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누구의 딸도 아닌 인디아
2013-02-26
글 : 김혜리
<스토커>, 성장과 터부에 관한 박찬욱 감독의 정밀한 동화

<박쥐> 이후 4년 만이다. 여윈 얼굴로 미국에서 돌아온 박찬욱 감독이 가방을 열자, 내성적인 소녀의 성장영화가 또르르 굴러나왔다. <스토커>의 주인공 인디아(미아 바시코프스카)는 드라큘라를 창조한 브람 스토커와 같은 성(姓)을 가졌으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영군(임수정)처럼 유별난 소녀다. 아니, 적어도 스스로 그렇다고 믿는다. 남보다 멀리 보고 작은 소리까지 듣는 인디아의 비범한 감각은 그녀에게 소외감과 우월감의 원천이다. 고립이 왕관이 되는 희귀한 시절. 바야흐로 청춘이다. 그리고 어느새 경계선을 넘어야 하는 시각, 열여덟살 생일이 도래한다. 소녀는 어떤 격렬한 경험을 기다린다.

통과의례는 철퇴처럼 닥친다. 세상 누구보다 가까웠던 아빠(더모트 멀로니)가 여행 중 사고를 당해 시신으로 돌아오고, 장례식 날 여태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찰리 삼촌(매튜 구드)이 현관을 두드린다. 넓은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돌아온 잘생기고 신비로운 남자. 그는 정말 아빠의 동생일까? 형제라면 어떤 형제였을까? 오랫동안 남편 리처드와 소원했던 이블린(니콜 키드먼)은 찰리에게서 젊은 날- 딸이 사이에 끼어들기 전- 다정했던 남편의 모습을 찾고, 인디아는 아빠와 닮은 얼굴로 그녀를 금지된 세계에 인도해줄 솔메이트를 본다. 그리고 찰리에 관해 뭔가를 발설하려고 했던 인물들이 모녀 주변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삼촌을 바라보는 소녀의 태도는 이율배반적이고 변덕스럽다. 이블린과 찰리가 시시덕거리는 광경에는 모친의 부정을 목격한 햄릿처럼 배신감에 떨지만, 삼촌의 수상한 행적을 눈치채고도 입을 꼭 다문다. 그녀는 비밀을 통해 찰리와 연결되고 그를 소유하는 쪽을 택한다. 인디아와 이블린, 찰리는 혈연과 질투, 욕망으로 아슬아슬한 삼각형을 이룬다. 인디아에게 이 삼각형은, 성년으로 이행하기 위해 부수고 나가야 하는 알의 껍질이다. 아기새가 부축을 받아 날지 않듯 일단 알을 깨기만 하면, 인디아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모든 어른에게 “거기까지만. 노 땡큐”라고 말할 소녀다.

가족 그리고 딸, 박찬욱 드라마의 원점

배우 웬트워스 밀러가 쓴 <스토커>의 각본은 <아르고> <마진콜: 24시간, 조작된 진실> 등과 더불어 2010년 ‘블랙리스트’(할리우드에서 미제작된 최고의 시나리오 목록) 톱텐에 들어 화제를 모았다. 처음 읽었을 단계에는 앨프리드 히치콕의 1943년작 <의혹의 그림자>를 향한 팬심에서 탄생한 오마주 인상이 강했다고 박찬욱 감독은 회고한다. <의혹의 그림자>는 건전한 일상에 질린 소녀 찰리(테레사 라이트)를 도주 중인 연쇄살인자 외삼촌 찰리(조셉 코튼)가 방문한 다음 가족과 공동체에 일어나는 파문을 그린 범죄스릴러였다. 능청스런 히치콕은 권선징악의 서사로 당대 관객을 안심시키며 범죄의 매혹과 근친애적 암시를 살짝 가려놓았다. 그러나 거칠 것 없는 박찬욱은 <스토커>에서 시대성과 지역성을 제거하고 3인 가족을 저택에 몰아넣어 내면의 어두운 충동을 파고든다. 지역사회로부터 은근히 단절된 적막한 집과 정원, 노골적인 상징성을 띤 이미지들은 동화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줄거리의 큰 흐름만 따지자면 <의혹의 그림자>를 뒤따르는 시나리오를 지닌 <스토커>가 의심의 여지없는 ‘박찬욱 영화’로 보이는 까닭은 한국 관객에게 친숙한 감독의 주제 의식과 양식미가 동요없이 관철되고 있기 때문이다. <파라노이드 파크> <황무지> <캐리> <롤리타> <분홍신> <신데렐라>… 우리는 <스토커>로부터 수많은 영화와 동화의 기억을 불러낼 수 있지만 결국엔 박찬욱의 전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달은 해가 꾸는 꿈> <삼인조> <공동경비구역 JSA> 정도를 제외하면 가족은 언제나 박찬욱식 드라마의 원점이자 도달 불능점이었다. 그의 인물들은 가족으로 인해 짐승도 되고 성스러워지기도 한다. 박찬욱에게 가족은, 장르를 초월해 인간성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가장 멀리까지 밀어붙이면서도 가장 많은 문화권 관객과 소통하게 해주는 화수분이다. <스토커>가 건드리는 가족의 딜레마는 “얼마나 사랑해도 좋은가?”이다. 가족은 어떤 집단보다 서로 사랑하는 일이 장려되는 관계지만 동시에 어떤 선을 넘어선 애정은 엄격히 터부시되는 모순의 구역이다. 그런가 하면 혈육은 사랑과 이기적 생존본능의 경계가 얼마나 희미한지 일깨우는 타인이기도 하다. <박쥐>의 관객은 뱀파이어가 된 신부(송강호)가 흡혈과 성직자의 일을 일맥상통하는 행위라고 합리화하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스토커>에서도 박찬욱은 개인에게는 동질적인 충동으로 이해되지만, 제도에 의해 완전히 다르게 관리되는 인간의 욕망을 다룬다.

