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_지난해 추석특집호에서 세 사람을 따로 인터뷰하며 서로의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각자 얘기한 적 있다. 그에 대한 답을 듣고 싶다. <스토커>에 대해서는 사건이 벌어질 중심공간인 저택 안의 팽팽한 밀도에 호기심을 가졌고, <라스트 스탠드>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이하 <놈놈놈>)의 미국 서부 버전’이 아닐까 하는 기대가 있었으며,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이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통제된 세트 시스템 내에서 자신의 창의력을 어떻게 펼쳐낼지 궁금해했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달라진 것들
박찬욱_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저택이 주요 공간이다. 마음에 드는 저택을 고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영화와 겹치는 느낌도 좋고 적당히 고풍스럽고 색칠 등 내부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데커레이션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딱 하나, 내가 생각한 규모가 아니어서 그 크기가 좀 아쉬웠다. 하지만 결국에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거대한 성 같은 저택을 구했어도 그 전체를 카메라에 담진 못했을 거다. 원래 내가 좋아하는 것도 한정된 공간에서 아기자기하게 풀어내는 것이고, 그게 영화의 색깔과도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어진 여건 안에서, 집에 벽이 아주 많은데 그 사이사이에서 작지만 미술이 돋보이게 하는 식으로, 또 그 색은 어떻게 할까 치밀하게 논의하고 끊임없이 테스트를 거쳤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세트 촬영할 때처럼 몰두해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스토커>에서 집도 또 하나의 주인공이자 또 하나의 작은 우주다.
김지운_<라스트 스탠드>가 <놈놈놈>의 확장판이 아닐까, 하는 시선은 충분히 가능하긴 하지만 일단 악당들이 밤에 내려온다. (웃음) 촬영감독과 고민한 게 바로 밤에 스피드를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사막이 광활하긴 하지만 스펙터클하다는 느낌보다는, 악당이 타고 오는 콜벳 ZR1의 느낌을 정말 몬스터처럼 표현하려고 그 효과에 더 신경 썼던 것 같다. 사실 <놈놈놈>보다 더 어렵거나 힘든 장면은 딱히 많지 않다. 연기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사실 아놀드랑 어떤 배우도 잘 맞지 않더라. (웃음) 그래서 의외로 그런 연기의 앙상블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더 난도가 높은 연출이었다.
박찬욱_내 영화 현장에선 배우들의 호흡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특히 식사장면이 재밌었다. 니콜 키드먼, 미아 와시코스카, 재키 위버, 세 여자 모두 호주 출신인데 호주 여자치고도 굉장히 드센 여자들이다. 거기에 매튜 굿 하나 끼어 있는 건데 그 기에 눌려 있더라. 연기하기 무척 힘들었을 거다. 쉴 때 세 여자가 놀리고 골려먹고 그러면 매튜가 어쩔 줄 모르더라. (웃음)
봉준호_<설국열차> 메이킹을 보면 완벽하게 세팅된 현장이다. 원래 개인적으로는 로케이션 촬영을 좋아하고, 그 전 과정으로서 헌팅 다니는 것 또한 제작과정의 중요한 일부라 여기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계속 세트로 출근하는 게 좀 힘들었다. 애초에 기차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세트 촬영만 반복하다 보니 매일 탄광에 들어가 일하는 기분이었다. 눈앞이 깜깜해지기도 하면서 나중에는 기차 영화가 아니라 거대한 복도 영화가 아닌가 싶더라. 26칸짜리의 기나긴 복도 말이다. 홍경표 촬영감독도 “야, 우리 컨테이너 영화 찍는 거야?”하며 괴로워했다. (웃음) 기차 촬영은 전에 <놈놈놈> 도입부의 기차 액션 장면 촬영을 보러 간적 있다. 두칸에서 총 쏘고 옮겨 다니고 했는데, 그때 김지운 감독님도 앵글이나 동선 연결이 참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난 어떡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설국열차>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기차만 나오니까 좀 고통스럽긴 하지만, 반면에 역설적으로 가장 흥분되는 요소이기도 했다. 노련한 배우들이 등장하고 퇴장하면서 생기는 에너지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배우 덕을 많이 본 영화다.
