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9 로스트 메모리즈> [6] - 장동건 vs 나카무라 도오루 ②
2002-02-01
사진 : 이혜정
정리 : 박은영

형처럼 아우처럼

장동건 | 촬영하면서 제가 좀 친근하게 느껴진 게 언제부턴가요?

나카무라 | 중국 로케 갔을 때 일어 통역이 없었잖아요. 400명 넘는 중국 엑스트라와 40명 넘는 한국 스탭들 사이에서 혼자 일본인으로 있을 때 현장 상황상 일본으로 전화도 못하고 있었죠. 동건씨가 나 대신 전화 연결을 해줬을 때, 이 사람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했죠.

장동건 | 그때서야 비로소? (일동 폭소)

나카무라 | (웃으며) 그 전부터 조금씩 느끼긴 했지만.

장동건 | 저는 그것보다 훨씬 전이었어요. 강화도에서 훈련을 받을 땐데, <친구> 촬영이 끝난 직후라 몸이 안 좋아서, 정말 쉬고 싶었어요. 그런데 일본 배우들도 와 있고, 단역 조연배우들도 다 왔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투덜대며 갔었거든요. 거기서 도오루상를 봤는데, 너무 열심히 진지하게 연습하고 있는 거예요. 미안할 정도로. 사실 첫 대면 때는 내가 생각하던 일본인의 이미지, 상냥하고 나긋나긋한 이미지를 상상하고 갔다가, ‘하이’ 이러고 마는 걸 보고, 어, 이상하다, 되게 무뚝뚝하구나, 했죠. 그런데 그렇게 혼자 묵묵히 연습하고 있는 걸 보고, 놀랐어요.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니까, 너무 외롭겠더라고요. 결정적으로는 제가 부담스러워하던 일본어 대사 부분을 자진해서 녹음해준 데 감동받았고요. 대본 읽는 입모양까지 비디오로 직접 촬영해서 줬잖아요. 그건 대단한 성의죠. 진심으로 내가 잘하길 바란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호감을 갖게 됐죠. 아, 이 사람은 내 라이벌이 아니라, 내 편이구나.

나카무라 | 어떤 사람들은 동료 배우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져야만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함께 좋은 영화 만드는 걸 목표로 일해야 하잖아요. 동건씨 대사 부분을 녹음해줬던 건, 나는 현장이 아무리 낯설고 힘들어도 연기는 모국어로 하는데, 동건씨는 현장 상황을 잘 알아도 연기는 모르는 나라말로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게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도움이 되고자 했던 거예요. 결국 그것도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의미였죠. 아,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 딱딱하게 군 건 말이죠, 얼마 전에 일본에서 3개월 동안 드라마를 같이 찍은 여배우한테서도 “당신은 정말 폐쇄적인 사람이군요”라는 얘길 들었거든요. 동건씨에게도 그 점에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해요.

장동건 | (웃음)천만에요. 전 이해해요. 그런 성격, 너무 잘 이해해요. 제가 그런 면이 많기 때문에요. 처음엔 통역하는 분이 없으면, 5분이고 10분이고 어색하게 앉아 있었잖아요. 그런데 나중엔 30분씩 침묵하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았어요. 말을 안 하면 그 마음을 몰라서 오해하는 게 문제인데, 우린 오해의 여지가 없었던 것 같아요.

나카무라 | 일본에서도 일본 사람하고도 말 안 하고 그렇게 몇 십분씩 잘 있어요. 누구랑 말없이 있을 때는 ‘저 사람, 이 분위기 정말 싫겠다’ 생각하거든요. 동건씨한테도 ‘이 분위기 싫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물어볼 수가 없었어요. 동건씨는 그런 침묵이 싫었을지 모르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웃음)

장동건 | 저는 예전에 이런 일도 있었어요. <이브의 모든 것> 연출하신 이진석 감독님도 별로 말이 없으시거든요. 둘이 있으면 말을 안 해요. 한번은 화장실에 만났어요. 화장실에서 만나면 되게 어색하거든요. 그래도 아무 말 안 하고 나오니까, 저한테 ‘너, 해도 너무 한다’ 그러시더라고요. (웃음) 저도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닐 때는 말 안 하고 있는 상황에 아주 익숙해요.

나카무라 | 그런 상황이라면, 나라도 뭔가 얘기했을 텐데.

장동건 | (웃음) 저는 도오루상이 형님처럼 느껴진 적이 많아요. 도오루상말고도 일본 배우들이 몇분 더 계셨는데, 대본 연습하는 날 리딩을 하는데, 다들 발성이 아주 좋으시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제가 많이 부끄러웠어요. 발성이나 기술적인 훈련이 아주 잘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리고 저는 도오루상이 많이 불안해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일본어로 대사를 해도 맘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은데, 도오루상은 감독님이 일본어를 못하시기 때문에 의사 소통이 잘 안 되고, 그러다 보면 이리저리 많이 흔들릴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시종일관 자신의 캐릭터를 잃지 않고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카무라 | 내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동건씨 덕이 컸죠. 동건씨의 일본어 발음이 어떻든 간에 사카모토의 기본적인 생각과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거든요. 그래서 흔들리거나 헤매지 않을 수 있었죠. 감독님과의 커뮤니케이션도 힘들지 않았어요. 일본에서 일본 감독과 일할 때도 말이나 생각이 안 통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이번에도 감독님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를 때가 있었지만, 그럴 땐 일단 내 생각대로 연기를 해보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내 문제가 뭔지를 파악하려고 했어요. 대부분 의사 소통엔 어려움이 없었어요. 사실 강화도에서 액션 훈련 받을 때부터 마지막 촬영까지 7개월 동안 여기 모든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어요. 만일 인간적으로 좋아할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했다면, 오늘 본 것 같은 멋진 영화가 나올 수 없었겠죠. 모두에게 감사해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장동건 | 영화 속의 사이고네 가정처럼, 촬영중에 도오루상 부인과 딸이 와서 같이 식사한 적이 있었잖아요. 딸이 정말 예쁘더라고요. 인형처럼. 부인도 전형적인 일본 여성으로 아주 참하시고. 부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나도 당장 결혼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결혼한 뒤의 내 모습도 저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죠.

나카무라 |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더니) 행복의 모양새는 사람마다 다 다르잖아요. 동건씨도 맘에 맞는 사람 만나 좋은 가정, 행복한 가정 꾸리길 바라요.

장동건 | 감사합니다. 아까 시사회 끝나고 기자 간담회 할 때 어떤 분이 ‘영화 보고 나서 많은 여자들이 장동건보다 도오루상이 더 멋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더라고요. 전 이 영화를 통해 도오루상이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갖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앞으로 한국뿐 아니라 동남아, 세계무대에서 좋은 작품 하게 되길 바라요. 그리고 우리, 좋은 작품에서 다시 만나요.

나카무라 | 지금 가장 큰 바람은 이 영화가 성공하는 거예요. 그리고 한국인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게 되면, 동건씨랑 한국어 대사 하는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요. 또 하나. <친구>가 일본에서 개봉되면, 대성공을 거둬서 동건씨가 일본영화에 출연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게 되겠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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