‘복수 3부작’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괴한 활극이었다면 <스토커>를 지배하는 가족 구성원은 딸이다. 인디아는 그녀의 이름처럼 하나의 나라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납치된 어린 딸이 아빠의 꿈속으로 찾아와 허리에 맨발을 감으며 안기던 순간부터, 딸이라는 존재는 멀리서 박찬욱의 서사를 끌어당기는 소실점으로 작용했다.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줄곧 유괴당하기만 했던 딸이 마침내 영화의 복판에 선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론을 쓰는 뒷날의 비평가는 올해 박찬욱 감독의 딸이 성년에 이르렀다는 공교로운 사실을 비고란에 적어넣을지도 모르겠다.

<스토커>에 드리운 <의혹의 그림자>의 잔영이 당신의 예상보다 월등히 흐리다면, 박찬욱이 가능한 한 직설을 피하고 이야기를 ‘서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혼자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소녀의 이야기였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태도로 돌아가 <스토커>는 모든 장면을, 이야기가 아니라 감각적 체험으로서 전달하고자 한다. 정정훈의 촬영, 필립 글래스와 클린트 만셀의 음악, 니콜라스 디 토스의 편집이 이 목표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동원된다. 단일하고 일관된 동기로 추진되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과거와 현재, 인물과 인물, 기억과 상상을 쉬지 않고 병렬시키는 교차편집이 중요해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스토커>에서 감독이 교차편집에 실은 의미와 음악적 연출을 향한 노력에 관해서는 이어지는 인터뷰(70쪽)를 참조하는 편이 낫겠다.

주지하다시피 <스토커>는 기획 단계부터 다국적 관객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영어영화다. 한국영화로서 마켓을 통해 외국에 배급된 전작과는 관객이 영화를 소비하는 맥락이 다르리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박찬욱이라는 이름을 이국적 액션 브랜드로 인지하는 서구 관객은 <스토커>의 표현 수위를 보고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소심함을 탓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이 전하는 실상은 반대에 가깝다. “어디까지나 성장영화다. 오히려 관객의 기대를 고려한 영화사의 권유에 마지못해 한발 더 나아간 장면이 있다.” 전작의 폭력 묘사가 안구에 면도날을 긋는 감각이었다면 <스토커>에서 ‘죽이는’ 역할을 맡은 요소는 무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한편 미스터리영화로 <스토커>를 기대한 관객은 숨겨진 대단한 패는 없다는 사실에 실망할 수도 있다. <스토커>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들 사이의 시간이 미스터리적 뉘앙스를 자아내도록 의도된 영화다. 이런 영화에서 비밀은 강제로 캐내어진다기보다 때가 무르익으면 하나씩 베일을 벗는다.

할리우드 데뷔라는 함정을 피해 새긴 감독의 인장

할리우드의 구애를 받은 외국 감독의 첫 영화에 흔히 쏟아지는 우려는, 애초 그를 흥미로운 감독으로 만들었던 개성이 이러저런 절충의 과정에서 흔적기관으로 퇴화되고 위원회가 다수결로 제조한 것처럼 보이는 표준적인 영화로 낙착될 위험성에 관한 것이다. <스토커>는 확실히 첫 함정을 피해 감독의 인장(印章)을 유지했고 박찬욱의 필모그래피에도 이물감 없이 등재될 영화다. 첫 번째 영어 앙상블 연출에 대한 외신의 평가도 만족스러운 편이다. 감독이 들려주는 연기 연출 방법론에는 왕도가 없다. “한국어 대사를 한국 배우가 하고 훌륭한 감독이 연출했는데도 어색한 영화들을 보면서 무섭다고 생각했다. 배우를 믿거라 하고 손놓을 일이 아니었다. 전치사 하나까지 신경 쓰며 대사를 만들었고 뉘앙스가 영어로 정확히 옮겨졌는지, 말이 아름다운지, 캐릭터랑 어울리는지를 공동작가 에린 크레시다 윌슨과 관련자들로부터 꼼꼼히 점검받았다.”

<스토커>에 이르러 사라진 요소를 굳이 찾는다면 아마도 기존 박찬욱 영화 특유의 ‘잉여분’일 터다. 스토리텔링의 효율과 무관하게 비죽이 튀어나오곤 하던 블랙유머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좀처럼 정할 수 없는 보풀 같은 감흥들을, 이 매무새 단정한 영화에서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신 이번에 주목할 만한 박찬욱 감독의 성과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의 균형 감각과 집중력이다. 그리하여 <스토커>는 어느 때보다 덜 모호하고 합주(合奏)의 성격이 강하며 접근하기 편한 박찬욱 영화로 완성됐다.

폭스 서치라이트는 <스토커>를 3월1일 미국 5개 도시에서 개봉해 스크린을 늘려가는 롤아웃 방식으로 배급한다. 연전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블랙스완>과 대니 보일의 <127시간>에 적용했던 전략이라고 한다. 영국 및 아시아 대부분 국가에서는 와이드 릴리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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