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왕가위] 王家衛(왕가위) 그가 돌아왔다
2013-07-01
글 : 주성철
<일대종사>로 돌아온 왕가위 감독을 말하다

지난 2013 중국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일대종사>는 왕가위 고유의 색깔과 새로운 변화 모두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크리스토퍼 도일은 없지만 영원한 페르소나 양조위가 남아 엽문을 연기했다. 양조위가 무술에 능하지 않은 배우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마치 원래부터 한몸이었던 것처럼 엽문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이미 대작 블록버스터들을 위시해 무수한 무협영화들이 활개를 치는 중국 영화계에서, 왕가위와 원화평 무술감독이 만들어낸 적재적소의 액션 신들도 감흥을 더한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와 <동사서독 리덕스>를 거치며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왕가위가 그렇게 돌아왔다. 지난 2008년 <동사서독 리덕스> 상영차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지 5년 만에 방한한 왕가위 감독을 만났다. 함께 한국을 찾은 양조위, 장쯔이와의 만남은 무비꼴라쥬를 통해 정식 개봉하는 8월경 독자들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일대종사>가 시작하면 화려한 컴퓨터그래픽 이미지들이 이어진다. 왕가위의 최근작이라고 불러야 할 <동사서독 리덕스>(2008)에서 본 것 같은 세월의 흐름이 새겨진 이미지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실망스런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2007) 등을 거치며 장국영의 안타까운 죽음과 함께, ‘우리가 그토록 열병에 빠졌던 왕가위의 세계는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서둘러 단정지을 쯤, 왕가위의 중국식 간체자 표현인 ‘王家 ’라는 거대한 자막이 낯설게 흘러간다. 이제는 장국영을 장궈룽이라 부르고, 주윤발을 저우룬파라 부르며, 왕가위도 왕자웨이로 호명해야 하는 이질감을 마치 그의 영화를 통해 확정짓는 서글픈 느낌이다.

왜냐하면 왕가위의 영화는 스크린의 사면을 가득 채운 한자가 유난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阿飛正傳’(아비정전)이라는 제목이나 자신의 영화사인 ‘澤東’(택동), 그리고 그의 이름 ‘王家衛’(왕가위)라는 한자가 영화의 초반에 화면을 가득 메울 때부터 인물의 운명은 이미 결정지어졌다. 좀 과장하자면,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도록 아무런 빈틈도 없이 꽉 채워진 세상의 굴레랄까. 그는 그것을 오프닝부터 보여줬다. 그래서 중국영화와 홍콩영화의 교류와 결합이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인 것처럼, <일대종사>는 바로 그 왕가위라는 간체자가 주는 이질감이 가장 먼저 크게 다가왔다. 이제 정녕 왕가위는 저 멀리 떠나버린 것인가.

<일대종사>와 6인의 촬영감독

영화가 시작하면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가운데 일단 싸우기 시작한다. 그다음 술잔을 기울이다 문득 이어지는 엽문(양조위)의 충고. “네 쿵후 실력을 함부로 내세우지 마라. 너의 문파가 최고라 말하지 마라. 쿵후, 그것은 오직 하나의 수직과 수평의 만남.” 그렇게 <일대종사>는 어떤 실력의 우위보다 그 자신이 서 있는 본연의 자리에 대해 얘기한다. 하지만 엽문의 충고는 받아들여진 것 같지 않다. 수직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수직으로 달려드는 수많은 사내들이 내지르고 쓰러지며, 그들의 기합과 비명은 빗줄기와 함께 쓸려 나간다. 같은 원화평의 솜씨이기에 당연하겠지만, 마치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절대자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빗속에서 벌였던 결투 신과 무척 유사하다. 다만 거기에 왕가위의 흔적이 더해진다. 모자를 쓴 엽문의 모자챙 위로 떨어지며 튀어오르는 물방울,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키고 물결치며 그 물은 거대한 회오리를 이룬다. 그 어떤 세상의 흐름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겠다는 왕가위 자신의 다짐이랄까. 하나의 수직과 수평, 그것은 영화의 마지막 대사이기도 하다.

