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인 정호(이동규)는 집필을 위해 어린 시절 자신이 살던 시골집으로 내려와 있다.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동네 풍경을 담던 그는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사촌누나에 관한 비극적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연히 캠퍼스에서 대학교수인 아내 지수(김진선)를 기다리다 첫사랑 사촌누나와 닮은 여대생 혜인(한하유)을 만난다. 정호는 혜인에게 자신의 소설 속 인물이 되어줄 것을 청한다. 혜인은 정호가 건넨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소설가의 첫사랑이 되어 정호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정호는 그녀에게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날 정호의 아내 지수는 자신의 집에 젊은 여대생이 들락거리는 것을 목격한다. 남편과 혜인의 관계를 의심하게 된 지수는 질투를 넘어 집착에 가까운 행동들을 보이고, 세 사람의 갈등은 점점 고조된다.
제목을 끝까지 잘 기억해야 한다. <롤플레이> 속 인물들은 모두 ‘역할놀이’를 하고 있다. 관객에게 첫 번째로 제시되는 건 혜인이 정호의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역할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종반에 이르면 또 다른 누군가가 정호에 의해 역할놀이를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마지막 반전은 눈치빠른 이라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이다. 영화는 또 현실의 이야기와 정호의 소설 속 이야기를 모호하게 배치해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가상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이것은 도리어 서사의 듬성듬성한 구멍을 노출신과 정사 신으로 무마하기 위한 수법으로 비친다. 에로틱스릴러 장르를 표방했지만 도발적인 건 소재뿐이다. 과감하게 노출을 감행한 여배우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에로틱이라기엔 지루하고 스릴러라기엔 이야기가 너무 엉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