama’s Rage)을 바탕으로 연출됐다. 감독은 하와이, 인도네시아, 케냐 등 오바마가 나고 자란 곳을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오바마가 제3세계를 착취하며 성장한 선진국에 분노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2016 오바마의 미국>이 묻는 건 과연 오바마가 재선할 경우, 4년 뒤의 미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다. 영화는 오바마의 정책이 미국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고 국가부채를 20조달러나 늘릴 수 있다고 예상한다. 로튼토마토의 전문가들이 매긴 신선도는 27%. 관객이 평가한 신선도는 75%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