<일대종사> 역시 수십만자의 필름을 썼던 그의 이전작인 <동사서독>(1994), <해피 투게더>(1997), <2046>(2004)처럼 기나긴 촬영기간을 거쳐 완성됐다. 영화계를 떠난 임청하가 엽문의 아내 역할로 돌아온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그것은 결국 한국 배우 송혜교의 몫으로 남겨졌다. 그렇게 홍콩으로 떠난 송혜교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엽문의 실제 아들인 엽준 선사로부터 무술을 배우는 양조위의 실력이 썩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가십 기사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른바 ‘왕가위 스타일’의 가장 거대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촬영기간이 길어지고 왕가위 감독이 어떤 변덕을 부려도 그 옆을 든든히 지키고 있던 현장의 또 다른 야전사령관이었다. 그런데 <일대종사>에는 크레딧에 올라간 필립 르 소드 촬영감독 외에 과거 <황비홍> 시리즈의 3, 4편을 촬영했고 최근 엽위신 감독의 <용호문>(2006) 등을 촬영한 고조림 촬영감독을 비롯해 송소비, 조만강 등 무려 총 6명의 촬영감독이 번갈아 투입됐다. 크리스토퍼 도일이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종의 실화를 다룬 만큼 기본적으로 완성된 형태의 시나리오가 필요했다. <일대종사>는 지난해 개봉한 중소 규모의 무협영화 <왜구적종적>(2012)으로 주목받은 중국 본토의 신예 감독 서호봉과 함께 각본을 썼다. 국내에는 전혀 알려진 바 없는 신인이지만, 왕가위의 선택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이후를 주목해볼 만한 이름이다. 그렇게 <일대종사>는 이전 그의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억측과 우여곡절 속에서 완성됐다.

<일대종사> 촬영현장

춤을 추듯 합을 겨루며

1930년대 일제침략기, 엽문은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 중국 쿵후의 세대교체 중심에 선다. 전국 무술계를 통합한 궁(宮)가의 궁대인(왕경상)이 자신의 후계자를 물색하는데,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제자 마삼(장진)의 지나치게 공격적인 성향을 우려하며 “네 칼은 너무 날카롭다. 칼집에 잘 숨겨야 한다”며 선뜻 후계자로 내세우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남방 무술의 새로운 실력자인 엽문을 눈여겨본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궁대인의 딸 궁이(장쯔이)는 엽문에게 대결을 청한다. 그 대결 과정에서 궁이는 엽문의 실력과 인품에 반하게 된다. 하지만 엽문은 이미 결혼한 몸이다. 바로 송혜교가 엽문의 아내로 출연해 (중국어 연기 문제가 가장 컸겠지만) ‘사소한 말실수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말을 아끼는’ 사려 깊은 부인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엽문은 불산이 일본에 점령되자 어려운 세월을 보내게 되고, 전후 홍콩에 정착하여 영춘권을 전파한다.

이미 엽위신 감독과 견자단에 의해 영화화된 <엽문>(2008) 연작을 통해 엽문(1893∼1972)에 관한 이야기는 꽤 널리 알려졌다. 무엇보다 이소룡(1940∼73)에게 영춘권을 가르친 스승으로 유명하며, 각 무술 문파에서 한 시대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위대한 스승을 지칭하는 일대종사(一代宗師)라 불리는 몇 안되는 인물이다. <엽문>처럼 <일대종사> 역시 일제강점기를 경유하는 엽문의 중년기를 그리고 있는데, 가장 다른 두 가지는 당시 이른바 ‘무림’의 의사결정기관이라 할 수 있는 ‘금루’라는 독특한 공간에 대한 묘사와 장쯔이가 연기한 가공의 인물 궁이 아가씨의 존재다.

먼저 1936년 시작하는 <일대종사>는 단순하게 묘사해 ‘요정’ 혹은 ‘기생집’이라 할 수 있는 불산의 공화루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회의를 갖는다. 홀 안이 온통 황금으로 둘러싸여 ‘금루’라 불리는 공화루는 광둥지역에서 첫 번째로 현대식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이고 ‘왕자를 거지로 만든다’는 말이 돌 만큼 향락과 소비의 공간이다. 공교롭게도 역시 양조위의 출연작이기도 한 허우샤오시엔의 <해상화>(1998)에 등장했던 유곽과 같은 의미의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과 별개로 그 안에는 숨은 고수와 영웅들이 존재했고 무림의 중요한 얘기들이 오갔다. 궁대인은 바로 거기서 자신의 후계자를 결정지으려 한다. <엽문>과 다른 <일대종사>의 판타지적인 면모, 혹은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무림의 계보 안에 자리한 엽문의 면모, 그리고 무술의 통합을 통한 남과 북의 관계 설정(혹은 중국 본토와 홍콩의 관계)이라는 역사적 측면에서 엽문을 읽으려는 왕가위의 노력이 바로 거기 담겨 있다.

