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말의 정의감이 아니라 의무감 때문이었다.” 진구는 강풀의 웹툰 <26년>을 접하기 전까지 “5.18이니 4.19니, 이렇게 날짜로 기억되는 일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부모님이 모두 전라도 분이지만 부모님에게서 먼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들은 기억도 없다. 4년 전, 영화사 청어람에서 웹툰 <26년>을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을 들은 진구는 웹툰을 보고 뒤늦게 그날의 아픔을 간접 경험한다. 일종의 부채의식은 “나같이 진실을 몰랐던 사람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발전했다.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먼저 영화사에 매달렸”던 건 그래서다.
당시엔 주인공 곽진배 역할도 아니었다. 역할의 크고 작음보다 중요한 건 참여한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그 선한 마음이 통했는지 진배는 결국 진구의 몫이 됐다. 진배는 웹툰에서 영화로 옮겨오면서 가장 많이 변한 인물이다. 조근현 감독은 진배를 통해 영화에 쉼표를 찍기 원했다. 그리하여 진배는 거칠고 냉정하고 무서운 조폭에서 까불기도 잘 까불고 정도 많은 인물로 바뀌었다. ‘거사’를 위해 모인 5명의 인물(진배, 미진, 정혁, 갑세, 주안) 가운데 가장 가벼워 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진구는 그런 진배를 “인정사정이 참 많은 친구”, “다섯명 중에 제일 어른스러운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 모습이 더 슬프고 아픈 것 같다. 사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니까.” 진배의 마음 한켠엔 늘 가족이 있다. 남편을 잃고 삶이 망가진 아픈 엄마가 있다. 하지만 진배는 자신의 상처는 가슴에 묻어두고, 상처가 불거져나온 다른 동료들을 먼저 챙긴다.
사람들한테 자신의 알맹이를 드러내지 않고, 정이 많고, 장난치기 좋아하는 진배의 모습은 사실 진구의 본모습이다. <비열한 거리> <마더> <모비딕> 등에서 어둡고 비밀이 많은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왔지만 현실에서의 진구는 밝고 건강하고 개구지다. 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26년>을 찍으며 남은 기억은 장난과 탈진, 두개밖에 없다”고 했다. 폭염과 싸우며 촬영하다 세번 탈진하고 응급실에 실려갔던 일, 이경영과 함께 번갈아가며 현장의 분위기를 띄웠던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다른 배우들은 감정 신이 많은데 난 그렇지가 않으니까, 이경영 선배님과 함께 현장에서 장난치고 까부는 역할을 도맡았다.” 진지하지 못하다고 조근현 감독이 눈치주진 않았을까? 조근현 감독과는 쿵짝이 아주 잘 맞았다. 유독 자신에게만 칭찬이 인색한 감독에게 “내게도 한번만 칭찬해달라” 그러면, 감독은 “너는 틀렸다”는 말로 화답하는 식이었다고. “중요한 장면을 찍을 때도 감독님은 ‘네가 알아서 해라’고만 하셨다. 본인은 (한)혜진이 챙겨줘야 한다면서. 그러면 난 괜히 삐친 척하고, 촬영 끝나면 또 감독님과 둘이서 몰래 술 먹고. 그런 현장이었다. (웃음)”
‘알아서 잘하는 배우’가 되기까지 좌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행이라면 좌절을 일찍 경험했다는 거다. “<올인>으로 데뷔했을 때 세상이 쉬워 보였다. 혜성 같은 신인이 나타났다, 어디서 찾은 보물이냐, 이런 평을 들은 것은 물론이고 드라마 출연 2주 만에 광고도 세개쯤 찍었다. 그런데 그 뒤 2년 동안 변변한 작품 없이 놀았다. 좌절을 했다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백지수표에서 부도수표가 된 건 한순간이었지만, 진구는 좌절하는 대신 부단히 움직였다. “백지가 먹지가 됐지만 그 먹지에 꾸준히 반짝이 별도 박고 하트도 박았다. 그리고 별 하나, 하트 하나 붙이는 게 전혀 힘들지 않았다. 연기가 재밌으니까.” <26년> 이후의 행보는 아직 미정이다. 다만 진배가 퇴로를 확보하지 않고 내달렸던 것처럼 진구도 앞만 보고 내달리리란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참고로, 퇴보 없는 전진을 해왔다 자부하는 진구의 꿈은 배우로 잘 늙어 100년 뒤에 위인전에 실리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