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우리의 지난 영화들은 이 영화로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
2012-12-25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사진 : 백종헌
<클라우드 아틀라스> 공동 연출한 톰 티크베어, 워쇼스키 남매

-어떻게 세 사람이 뭉치게 됐나.
=톰 티크베어_감독으로서 서로 사랑에 빠졌다고나 할까. 친구로 지낸 지는 오래됐지만, 감독이란 자기 세상에 갇혀 살기 쉬운 존재다보니 함께 일할 기회가 없으면 우정을 이어가기가 힘들다. 그래서 공동작업을 결심하게 됐고, 일하면서 전보다 더 관계가 깊어졌다. 그전부터 예술이나 영화, 미디어를 이해하는 방식에 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도 했지만, 우리를 이어준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물론 원작에 대한 열정이었을 것이다.

-각기 다른 시대와 공간을 배경으로 한 6개의 이야기가 퍼즐처럼 엮여 있다. 각색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
=앤디 워쇼스키_생각보다 쉽더라. (웃음) 농담이고, 원작 자체가 워낙 구성이 뛰어나서 각 이야기의 내적 연관성을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영화화를 위해 초반에 소설의 내용을 해체한 다음 그것들을 다시 연결해나갔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마치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각색, 촬영 때는 물론이고 편집 때도 그전에 보이지 않았던 접점이 계속 보이더라.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 전체가 그런 연결고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이었다.

-펀딩에 어려움이 많아서 직접 투자까지 했다고 들었다. 우여곡절에도 이 프로젝트를 끝까지 성사시킬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얻었나.
=(일동) 사랑이다.
앤디 워쇼스키_4년 동안 매일 16시간씩 무보수로 일했다. 오로지 사랑의 힘으로 버틴 거다.

-캐릭터들로 하여금 다양한 인종, 성별, 시대를 아우르도록 하는 문제가 감독님들에게는 왜 그토록 중요했나.
=라나 워쇼스키_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나고 자란 톰과 우리가 이렇게 사랑에 빠진 것도 놀라운 일이지 않나. 삶과 관계에 대한 관습적인 이해를 뛰어넘는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전화를 들어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세상에 살고있다. 그런 결합을 바탕으로 한 휴머니티야말로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가치인 것 같다. 물론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 세계를 어떤 틀로 분리하려는 목소리가 존재하지만, 그런 목소리에 따르다보면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거나 한 인종이 다른 인종을 통제하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 반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할 것이다.

-인연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번 영화를 통해 인연에 대해 더 깊이 느낀 바가 있다면.
=톰 티크베어_이 영화를 만들면서 느꼈다. 그동안 우리가 따로 만들었던 영화들은 <클라우드 아틀라스>로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구나. 의미나 구조, 사유방식, 미학적 선택 모든 측면에서 그랬다. 재밌는 사실은 이 두 감독의 <매트릭스>와 내 영화 <롤라 런>이 1999년 같은 달에 개봉했었다는 점이다. 더 놀라운 건 두 영화 모두 남자주인공이 죽은 뒤 여자주인공의 사랑으로 부활한다는 내용이었다. 두 영화 모두 물리적 한계를 초월하는 사랑의 힘에 대해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었던 거다. 그걸 보며 우리가 예술적으로 뭉치면 뭔가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정말로 같이 작업하기까지는 수년 동안 러브레터만 주고받는 시간이 있었지만.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신기한 방식으로 만났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의 인물들이 연결돼 있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끌린 면도 있을 것이다.
라나 워쇼스키_부연설명을 좀더 하자면 이 영화에 그런 대사가 나온다. “존재하는 것이란 곧 지각되는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 조지 바클리가 한 말로,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으로 받아들여져야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누구도 혼자 인간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에서 사랑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이고, 인간관계의 핵심이다. 사랑이란 나르시시즘적인 자아를 버리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며, 그런 사랑은 종의 한계를 초월해서도 가능할 수 있다.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건 예술이 그런 사랑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톰 티크베어, 라나 워쇼스키, 배두나, 짐 스터지스, 앤디 워쇼스키(왼쪽부터).

-2144년의 네오 서울이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장혜주의 방은 일본풍의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그런 방식으로 네오 서울을 그린 까닭이 궁금하다.
=앤디 워쇼스키_네오 서울을 한국인의 관점에서 묘사하지는 않았다. 그건 데이비드 미첼의 책을 통해 우리가 상상해낸 것으로, 지구 온난화와 같은 전 지구적 활동에 대한 결과로서 나타난 미래의 어느 도시라고 하는 편이 맞다.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도시 방어벽을 높이 쌓아올린 풍경이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럴듯해 보였다. 그외의 디테일한 묘사에 대해서는 어떤 문화권이든 시간이 지나면서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만큼 가능성을 열어두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혜주의 방이 일본식인 것도, 일본이 바다 밑에 가라앉아 모든 일본인이 한국으로 이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런 비주얼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것 아닐까.
라나 워쇼스키_우리가 영화를 만들며 미학적 선택을 하듯이 관객도 영화를 보며 어떤 선택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장혜주의 방이 그렇게 보였다면 그 또한 영화에 묘사된 방 안 풍경을 한국적인 것, 일본적인 것, 중국적인 것 등으로 분류하고 싶은 관객의 욕망의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이란 그런 관습적인 경계를 초월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 그로 인해 어쩌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경계 없는 세계를 상상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배두나는 어떻게 알고 캐스팅했나. 함께 작업해본 소감도 궁금하다.
=라나 워쇼스키_<고양이를 부탁해>를 보고 ‘와, 저 여배우는 누구지’ 하고 놀란 적이 있다. 그 뒤로도 두나의 출연작들을 다 챙겨봤는데 모두 좋은 감흥을 받았다. 이번에는 특히 한국 배우가 손미를 맡아줬으면 했기에 자연히 그녀를 떠올렸다. 다만 그녀가 영어를 할 수 있는지 몰라서 스카이프로 첫 만남을 갖고 시카고에서 오디션을 한번 더 봤는데, 영어 구사에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기 자체는 놀라웠다. 사슴처럼 순수한 느낌이면서도 나중에는 혁명을 이끌 수 있을 만큼 터프한 면도 있어야 했는데 여러 가지 면을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잘 표현해줬다. 그녀의 연기는 아주 솔직해서 그녀와 렌즈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영화에서 6개의 이야기를 묶어주는 테마곡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를 톰 티크베어 감독이 직접 작곡했다고.
=톰 티크베어_이 영화의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음악적 비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감정과 의미를 배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음악이 영화의 이정표였던 셈이다. 크로마키를 배경으로 계속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의 배우들에게도 음악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연기해야 할지 알려주는 큐 사인이 돼줬다. 다른 한편으로는 음악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였다. 인물들이 6개의 시공간을 거치며 변화를 거치듯, 음악도 6개의 이야기를 통과하면서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아시아권 관객에게는 윤회설이 다소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톰 티크베어_지만 한국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저런 거 본 적 있어’라는 반응을 보일 것 같지는 않다. 윤회설을 다루긴 했지만, 우리 또한 감독으로서 이 영화를 만들며 익숙한 것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다. 기존의 틀로 이 영화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재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데이비드 미첼의 원작에도 잘 표현돼 있듯이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여러 문화권을 아우를 뿐만 아니라 정신적 세계와 세속적 세계, 철학과 생물학 등 다양한 주제를 포괄하고 있다. 한국 관객도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