씨네21_구체적인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보자면, <스토커>와 <설국열차>는 각각 ‘석호필’ 웬트워스 밀러의 각본과 원작 만화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라스트 스탠드>는 애초 리암 니슨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로 바뀐 것이 결과적으로 김지운 감독 특유의 유머를 잘 살려낼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박찬욱_지금 완성된 영화는 웬트워스 밀러의 초고와 비교하면 분위기가 참 많이 다르다. 시나리오도 물론 좋았지만 여백이 많았다. 내 생각을 불어넣을 공간이 충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나리오를 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었던 것 같다. 합류할 때 이미 캐스팅이 되어 있다는 것도 매력이긴 했는데 그걸 빼곤 다 바꿨다고 보면 된다. 시나리오 수정할 때 내 의견을 말했더니 관계자들이 아주 좋아하더라. 그래서 처음에는 마음대로 고치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았다. (웃음) 하지만 막상 일이 시작되고 나서 내가 새로운 버전을 번역해서 보내면, 굉장히 작은 것까지 이건 왜 이런가, 저건 왜 저런가, 하나하나 짚어냈다. 그렇게 하나하나 설득하는 게 힘들었다. 고치되 그걸 납득시키는 과정이 힘든 거다. 지난번에 리안 감독이 방한해서 만났을 때 들은 얘기 중 재밌었던 게 ‘아시아의 영화감독이 왕이라면, 미국의 영화감독은 대통령’이라는 얘기였다. (웃음) 정책을 집행하는 데 있어 왕처럼 마음대로 할 수 없고, 합당한 이유를 들어 의회를 설득해야 한다는 거다. 할리우드에서 감독은 시나리오에 절대 손댈 수 없다는 건 잘못 알려진 것 같고, 원하는 걸 시도할 수는 있으되 그 과정이 힘들다는 아주 그럴듯한 비유였다. 스튜디오 각 분야의 부서장과 주연배우에게 디테일하게 설명해서 납득시켜야 한다. 물론 그 과정이 마냥 힘든 것만은 아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내 논리가 정교해지고 스스로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막연하게 ‘이게 좋은 것 같아’가 아니라 ‘나는 왜 이걸 좋아하는 걸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역시 크랭크인한 이후 현장에서 무언가를 고치는 건 여러모로 힘들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한국에서도 수정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미리 계획한 대로 진행하는 편이고 현장에서는 주로 놀았지. (웃음) ‘논다’는 말 안에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돼 있는데, 하여간 미국에서 찍을 때는 제대로 놀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
김지운_리암 니슨이 주인공으로 내정됐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무겁고 어두웠다. 그러다 나중에 아놀드가 <라스트 스탠드>에 관심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그만두려고 했다. (웃음) 도무지 각이 안 잡히는 거다. 어렸을 적 그의 영화를 재미있게 본 기억은 있지만 할리우드에서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찍게 될 줄은 몰랐다.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어보겠다는 꿈을 꾼 뒤로도 그건 단 한순간도 떠올려보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눈앞에 닥친 현실이 되니까 자꾸 좋게 생각하려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웃음) 사실 그전에 홍상수 감독님을 만난 적 있는데, <악마를 보았다>를 봤다고 하시며 “지운아, 너 이제 무서운 영화 찍지 마” 그러셨다. 관심없는 척하면서 남들 영화 다 보시는 거 같더라. (웃음) 생각해보니 할리우드에서 <라스트 스탠드>를 찍고자 했던 애초의 결심에는, <악마를 보았다>를 작업하면서 우울했던 기분을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환경에 나를 내던지려는 마음이 굉장히 컸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그렇게 아놀드와의 작업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다 보니, 과연 이 영화가 어떻게 나올까, 괜히 궁금해지더라. 그러다 첫 카메라 테스트 때 주름진 아놀드의 얼굴을 딱 보는데 뭔가 충만한 배우 냄새가 확 나더라. 늘 터미네이터라고만 생각했던 배우의 얼굴에서 삶의 자연스러운 연륜이 묻어나왔다. 결정적인 순간, 아놀드의 클로즈업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게다가 리암 니슨일 때는 감히 상상하기 힘들었던 아놀드 특유의 유머가 있다. 당연히 그런 것을 편하게 담아내려 했다. 또 <잭 애스> 시리즈에 나온 조니 녹스빌이 미국에서 그렇게 인기가 많은 줄 몰랐다. 한국에서 송강호가 한창 코믹한 이미지일 때 무슨 말만 해도 빵빵 터졌던 것처럼 지금 그의 인기가 그렇더라. 미국 애들 집에는 빠짐없이 그의 사진이 걸려 있을 정도란다. 그런 요소 역시 아놀드와 잘 배합하려고 했다. 그래서 좀 무리수 같긴 한데 그 둘만 있는 포스터도 있다. (웃음)
봉준호_<반지의 제왕>을 보면 프로도가 반지를 파괴하고 산에서 데굴데굴 굴러 내려오는데, 고향 샤이어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요지의 얘기를 한다. 내가 언제 <설국열차>를 처음 접하고 영화화를 꿈꿨는지 기억을 더듬어가보면 딱 그런 심정이다. (웃음) <괴물>의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던 2004년인가 2005년이었던 것 같은데,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 결심한 순간은 또렷이 기억난다. 그때로부터 <설국열차>는 원작의 설정 정도 빼고는 인물과 사건 다 다르다. 빙하기가 도래하면서 생존자들이 기차에 타고 있다는 기본적인 것만 그대로이고 1년 동안 내가 다 완전히 새로 썼다. 원작을 재미삼아 볼 수 있겠지만 굳이 서로 붙잡아 비교할 만한 것은 없다. 그래도 설정 자체가 원작의 독창적 발상이라고 할 만큼 워낙 파격적이고 참신한 거니까, 정식으로 판권을 사서 원작에 대한 충분한 예우를 갖추려고 했다. 원작자도 세트에 와서 카메오 출연을 했는데, 오래전 1980년대에 그린 만화가 지금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으니 울컥하더라. 예산으로는 4천만달러 영화인데 할리우드에서는 중간에 약간 못 미치는 규모다. 하지만 한국영화로 치면 사상 최고액의 영화가 돼버리니까 한국 관객이 <어벤져스>나 <다크 나이트 라이즈> 레벨의 영화로 상정하고 보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있긴 하다.
