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9 로스트 메모리즈> [4] - 장동건의 제작기 ④
2002-02-01
정리 : 박은영

<화산고> 배우들, 존경스럽다

[피아노줄 액션]

피아노줄 묶고 하는 연기. 그전에도 몇번 해봤지만, 할 때마다 정말 힘들다고 느낀다. 와이어액션 분량이 많았다고 알려진 영화 <화산고>의 배우들은 참 힘들었겠구나, 고생이 많았겠구나, 새삼 생각했다. 피아노줄로 묶이고 나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오래 견디기가 참 힘들다. 갈비뼈도 아프고, 숨도 안 쉬어진다. 그나마 우리 영화에서는 많지는 않았으니 다행이지만, <화산고>팀은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언론 보도를 보니까, 그쪽 배우들은 12시간씩 피아노줄에 매달려 있었다는데, 다시 그렇게 찍을 영화가 있다면 너무 힘들 것 같다. <툼레이더>에서 안젤리나 졸리의 공중 발레장면은 참 멋있었는데. 할리우드에서는 피아노줄을 쓰는 시스템이 배우에게 훨씬 편안하고 좋을까, 아님 그쪽 사정도 우리랑 마찬가지일까.

영화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연기하는 건 참 어렵다. 완달산에서 시간의 문을 통과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미니어처 세트에서 펄쩍 뛰면 완달산 영고대로 나오게 돼 있었다. 이럴 때는 떨어지는 높이나, 구를 때의 스텝 같은 것을 제대로 가늠하지 않으면 안 됐다. 또 부두 촬영 이전에 컨테이너에서 배를 바라보는 장면 같은 것들도 빈 공간을 바라보며 촬영해야 했다. CG 부분을 남겨두는 것이다. 눈앞에 없는 것을 상상하면서 연기하는 건, 아무래도 실제로 보고 하는 것과 느낌이 많이 달랐다.

불길한 예감은 사고를 부른다

[총격장면의 부상]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진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렵거나 위험해보이는 상황인데도, 당사자는 안심이 될 때가 있고, 객관적으로 별것 아닐 거 같은 상황인데도, 당사자는 불안하고 떨릴 때가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좀 떨린다 할 때는 꼭 다치거나 사고가 난다. 그런 거 보면 모든 일이 마음먹기 나름인 것 같기도 하고.

<패자부활전> 찍을 때, 충무 앞 바다 요트 위에서 다이빙하는 장면이 있었다. 김희선씨가 물에 빠지면 그녀를 구해주는 장면이었다. 같은 장면을 찍는데, 두번까지 했지만 OK가 안 나오고, 세 번째도 실패했다. 네 번째 시도하는데 뛰려는 순간 스텝이 엉켰다. 다시 액션을 준비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역시나. 발을 헛디뎌서 옆으로 이상하게 떨어졌다. 당연히 NG였다. 그런데 몸이 무거워지면서, 배가 있는 곳까지 못갈 지경이 됐다. 튜브가 1m 앞에만 떨어졌어도, 그곳까지 가지 못했을 거 같은데, 운좋게 잡아서 나왔던 기억이 있다. 물을 토하고 있는데 이광훈 감독님이 잔인하게 한번 더 하자 그러셨다. 웬만하면 하겠는데 그때는 정말 할 자신이 없어서 못했다.

수색 폐공장의 조선이 아지트 세트에서 JBI 요원들의 총격 난사를 피하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내 동선을 따라 벽에 심어놓은 폭탄이 터지게 돼 있는데, 구두가 미끄럽게 느껴지고 자꾸 스텝이 엉키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옆방향으로 뛰니까 이상하다 그랬는데 사고가 났다. 파편이 옆구리에 박힌 것이다. 아직도 옆구리에는 흉터가 남아 있다. 보이는 곳도 아니니까 괜찮다. 누군가가 농담삼아 에로영화 안 찍을 거냐고 한다. 다행히(!) 분장으로 커버할 수는 있다.(수색의 촬영현장에 있던 장동건보다 청담동 사무실에서 사고 소식을 전해 들은 매니저가 일산병원 응급실에 먼저 도착했다는 소문(사실이다!)이 한동안 화제가 됐다. 장동건은 파편(10개나 됐다)이 박혀 쓰러지고 나서도 모니터 확인부터 했다고 한다. OK가 난 걸 확인한 뒤에야 병원으로 향했는데, 소독만 한 뒤에 돌아왔다고.)

드디어 ending!

[크랭크업]

촬영 마지막 날이다. 극중 이명학과 뒷골목에서 다찌마리신(격투장면)을 찍는다. 전날 사인 생각을 했다. 크랭크업 날엔 스탭들이 사인을 부탁하곤 하는데, 내가 이름을 기억하는 스탭들이 절반밖에 안 되는 게 아닌가. 시나리오 앞장에 있는 스탭들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얼굴과 매치시키면서 다 외웠는데도 결국 이름을 모르는 스탭들이 생겼다. 오랜 기간 동안 같이 고생했던 스탭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이다.

그리고 끝났다. 마지막 컷 할 때까지도 끝났다는 실감이 안 났다. 기념으로 단체사진을 찍을 때에야 정말 끝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할 게 없으니까, 괜히 촬영장에 가야 될 것 같고.

<…로스트 메모리즈>는 촬영을 오래해서 고생은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편안하게 찍었다는 느낌이 든다. 하루에 한두신 찍으면서 일년 내내 촬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분 좋고 마음 편하게 찍었다. 그래서 쫑파티 때도 오래 버티려고 했는데, 1차에서 뻗은 이후로는 거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밴에 가서 누웠던 기억은 있는데, 그 다음부터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다. 결국 쫑파티 끝나고 나서 삼일 동안 앓아 누웠다.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어진 것이다. 촬영 막바지에는 긴장도 안 하고, 너무 마음 편하게 찍고 있는 것 같아 걱정도 됐지만, 촬영이 끝나자 며칠 동안 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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