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스터 스쿼드>는 1949년 LA를 주름잡은 갱 두목 미키 코헨(숀 펜)을 소탕하기 위해 정의감으로 무장한 LA 경찰들이 뭉치는 범죄영화다. 자경단 같은 LA 경찰들이 미키 코헨의 조직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도시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는 모습은 여러모로 존 포드나 하워드 혹스의 서부극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숀 펜을 비롯한 라이언 고슬링, 조시 브롤린, 에마 스톤, 닉 놀테 등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출연진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영화는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고 DVD와 블루레이로 출시됐다. 김효선 영화평론가가 <갱스터 스쿼드>를 소개하고, 안현진 LA 통신원이 루벤 플레셔 감독, 라이언 고슬링, 조시 브롤린 인터뷰를 보내왔다. <갱스터 스쿼드>처럼 최근 DVD와 블루레이로 직행한 여러 편의 영화도 함께 덧붙인다.
배리 레빈슨의 <벅시>(1991)는 갱스터계의 ‘위대한 개츠비’, 벅시 시겔의 무모한 꿈과 열정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에는 1940년대 미국을 주름잡던 거물급 갱스터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그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벅시의 조력자였던 미키 코헨이다. 미키 코헨은 갑자기 등장해 5분여간 쉴 새 없이 욕설을 퍼붓고는 곧 사라지는데, 그를 연기한 하비 카이틀은 이 짧고 굵은 등장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까지 오른다. 거금을 훔쳐놓고도 “내 것은 내 것”이라며 뻔뻔하게 우기던 하비 카이틀의 성마른 연기는 실제 미키 코헨이 얼마나 다혈질이었으며, 자기애가 강한 인물이었는지를 짐작게 한다.
미키 코헨은 당대의 여느 갱 두목들처럼 연일 신문 1면에 오르내리는 유명 인사였고, 그에 걸맞은 쇼맨십도 갖추고 있었다. 1940년대 후반 그는 마약, 밀수, 매춘, 카지노 등 각종 불법 혹은 합법 사업으로 LA를 장악했고, 한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1951년, 그가 마침내 탈세 혐의로 체포되면서 일순간 LA에는 권력의 공백이 생기게 되는데, 이때의 혼란에서 시작하는 영화가 바로 커티스 핸슨의 <LA 컨피덴셜>(1997)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소개할 영화 <갱스터 스쿼드>는 바로 그 직전, 미키 코헨이 경찰과 사법부까지 매수하며 세를 불리던 1949년을 배경으로 한다.
리얼리즘과 유머가 만난 갱스터 무비
암흑가와 할리우드의 화려함이 공존하던 LA에 일군의 경찰이 은밀히 모여든다. 이 무리의 수장이 바로 존 오마라(조시 브롤린) 형사다. 그는 말이 좋아 원칙주의자이지, 사실 타협할 줄 모르는 고집불통으로 영화 속 비유를 빌리자면, “온 동네가 물에 잠겼는데 헤엄을 치기보다 물을 퍼내려드는” 종류의 사람이다. 그는 동료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미키 코헨 수하의 포주들을 잡아들이고, 이를 눈여겨본 경찰서장 파커(닉 놀테)의 지시로 작전 팀을 꾸리게 된다. 그 결과, 이제는 퇴물이 되어버린 전설의 총잡이 맥스(로버트 패트릭)와 그의 어수룩한 조수, 정의감이 넘치는 흑인 경찰과 통신 전문가, 그리고 미키의 애인 그레이시(에마 스톤)와 사랑에 빠진 젊은 형사 제리(라이언 고슬링)까지 도합 6명이 속칭 ‘갱스터 스쿼드’ 팀을 구성하게 된다. <갱스터 스쿼드>의 전반부는 오합지졸과 같은 이들이 하나둘씩 합류하며 미키 코헨 대 존 오마라 사단의 대결 구도를 만드는 과정에 할애된다. 이 6명의 팀원들은 미키의 자금줄이 되는 각종 사업장을 급습하며 게릴라식 공격을 감행하기로 한다.
부패한 경찰 집단 한가운데에서 얼치기 팀원들이 모여 갱 두목과의 싸움을 이어가는 <갱스터 스쿼드>의 스토리라인은 브라이언 드 팔마의 <언터쳐블>(1987)과 매우 닮아 있다. 미키 코헨의 자아도취적인 성격도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알 카포네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언터쳐블>이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자아내는 장중한 분위기 속에서 일련의 비극적 사건들을 경유하고 있는 반면, <갱스터 스쿼드>에서는 팀원이나 민간인의 수난이 도드라지지 않으며 심각한 설정들은 줄곧 코믹한 코드로 버무려진다. <좀비랜드>(2009)를 만들며 주목할 만한 신예로 떠오른 루벤 플레셔 감독은 전작과 달리 리얼리즘의 포즈를 취하면서도 동시에 매 신이 의외성을 갖도록 노력한 듯 보인다. 그 결과, 시대에 대한 세심한 고증, 갱스터영화의 클리셰, 그리고 만화를 연상시키는 해프닝이 혼재된 다소 괴상한 갱스터영화가 만들어졌다.