김지운_할리우드에서도 그 정도 예산의 영화를 만드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하더라. 그러고보면 박찬욱 감독은 <설국열차>의 제작자이기도 한데….
박찬욱_할리우드에서 예산의 압박은 어쩔 수 없는 운명과도 같다. 예산과 회차,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특수효과나 시각효과가 적용되는 숏의 숫자는 거의 바꾸기 어렵다. <설국열차>는 한 1천만달러 정도만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한다. <설국열차>는 감독으로서는 부럽고 제작자로서는 미안한 영화다.
봉준호_박 감독님이 빠듯한 예산 속에 제작자로서 가끔 대안을 주시기도 했는데, 그 대안이 다 예산이 커지는 대안이었다. (일동 웃음)
씨네21_아직 공개 전인 세 작품의 숨겨진 키워드 같은 게 있을까. 현재로서는 <스토커>의 집, <라스트 스탠드>의 사막 혹은 차, <설국열차>는 기차 혹은 눈(雪)이 떠오른다.
봉준호_피? 피가 많이 나온다. 원작에서는 인물의 표정이 별로 없는데 영화는 매우 격하다. 폭력 신도 많고. 찍고 나서 느낀 건 내 영화에서 처음으로 비(雨) 신이 없다는 거였다. 다른 분들은 나처럼 처음으로 뭘 안 했다거나, 없다거나 한 게 없었나?
김지운_한국말? (일동 웃음)
봉준호_그건 우리 모두 해당되는 것 같다. 하루는 홍경표 촬영감독이 한글로 뭘 열심히 쓰고 있기에 뭐냐고 물었더니 ‘한글이 그리워서 아무거나 쓰고 있는 중’이라더라. (웃음)
2012년 그리고 2013년…
씨네21_시간이 지나 2012년을 돌아봤을 때 개인적으로 어떤 해로 기억될 것 같나?
박찬욱_몇년 전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한국에 왔을 때 타로점을 봐줬는데 ‘미국 가면 개고생할 거다. 돈과 명예는 얻을지 몰라도 정신적 타격이 클 것’이라고 했다. 사실 누구한테나 적용될 수 있는 말인데(웃음) 내내 그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런데 적응이 되니까 스튜디오 사람들하고도 정이 들더라. 폭스 서치라이트는 굉장히 개인적인 관계로 작업하는데, 그래서 싸울 때는 크게 싸워도 정이 들면 깊게 든다. 그렇게 좋은 면, 밝은 면을 보려고 하다 보니 괜찮아졌다. 편집 단계가 지나가고 원만한 합의를 보고난 뒤부터는 급격히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2012년을 돌아보면 고생했다는 막연한 기억 정도만 남았을 뿐이지 ‘그때 생각만 하면 고통스러워 미치겠다’ 그런 건 전혀 없다. 이제 문제는 돈과 명예를 얻는다는 조도로프스키의 점괘를 믿어도 될지. (웃음)
김지운_처음에는 2012년이 내 생애 최악의 해라고 정리할까 했는데(웃음), 항상 죽을 만큼 괴롭다가도 결국 무사히 지나가게 된다. 힘들 때는 정말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가 한 발짝 물러나서 바라보면 또 다른 관점을 얻기도 한다. 촬영 중에 박 감독님과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주고받으면 거의 누가 더 힘든지 배틀을 하는 수준이었는데(웃음) 이제 박 감독님처럼 치유까지는 아니라도 어떤 의미있는 경험 혹은 추억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실력 발휘를 다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들지만 애써 정리하고 있다. 중요한 건 결과물이다. 약속되지 않은 걸 가져오면 당황하고 압박하지만 그 결과가 괜찮으면 별말 안 하더라. 내게는 2012년이 어떤 식으로든 변화의 기점이 될 것 같다. 한국에서는 영화를 찍을때 애매한 감으로만 얘기를 할 때도 종종 있는데 할리우드는 되게 합리적이고 꼼꼼하게 체크한다. 논리로 납득이 안되면 그다음 단계로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그 집요함 하나만큼은 많이 배웠다.
