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오바마가 힐러리를 중용한 까닭은
2013-03-19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링컨>을 보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지식사전

경고. <링컨>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중 가장 대사가 많은 영화다. 그중 많은 분량이 미국사나 링컨이란 인물에 관한 ‘미국인’의 평균 지식 수준을 전제로 하고 있다. 뿐인가. 미국인도 잘 몰랐던 링컨에 관한 정보들까지 촘촘히 심어놨다. 그 모든 디테일을 할리우드의 거장 스필버그는 아무렇지 않게 한편의 영화로 압축해버렸다. 그래서 미리 참고해두면 좋을 관련 지식을 5가지 키워드로 풀어봤다. <링컨>을 더 잘 보고 더 잘 느끼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1854년 미국 정치지도. 자유주와 노예주 지역을 구분해놓았다.

남북전쟁×노예제

1865년 1월, 4년 동안 지칠 대로 지친 남부연합군의 상태로 보아 북부의 승리가 확실했다. 하지만 막 재선에 성공한 링컨은 종전을 미루고 노예제 폐지안이 담긴 헌법 13조 수정안 통과를 서두른다. 노예제가 없어져야 전쟁을 완전히 끝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언뜻 모순처럼 들린다. 그러나 링컨이 보기에 노예제를 둘러싼 남북간의 갈등의 골은 훨씬 깊었다. 당시 남부 경제는 노예 의존도가 높은 대농장 사업과 그 생산품을 토대로 한 무역업에 의해 유지되었는데, 상공업이 중심이었던 북부로서는 노예제의 존재 자체가 수치스러웠으며 남부의 주 무역 상대인 유럽 국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도 내심 걱정스러웠다. 반면 남부는 자신들이 낸 국가 세금이 대부분 북부를 배불리는 데 쓰이는 게 불만이었다. 이런 배경 속에 연방을 탈퇴한 남부 노예주들이 연합을 결성하여 연방군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인구나 물자로 볼 때 훨씬 불리한 전쟁이었음에도 남부연합군은 끈질겼다.

링컨은 그 상태로 전쟁을 끝내면 남부연합이 노예해방선언을 무효화하고 모든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경제를 회복한 뒤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헌법을 통해 노예제를 원천봉쇄함으로써 그들을 완벽히 굴복시켜야만 연방을 회복할 수 있었다. 여기서 방점은 연방에 찍힌다. 극히 현실주의적인 책략가이자 법률가였던 링컨은 인류 평등이란 이상보다 연방 통일이란 온건한 목표로 의원들을 회유했다. 실제로 그는 전쟁 발발 뒤 한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적도 있다. “이 전쟁에서 내 최고 목표는 연방을 구하는 것이지 노예제를 구하거나 파괴하는 게 아니오. 노예를 해방하지 않고도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거요. 또 노예를 해방해야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거요.” 그렇게 그는 노예제와 남북전쟁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다리기를 하며 ‘분열된 집안’을 다시 일으켰다.

진보적인 공화당? 보수적인 민주당?

영화 <링컨> 속 하원의회의 풍경은 어딘지 낯설다. 공화당은 노예제 폐지를, 민주당은 노예제 존속을 주장하고 있다. 유럽인의 관점에서는 도긴개긴이라고 하나, 미국의 양당 체계는 보수 정당 공화당과 진보 정당 민주당으로 나뉘어 있는 게 아니던가. 하지만 링컨이 활동한 1860년 전후에는 달랐다. 당시 미국에서는 연방주의자당의 후신 휘그당과 민주공화당의 후신 민주당이 대립하고 있었는데, 저마다 내분이 심했다. 특히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안 통과가 갈등의 원인이었다. 1854년, 북위 36도 30분 북쪽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노예제를 인정하는 두 지역에 준주 자격을 부여한 미국 의회의 결정은 미주리 협정(1845년 미주리 연방 가입을 계기로 북위 36도 30분 남쪽의 주들에 대해서만 노예제를 인정하기로 타협한 협정)을 사실상 무효화했다.

이를 계기로 휘그당은 노예제를 옹호하는 ‘목화 휘그당’과 반대하는 ‘양심적 휘그당’으로 나뉘었고, 민주당에서도 북부 당원들이 대거 탈당해 ‘독립적 민주당’을 만드는 사태가 벌어졌다. 가톨릭계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을 앞세워 득세한 ‘노나싱당’(Know Nothing Party, 비밀 유지를 위해 어떤 물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도 결국 북부파와 남부파로 갈렸다. 그렇게 흩어져 있던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1954년 위스콘신주 리펀에서 열린 집회에서 ‘공화당’이란 이름으로 뭉치게 됐다. 이후 공화당은 일련의 노예 판결과 폭력 사태를 거치며 급속하게 성장했고, 링컨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노예제 폐지까지 이루어내고야 만다.

