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크루즈 패밀리] 으악! 이 롤러코스터 같은 애니는 뭐지?
2013-05-13
글 : 송경원
세계 박스오피스 휩쓰는 드림웍스 신작 <크루즈 패밀리> 국내 개봉, 무엇이 특별한가

명가의 저력은 여전했다. 드림웍스의 신작 <크루즈 패밀리>가 북미 개봉과 동시에 전세계 박스오피스를 휩쓸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두눈으로 확인한 <크루즈 패밀리>의 결과물은 놀라웠다. 비주얼의 완성도에 입을 다물 수 없고 재기발랄한 웃음이 시종일관 이어지는 건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흥겨운 리듬을 잃지 않는다. 놀라운 성적표만큼 놀라운 영상을 선보인 사랑스러운 원시인 가족의 사연 속으로 들어가보자.

원시인 가족이 일을 냈다. 드림웍스의 신작 애니메이션 <크루즈 패밀리>가 3월22일 북미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하더니 5주가 지난 지금도 그 기세가 식을 줄 모른다. 북미 수익만으로도 이미 1억3천만달러의 제작비를 회수했고 이 추세라면 2억달러 달성도 무난해 보인다. 지난해 대량해고의 아픔을 안겨주었던 <가디언즈>의 손해쯤은 너끈히 메우고도 남을 정도다. 해외에서의 반응은 더욱 뜨거운데 개봉하는 국가마다 박스오피스 1위를 휩쓸며 북미시장의 두배가 넘는 수익을 기록 중이다.

<토이 스토리>(1996) 이후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후보작에 오르는 등 평단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아직 아시아시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지만 이미 최고의 성적표를 손에 들고 찾아오는 셈이다. 한때 북미 애니메이션 시장 재편의 여파로 위기를 맞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애니메이션 명가 드림웍스는 우리에게 낯설고도 익숙한 고인돌 가족을 통해 완벽하게 되살아났다. 도대체 그동안 드림웍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드림웍스의 ‘신의 한수’

놀랍고 신나고 재미난다. 아직 상반기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감히 올해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아니 근 몇년 사이 이만큼 유쾌하고 영리한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없다. 그만큼 만족스럽다. 이야기가 특별히 참신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수적인 편에 가깝다. 디자인이 특별히 예쁜 것도 아니다. 얼핏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을 연상시키는 캐릭터 디자인은 북미에서는 친숙할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눈이 즐거운 캐릭터들이라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유머 또한 크게 나무랄 데 없는 반면에 상당 부분 북미 정서에 맞춰져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크루즈 패밀리>는 이처럼 미묘한 정서적 온도 차쯤은 무시하고도 남을 만한 완성도를 선보인다. 고만고만해 보이는 요소들이 조금씩 평균을 넘어 조화를 이뤘을 때 어떤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지를 보여주는 보기 드문 완성도의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 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요약하자면 대륙 이동을 맞이한 원시인 가족의 생존기. 동굴 밖에 도사린 온갖 위험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굴 안에서의 삶을 택한 크루즈 가족은 사냥할 때를 제외하곤 동굴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큰딸 이프(에마 스톤)는 모든 것을 두려워하고 조심하라는 아빠 그루그(니콜라스 케이지)의 태도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불빛에 이끌려 아빠 몰래 동굴 밖을 나온 이프는 또 다른 원시인 남자 가이(라이언 레이놀즈)를 만나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가이는 ‘케이브맨’(caveman, 동굴에 사는 원시인)인 크루즈 가족과 달리 불과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아이디어맨이다. 마침 지구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고, 이프는 가이를 통해 자신들이 머물던 동굴도 더이상 안전한 곳이 아님을 깨닫는다. 결국 동굴이 무너지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 구사일생 살아남은 크루즈 가족은 다시 한번 가이와 만나 (정확히는 가이를 납치해) 신세계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선사시대로 간 엔터테인먼트 모험담

엄하고 보수적인 아버지와 자유분방한 딸.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성장드라마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흔한 설정이다. <크루즈 패밀리>는 원시시대라는 새로운 배경 곳곳에 이같은 현대적이고 낯익은 설정을 끌고 온다. 이야기는 가족의 화합,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 모험에의 동경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드라마의 패턴을 한치의 어긋남 없이 따라간다. 그래서 재미가 없냐고?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래서 새롭다. 혼동하기 쉽지만 식상함과 익숙함은 엄연히 다르다. 참신함과 어색함도 마찬가지. 드림웍스의 전작들이 붙잡혔던 ‘새로움’의 강박에서 자유로워진 <크루즈 패밀리>는 이야기가 무엇에, 그리고 무엇을 위해 집중해야 하는지를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크루즈 패밀리>가 펼쳐놓는 상상 속의 선사시대는 문자 그대로 ‘신세계’다. ‘그린다’는 의미에서 이제는 영화와 거의 구분되지 않을 지경에 이른 기술력은 극한의 비주얼로 가상의 시공간 ‘크루데시우스’기를 재현해냈고, 무엇이든 가능한 그곳에서 관객은 익숙한 상상력의 다채로운 결합을 목격한다. 곰과 너구리가 섞인 곰빼미, 코요테와 도마뱀을 합쳐놓은 도아요테, 잉꼬에 피라니아의 이빨을 더한 피라니아꼬 등 익히 알고 있는 동물들이 기발한 방식으로 섞여 있는 모습을 보며 익숙한 요소들을 비트는 재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캐릭터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몇몇 시퀀스에서 기발한 농담들을 창조해내는데, 이를테면 무려 10분여에 이르는 오프닝의 사냥 시퀀스는 동물의 알을 훔치는 장면을 미식축구와 결합해 한바탕 신나는 스포츠 게임을 감상하는 듯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식이다. 이러한 방식의 창조적인 재해석은 영화 곳곳에서 스노 보딩이나 스쿠버 다이빙 같은 스포츠와 유사한 형태로 재현된다. 레포츠로 재해석한 선사시대는 패러디에서 유발되는 웃음과 함께 선사시대를 속도감있고 시원한 화면으로 살려낸다.