박찬욱_<스토커>를 끝내고 귀국해서는 동생 박찬경과 함께 코오롱스포츠의 단편 광고 <청출어람>을 만들었는데, 판소리 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받지 못한 소녀(전효정)와 나이 든 스승(송강호)이 함께 득음 산행에 나서는 내용이다. 판소리를 해야 하는 대목에서 내가 “뒷부분도 좀 해볼까?” 했더니 전효정이라는 배우가 많이 당황하더라. 뒷부분은 못 익힌 거지. 그랬더니 현장에 함께 나와 있던 판소리 선생이 “얼른 지금 배우자!” 그러면서 막 가르치더라. “아, 이런 게 한국이구나!” 했다. (일동 웃음)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신선했다.
봉준호_2012년에는 ‘영화 그만두면 뭐 할까’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고3 때 장차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고는 지금까지 그 꿈 하나로 달려왔는데, 2012년처럼 그런 생각을 많이 한 건 처음이다. 영화를 관둘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다른 건 또 뭘 잘할 수 있을까, 꽤 진지하게 고민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나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유난히 그랬던 해였다.
씨네21_혹시 차기작 계획은?
박찬욱_아직 모르겠다. 한국에서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일단 1월 중순경 선댄스영화제에서 <스토커>의 월드 프리미어를 갖는다. 찬찬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김지운_<라스트 스탠드> 역시 후반작업까지 다 마무리된 상태고 국내에서는 2월21일 개봉한다. 현재로서는 일단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는 중이다. 2013년 초에는 구체적인 윤곽이 나오지 싶다. 그리고 나 역시 코오롱스포츠 단편 광고를 포함해 두편의 단편을 만들 계획이다.
봉준호_개봉을 앞두고 홀가분한 두분에 비하면 난 아직 후반작업 중이다. 2010년에 써놓은 <옥자>라는 시놉시스가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체코로 떠나기 전에 작가에게 맡겨놓고 갔었다. 그걸 바로 할진 모르겠고 할리우드에서 들어온 제안, 그리고 일본만화 원작의 영화화 등 여러 프로젝트를 놓고 고민 중이다. 정해지는 대로 직업 감독의 능력을 발휘해 뚝딱 해내고 싶은데 나 역시 아직 정해진 건 없다.
박찬욱 감독이 2013년 가장 기대하는 영화
리들리 스콧의 <카운슬러>다. 놀랍게도 <더 로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코맥 매카시가소설이 아닌 최초로 직접 쓴 원작 시나리오다. 변호사가 위험한 마약 거래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데 상당히 폭력적이라고 하더라. 코맥 매카시풍의 이야기나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단 만족할 것 같다. 브래드 피트가 출연하고 리들리 스콧이 <프로메테우스>를 찍으며 반한 마이클 파스빈더도 출연한다.
김지운 감독이 2013년 가장 기대하는 영화
류승완의 <베를린>이다. <달콤한 인생>이 류승완의 <주먹이 운다>랑 똑같이 2005년 4월1일에 개봉했었는데, 이번에 <라스트 스탠드>랑 <베를린>도 그럴 뻔했다. 다행히 <베를린>이 한달 정도 앞서 개봉하게 됐다. (웃음) 류승완은 <부당거래>를 지나면서 ‘액션키드’라는 수식어를 완전히 떼어낸 것 같은데, 장르의 구도를 끌어안고서도 현실과 세태에 대해 더 정교하고 본격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캐릭터의 유기적인 관계성이나 영화적인 감각까지 계속 진일보하고 있는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이 2013년 가장 기대하는 영화
공히 10여년 만에 돌아오는 김성수 감독님의 <감기>와 장준환의 <화이>다. <감기>는 현재 후반작업 중이고 <화이>는 얼마 전에 크랭크인했다는 것 외에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잘 모른다. 보통 10년이라고 하면 강산이 바뀐다고도 하는 어마어마하게 긴 세월인데, 언제나 좋아했던 그들의 영화가 그 오랜 숙성의 기간을 거쳐 어떻게 변했을지 무척 궁금하다. <지구를 지켜라!>가 어느덧 10년 전 영화가 된 거다. 해가 바뀌는 시점에서 어느덧 돌이켜보니 10년이 휙 지나가버렸다는 감회도 참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