링컨가의 우울증

누군가의 표현대로 ‘링컨가의 재앙’인가. 증조부, 아버지, 사촌 여럿과 마찬가지로 링컨 역시 1841년 정신질환 치료를 받았다. 의사는 당시에 유행했던 모든 방법을 동원했던 모양이지만 링컨의 상태는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견뎌야 했던 26살부터 심각한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중년에는 둘째 아들 에드워드와 셋째 아들 윌리엄의 연이은 죽음, 그의 임기 내내 계속됐던 전쟁이 특히 그를 괴롭혔다. 아들들을 잃은 슬픔은 강신술에 빠진 아내 메리 토드 링컨도 의지할 곳이 못 됐다. 심지어 그녀는 링컨의 죽음 뒤 파산했을 뿐 아니라 막내아들 태드까지 18살 때 죽자 정신병 판정을 받고 13개월간 입원한 이력까지 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링컨은 불굴의 의지로 버텨야 했다.

우울증은 그러나 링컨에게 저주받은 축복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훌륭한 정치가가 된 데는 우울증 탓이 컸다고 보는 연구자들이 많다. 그는 어릴 적부터 타인(종종 동물까지 포함해)의 불행에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가 남부 출신임에도 노예해방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는 병사들에게 이런 말을 뱉은 적도 있다. “누군가가 노예제에 찬성한다고 할 때마다 그 사람을 노예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더불어 그를 정치가로 돋보이게 해준 그의 뛰어난 문학성도 어느 정도는 우울증에 빚지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즐겨 인용한 그는 죽음을 안고 사는 인간의 운명에 관한 시와 우울을 희석해줄 만한 유머러스한 이야기에 모두 탐닉했다. 그 재능과 취향을 백분 활용한 그의 연설과 재담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매혹시켰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윌리엄 H. 수어드(William H. Seward, 1801~72) 국무장관, 에드윈 M. 스탠턴(Edwin M. Stanton, 1814~69) 전쟁장관(왼쪽부터)

링컨의 친구들

링컨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중도’의 미덕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에게는 어제의 적도 내일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그의 측근은 윌리엄 수어드 국무장관이다. 그는 상원의원과 뉴욕 주지사를 역임하며 공화당에서 가장 두터운 신망을 얻었던 후보였다. 그러니 그가 대통령 후보 공천 당시 링컨을 라이벌은커녕 풋내기로 여겼던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는 공천에서 패한 뒤로 링컨의 든든한 오른팔이 됐다. 국가의 미래를 낙천적으로 바라봤으며 사교에도 천부적인 재능을 자랑했던 그는 여러 면 에서 링컨의 부족한 점을 메워주기에 적합했다. 특히 그와 링컨의 우정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져 다른 각료들의 오해와 질투를 사기도 했다. 한편 일각이 시급한 판국에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링컨에 질겁하며 도망가는 전쟁장관 에드윈 M. 스탠턴도 링컨이 장 담그듯 사귄 친구다. 변호사 시절 월등히 잘나갔던 그는 링컨을 ‘긴팔 원숭이’라며 깔봤지만, 링컨은 그를 선뜻 전쟁장관 자리에 앉혔다. 두 사람은 탈영병 사면권 문제를 놓고 자주 티격태격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무뚝뚝하고 고집 센 그를 비난할 때면 링컨은 늘 그를 감쌌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링컨 추종자 한명이 떠오른다. 버락 오바마다. 실제로 백악관 입성 때 <링컨>의 원작인 도리스 컨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 라이벌까지 끌어안은 링컨의 포용 리더십>(Team of Rivals)부터 챙겼다는 그는 링컨을 교훈삼아 힐러리를 국무장관 자리에 앉히고 탕평책을 앞세웠다고 한다.

2명의 흑인 여성

영화 <링컨>에서 유독 대범하게 느껴지는 2개의 장면이 있다. 하나는 “노예일 때 주인한테 맞았냐”는 링컨의 막내아들 태드의 물음에 메리의 전속 디자이너 엘리자베스 케클리는 “너보다 어릴 적에 부삽으로 맞았다”고 직설화법으로 대답해주는 장면이다. 다른 하나는 헌법 13조 수정안 통과 뒤 공화당 급진파 새디어스 스티븐스가 수정안 문서를 집에 가져와 가정부 리디아 해밀턴 스미스에게 읽어 달라 청하는 장면이다. 이 두 흑인 여성은 짧은 출현만으로 링컨의 업적의 당위성과 위대함을 역설한다. 그래서 두 캐릭터가 각본가가 만들어낸 극적 설정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엄연히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다.

먼저 케클리는 노예로 태어나 39살 때 자신의 자유를 1200달러 주고 되산 진취적인 여성이었다. 어머니에게 옷 만드는 재능을 물려받은 그녀는 워싱턴 DC로 건너간 뒤 메리의 전담 재봉사가 되었다. 메리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남북전쟁에서 잃은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곧 함께 슬픔을 나누는 친구가 됐다. 그런가 하면 스미스는 25년간 스티븐스의 가정부로 일하며 그와 지금으로 치면 사실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심지어 스티븐스가 스미스의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낸 편지도 있다. 나아가 스티븐스는 스미스가 여성 사업가로서 경력을 쌓아나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주기도 했고, 함께 비밀 조직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의 파트너로서 노예들의 탈출을 돕기도 했다고 한다.

((주)이십세기 폭스코리아에서 제공한 프로덕션 노트와 <권력의 조건: 라이벌까지 끌어안은 링컨의 포용 리더십>(도리스 컨스 굿윈, 2005), <미국사 산책3: 남북전쟁과 제국의 탄생>(강준만, 2010), <광기의 리더십>(나시르 가에미, 2011)을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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