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유약함을 인정하는 것도 용기다
2013-01-10
글 : 안현진 (LA 통신원)
마리아 역의 나오미 왓츠

-<더 임파서블>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출연하게 됐나.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이 흔한 재난영화의 스펙터클에 묻히게 될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러다가 감독이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라는 걸 알게 됐다. 그의 첫 영화를 알고 있었기에 각본이 궁금했고 곧 실화라는 걸 알게 됐다. 첫 몇 페이지를 읽고도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질 거라는 걸 직감했다. 끔찍한 사건이 소재지만, 매우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였고, 어머니로서 내 역할과 아들 루카스와의 장면들에 크게 마음이 움직였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아들인 루카스를 연기한 톰 홀랜드의 연기가 훌륭하다.
=맞다. 훌륭하다. 아역배우보다는 성인 연기자 같은 태도와 책임감을 가졌다. 영화현장은 처음이었는데도, 2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무대에서 <빌리 엘리어트>를 연기해서인지 잘 단련되어 있었고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톰과는 리허설 한달 동안 함께 지냈다. 감독은 서로에게 익숙해지라며 여러 가지 게임을 준비해왔는데, 초반의 서먹함을 깨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어떤 종류의 게임이었나.
=맨 처음엔 종이와 연필을 나누어주고 상대방의 얼굴을 그리라고 했다. 우리는 그제야 상대방의 얼굴을 10분 동안 천천히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다. 그다음부터 진행된 활동에서 점점 더 많은 부분을 교감할 수 있었다. 액팅스쿨에서 할 법한 활동인데, 상대방에게 총을 쏘는 상황이나 캄캄한 무대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있었다. 바요나 감독은 배우를 감정의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는 톰에게도 같은 걸 요구했는데, 톰은 10번이면 10번 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꺼내놓았다. “지치지 않으려면 조금씩 남겨두라”고 조언해주었는데 그런 요령을 배우기엔 아직 어린 듯했다. 하지만 그 열정은 내가 오히려 배울 점이라고 생각했다.

-바요나 감독이 당신이 인간의 어두운 면을 잘 표현해낸다고 말했다. 어두운 역할에 끌리는 건가.
=영화는 결국 감독의 미디어다.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명확한 비전이 있다면 어중간한 각본도 훌륭한 영화로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독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서 영화를 고르는데, 아마도 어두운 역할이 많았던 것 같다. 감독이 명확하게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을 때, 나는 나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것이 두렵지 않다. 인간의 본성 중 많은 부분이 고통과 마주할 때 드러난다고 생각하고,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재난이 닥치자 아이가 당신을 보호한다.
=그 부분이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이가 부모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 모든 부모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일 것이다. 나는 마리아가 루카스에게 기대는 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마리아는 용감한 척하지만, 꼭 필요한 순간에 두렵고 무섭다는 걸 인정한다. 그러한 유약함을 인정하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한다.

-실화의 주인공인 마리아 벨론과 직접 만났다고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 대화를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너무 어색했다. 나는 그저 배우일 뿐이고 그녀는 엄청난 일을 겪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겪은 일들이 평생 생생하게 그녀의 머릿속에 있을 걸 생각하니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래서 대화는 어떻게 시작됐나.
=마리아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마주 앉은 채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그녀가 울기 시작했고, 나도 따라 울었다. 그렇게 낯설지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고 그녀의 이야기를 내가 내 입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그녀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거기에 있었다. 인상적인 시간이었다. 평생 잊지 못할 거다. 그녀는 내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얼굴엔 빛이 있었다. 아마도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니기에 냉소와 의심으로 가득한 나로서는 감히 욕심낼 수는 없지만, 그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초월적인 느낌이 전해졌다.

-영화가 고통을 그려내는 수위도 대단하다. 스페인에서 관객이 관람 중 실신한 경우도 있었다.
=그랬나? 몰랐다. 사실 편집된 장면 중에는 더 적나라한 장면이 많았다. (그중에서 볼만한 장면으로만 편집했는지 질문하자) 그렇지 않다면 이 영화는 그저 징그러운 장면을 보여주는 데 치중해 이야기하려는 것을 놓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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