여기서 왕가위의 가장 명확한 야심이 새겨진 캐릭터는 바로, 엽위신의 <엽문> 시리즈에서는 아예 그 흔적조차 없는 허구의 인물인 궁이 아가씨다. 이를 통해 왕가위는 엽문이라는 캐릭터 안에 그 특유의 회한의 정서를 새겨넣는다. <화양연화>에서 각자의 배우자를 두고 애틋한 관계를 나눴던 주 선생(양조위)과 수리첸(장만옥)의 관계까지는 아니지만, <동사서독>에서 서로 멀리 떨어진 채(헤어진 이후 단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무상한 그리움을 품었던 구양봉(장국영)과 한 여인(장만옥)의 관계와 가장 유사해 보인다. 혹은 리안의 <와호장룡>(2000)에서 리무바이(주윤발)와 수련(양자경)의 이루지 못한 관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하는 고증을 넘어 엽문이라는 캐릭터가 찌든 세파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고독과 대면했는지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다. “인생에서 후회가 없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라며 회한에 젖는 양조위와 장쯔이의 모습에 왕가위 특유의 섬세한 멜로적 무드가 배어든다. 등불과 수많은 기녀들을 배경으로 한 채 두 사람이 마치 바로크풍 회화의 주인공처럼 자리한 장면 역시 강렬하다. 두 사람이 금루의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거의 춤을 추듯 합을 겨루는 대결은 <일대종사>의 압권이라 할 만큼, 마치 <해피 투게더>에서 보영(장국영)과 아휘(양조위)의 탱고처럼 그야말로 에로틱하다. 왕가위라는 간체자가 줬던 이질감은 어느덧 <일대종사>의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사라지고 만다.

<일대종사> 촬영현장
<일대종사> 촬영현장

<중경삼림>의 홍콩과 <일대종사>의 홍콩

<일대종사>의 주된 정서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이다. 궁이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무술도 전하지 않은 채 혼자 죽었다. 궁이 또한 <화양연화>의 주인공들처럼 낡은 사원의 해진 벽에 자신의 마지막 말을 남긴다. 그렇게 딸로서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절세무공인 궁가의 64수는 사라졌다. “세상의 모든 만남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꼭 다시 만난다”고 했지만 엽문과 궁이는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왕가위의 영화에서 모든 인물은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왕가위가 무림의 마지막 일대종사 엽문을 통해 들여다보는 당대 중국의 근대사도 그러하다. 도장의 한구석에서 엽문이 마치 <중경삼림>(1994)의 경찰(양조위)처럼 고독하게 앉아 있고, 주변 인물들은 재빨리 휙휙(<중경삼림> 이후 수많은 영화들이 패러디했던!) 지나간다. <중경삼림>의 홍콩과 <일대종사>의 홍콩은 20년의 세월을 두고 양조위를 통해 그렇게 만난다.

<일대종사>가 그려낸 것은 이제는 홍콩영화에서도 드물게 보는 정통 맨손 권법의 세계다. 홍권, 팔괘장 등 익숙한 권법 용어가 엽문의 성장과 함께 드러난다. 플래시백으로 엽문의 스승으로 등장하는 진화순은 영춘권의 상징적인 존재인 양찬(1826∼1901, 1982년작 <패가자>에서 원표가 양찬을 연기했다)의 제자로, 무술감독이기도 한 원화평이 특별 출연했다. 원화평은 양찬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영춘권의 창시자로 불리는 엄영춘(양자경)을 주인공으로 한 <영춘>(1994)을 만들기도 했으니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더구나 <일대종사> 초반부에 엽문이 봉으로 못을 박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양찬을 길러낸 황화보라는 스승은 소림봉술의 대가인 양이제와 만나 서로의 기술을 나누었던 관계로 봉술이 영춘권 안에 들어오게 됐다. 그렇게 왕가위는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충실히 공부했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듯 굉장히 꼼꼼하게 당대의 권법 지형도를 묘사한다.

그 풍경의 묘사를 위해 양조위는 왕가위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어떤 위계질서 속에 놓인다. 지금껏 왕가위의 영화에서 ‘후계’ 혹은 ‘승계’라는 개념이 있었던가. 심지어 무협소설을 영화화한 <동사서독>에서도 무림의 선후배 개념이 없었다. 당시 중국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며 근본이 뒤틀리기까지 화려한 권법의 세계를 구가했다. 말하자면 ‘일대종사’라는 표현 자체도 그 시기를 지나며 사라져버린 품격의 단어다. 권법의 화려했던 날은 가고 일대종사의 역사도 막을 내렸다. 그것은 왕가위가 보기에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은 ‘홍콩영화의 화양연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대종사>라는 제목은 이제는 지나가버린 <화양연화>라는 제목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게 엽문은 평생 간판을 걸지 않고 영춘권을 전파하며 살았다. 다시는 고향인 불산으로 돌아가지 않고 홍콩에 남았던 엽문은, 상하이에서 태어나 새로운 고향 홍콩에 터를 잡은 왕가위의 또 다른 모습처럼 느껴진다. <일대종사>는 홍콩영화의 정신과 향수를 잊지 않고 살겠다는 왕가위의 다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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