리얼리즘과 장르적인 상상력의 만남은 때로 예리한 칼날이 되어 현실을 벼려낸다. 플레셔 감독 스스로가 무한한 애정을 밝힌 바 있는 코언 형제, 혹은 타란티노의 영화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루벤 플레셔라는 코언 키드는 코언 형제 식의 냉정한 비틀기가 아닌,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유머를 택한다. 미키와 존이 결국 동류의 인간이었음을 드러내는 방식만 보아도 그렇다. 이들의 승부는 맨주먹 싸움을 통해 최종적으로 판가름난다. 동료의 희생을 목격하고, 격렬한 총격전까지 거친 이들의 대결이 맨주먹 싸움이라니, 이 얼마나 뜬금없고 낭만적인 발상인가? <갱스터 스쿼드>의 울퉁불퉁한 배합은 진득한 서사를 예상한 이들이나 화끈한 액션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기대한 이들, 양쪽을 모두 배반한다. 아마도 이는 <갱스터 스쿼드>가 오락영화로서 갖는 분명한 한계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덜컹거리는 빈틈을 유머러스한 온기로 채우고 있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존 오마라 사단은 작전이 수포로 돌아가고 신분을 위장한 일부 팀원이 경찰에 붙잡히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익살과 재담을 이어간다. 웃음은 상황을 와해시키는 전복적인 힘을 갖고 있다. 그 덕분에 차곡차곡 쌓아올린 긴장구도가 어이없이 무너질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 반전에 집착하지 않고 저들이 벌이는 순박한 대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만든다.
아메리칸드림을 둘러싼 선과 악
플레셔 감독은 자동차나 복식, 건물 등의 디테일에서 당대 분위기를 충실히 담으려 애쓰면서도 갱단과 경찰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에는 과감히 변형을 꾀했다.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천사들의 도시’ LA의 평화를 선언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서사적인 매듭일 뿐, 부패한 세력은 지속적으로 도시를 장악하게 된다. 이같은 맥락에서 미키 코헨이 존 오마라에게 했던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미키는 자신이야말로 “진보”이고, 존을 비롯한 경찰들은 “진보의 방해자”라고 말한다. 이 진술은 범죄를 합리화하는 단순한 변명이 아니다. 영화에서 미키 코헨은 LA라는 공간이 지시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자신의 삶에 반복적으로 투사한다. 브루클린 태생의 유대인 복서 미키는 여타 동부 뜨내기들의 방해를 물리치고 결국 마피아 보스가 되었고, 이로써 과거 서부에서 인디언, 멕시칸과 싸우던 선조들의 ‘명백한 운명’을 계승했다는 것이다.
미키의 대사는 폭력의 역사를 신화로 대체하는 불온한 수사이지만, 그가 자본주의의 생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아메리칸드림이라는 관념을 물질화해온 것만은 사실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뒤 세상이 어지러웠던 시기에 거친 꿈을 꾸었고, 그만의 왕국을 이뤄내 그 꿈을 현실화했다. 할리우드가 알 카포네나 벅시 시겔, 미키 코헨과 같은 갱스터들에게 꾸준히 관심을 보인 것은 이들이 소위 개척정신을 어떤 식으로든 실현했었던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에 비한다면, ‘갱스터 스쿼드’ 사단은 이 잔악한 성공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실패자들이다. 참전용사였던 존은 전쟁의 열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시대착오적인 인물이다. “모든 걸 잃고 전쟁을 이기면 영웅, 모든 걸 잃고 전쟁도 지면 바보”라는 그의 대사에는 결국 이들이 철저한 상실을 통해서만 무언가라도 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리고 이들은 희생과 실패의 대가로 명예를 얻는다.
흥미로운 점은 존과 미키가 동류의 인간이듯이 ‘정의’를 지향하는 존의 수사와 미키가 구사하는 ‘성공’의 수사가 동전의 양면 같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도덕을 수호하는 천사의 것이든 폭력을 지향하는 타락천사의 것이든 간에, 이들의 욕망은 미국적 신화를 지탱하는 동력이 된다. <갱스터 스쿼드>는 특유의 소박한 분위기와 노골적인 대사들 덕분에 아메리칸드림을 둘러싼 선과 악의 대립, 혹은 긴밀한 공조를 여느 갱스터물보다 간결하게 드러낸다. 이 영화가 <위대한 개츠비>(2013)의 개봉 시기에 소개되는 것은 우연이지만, 어쩌면 미국 문화의 화수분과도 같은 주제를 상이한 방향에서 비교해볼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