중요한 점은 이같은 엔터테인먼트는 어디까지나 현실과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의 사실적인 재현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크루즈 가족이 강가에서 물장구 칠 때의 수면의 움직임은 <라이프 오브 파이>의 바다와 같고, 숲속 나무 위에서 바라본 밤하늘의 별이 쏟아질 것 같은 장관은 실제와 환상의 경계에서 보는 이의 탄성을 절로 이끌어낸다. 마치 내가 그들과 함께하는 것 같은 비주얼 쇼크, 그것이 있기에 애니메이션 특유의 과장된 표현이 더욱 힘을 받는다. <크루즈 패밀리>는 ‘그리는 영화’가 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실감을 재현하는 동시에 애니메이션이기에 용납할 수 있는 요소는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애니메이션 고유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이중의 전략을 취한다.

요컨대 <크루즈 패밀리>의 캐릭터 디자인과 몇몇 장면의 표현은 환상적인 동화의 형식을 따르지만 그 기반은 극도의 사실주의에 있다. 이는 비단 화면의 재현 차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크루즈 패밀리>는 영상의 리얼리티를 위해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최초로 다큐멘터리 촬영기법을 선택했다. 인물의 뒤를 따르며 미세하게 흔들리는 카메라가 우리에게 사실 체험에 가까운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다. 더불어 단 하나의 정지컷 없이 진행되는 1260여개의 숏들이 절묘한 리듬감과 함께 롤러코스터 같은 속도감을 부여한다. 미식축구, 스냅숏 등 여기저기서 번뜩이는 깨알 같은 농담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가운데에도 산만하기보다는 흥겨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간 할리우드 대형 애니메이션들의 기본전략은 보편성에 있었다. 정서적인 차이를 줄여 최대 다수가 만족할 만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것이 목표였던 셈이다. 디즈니가 이를 통해 왕국을 건설했고 픽사와 드림웍스가 이에 대한 반발과 전복을 통해 일가를 이루었다. 그러나 역발상의 감옥에 갇힌 드림웍스의 총기는 점차 무뎌졌고 결국 지난해 개봉한 <가디언즈>를 통해 다시금 당연한 동화의 세계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문제는 가공방식의 숙련도에 있었다. <가디언즈>는 눈높이 조절에서 미숙함을 드러내며 당연한 세계를 식상하게 다뤄 실패했다. 하나 드림웍스는 이 실패를 통해 여러 가지를 배워온 듯하다. <크루즈 패밀리>의 놀라움을 확인하고 나니 그간의 부진이 이번 도약을 위한 움츠림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익숙한 이야기, 새로운 형식

<크루즈 패밀리>는 원시시대로 돌아간 이야기의 무대처럼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도 초심으로 돌아간다. 태초에 이야기는 공감, 교훈, 그리고 즐거움의 결정체였다. 자나 깨나 가족 걱정인 아빠 그루그는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죽는다’는 이야기를 통해 금기를 각인시키고 가족을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려 한다. 이는 나쁜 의도가 없을지라도 나쁜 결과(그저 사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구석기인의 생활)를 가져온다. 목적이 과정을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중반 이후 이야기의 중심이 가이로 바뀌면서 이야기도 변하기 시작한다. 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루그의 그것과는 정반대다. “모험을 해라, 멈추지 마라, 내일로 향해 달려가라.” 사실 두 가지 명제는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재미, 달리 말하면 즐거움에 대한 비전이다. 그루그의 이야기는 교훈을 위해 즐거움을 금지시키는 반면에 가이의 이야기는 과정의 즐거움에 가치를 둔다. 과정의 즐거움, 롤러코스터를 타는 순수한 쾌감 그 자체, 그것이 바로 <크루즈 패밀리>가 식상한 이야기를 놀라운 체험으로 탈바꿈시키는 비밀이다.

동굴에 사는 구석기인이었던 크루즈 가족은 도구를 활용하고 내일로 나아가려는 가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관객 역시 크루즈 가족의 모험을 통해 ‘크루데시우스’라는 상상 속의 선사시대를 경험한다. 가이의 이야기가 모험이라는 체험을 통해 직접 전달되는 것처럼 <크루즈 패밀리>의 익숙한 서사는 새로운 시각적 경험이라는 과정을 통해 전혀 다른 체험으로 탈바꿈한다. <크루즈 패밀리>가 선보이는 화려한 시각적 향연 앞에서 관객은 순수하게 그들의 모험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즉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새롭게 느껴지도록 포장하는가가 관건이라는 말이다. 때문에 <크루즈 패밀리>에는 그리 대단한 드라마나 교훈이 필요치 않다. 중요한 건 과정 자체의 즐거움. 안정적이고 익숙한 드라마는 오직 그것을 위함이다. <크루즈 패밀리>의 이야기는 숱한 동화에서 익히 보아온 것처럼 감동을 강요하지도 교훈을 훈시하지도 않는 대신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어준다. 덕분에 이 탄탄한 그릇에 담기는 것은 신기하고 경이로운 신세계의 풍경과 쉴 틈 없이 터지는 깨알 같은 웃음이다. 덧붙여 이 짜릿한 모험의 쾌감은 편집과 촬영의 절묘한 리듬감으로 상영 시간 내내 유지된다. 신세계로의 롤러코스터는 그렇게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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