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왕가위] ‘권’(拳)에는, 영화에는 남과 북이 따로 없다
2013-07-01
글 : 주성철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왕가위 감독 인터뷰

<동사서독 리덕스> 상영차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지 어느덧 5년. 제작지연을 둘러싼 무수한 소문이 무색하게 <일대종사>는 우리가 그에게 기대했던 바로 그 영화였고, 왕가위는 역시 왕가위였다. 이전 영화들을 떠올리게 하는 명장면도 군데군데 숨어 있고, 그의 새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지점들도 있었다. 그렇게 그는 지난 공백이 무색하게 그만의 시각과 품격을 담은 영화를 만들었다. 변함없는 선글라스의 카리스마를 유지한 채 왕가위는 인터뷰 내내 담배를 피우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그와의 만남을 한줄로 정리하자면, 엽문은 바로 왕가위였다.

-양조위와 장쯔이의 만남에서 자연스레 <2046>이 떠오른다.
=<2046>은 내 영화들 중 시대적이고 현실적인 감각이 가장 희미한 영화였다. 반면 <일대종사>는 내 영화들 중 실존인물이 등장하는 유일한 영화이기도 하고, 명확한 시대적 배경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영화다. 그래서 양조위와 장쯔이가 출연하긴 하지만 그들과 다시 만났다는 특별한 느낌이나 부담감은 없었다.

-홍희관, 곽원갑, 황비홍 등 ‘일대종사’라 불리는 무수한 무도가 중 유독 엽문에 이끌린 이유는.
=중국과 홍콩을 아우르는 지난 100년의 역사 속에서 엽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삶에서 중국 근대화의 화려한 역사를 읽을 수 있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엽문은 마흔살까지 단 한푼도 돈을 벌어보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다 마흔살에 맞닥뜨린 전쟁으로 심각한 재정적 문제에 직면해 하나둘 자신의 것들을 잃어가게 된다. 하지만 삶의 끝에서 자신의 몸 하나만 남게 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지키려 했다. 그 인생을 통해 민국시대 무림의 정신, 곡절 많은 중국의 근대사를 그리고 싶었다.

-공화루라는 공간이 무척 특이하다. <일대종사>가 가진 판타지로서의 면모를 압축해놓은 공간이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들어서던 그 사이, 공화루는 일종의 사교 클럽으로서 당대의 중요한 문화 교류 장소였다. 기녀가 있고 풍류를 즐기는 곳이지만 청나라 때는 고위관료들의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무림의 중요한 일들이 논의되는 곳이기도 하다.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지만 현실의 역사를 결정하는 곳이기도 했다.

-오프닝의 빗속 결투 신, 엽문이 여러 명의 고수와 대결을 벌이며 모두의 인정을 받는 금루 액션신, 엽문과 궁이의 일대일 격투 신 등이 기억에 남는다. 각기 다른 접근법이 돋보인다.
=오프닝 대결 장면은 그의 무공이 대단하다고 인식하게 되는 장면이라 절대적인 고수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수많은 적들과 상대하는 엽문의 모습을 통해 그의 고독한 일생을 드러내고 싶었다. 팔괘장, 홍가권 등 여러 고수들과 대결하는 장면은 그가 모두의 추대를 받기 위한 근거가 되는 장면이다. 궁대인이 은퇴를 앞두고 후계자를 정해야 하는데 마삼은 부족하다. 그러다가 엽문이라는 괜찮은 친구가 남쪽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일이 복잡해진다.

-엽문과 궁이의 대결은 생사를 건 싸움이기보다 춤을 추듯 두 사람의 내밀한 교감을 보여주는 것 같다.
=중국 속담에 가장 좋은 적수는 바로 자신의 지기(知己)라는 말이 있다. 훌륭한 무도가들은 그 대결을 즐기고 궁극적으로 서로를 인정하며 흠모하게 된다. 그래서 어쩌면 두 사람이 탱고를 추는 것 같은 에로틱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어떤 스포츠 스타의 인터뷰를 보니 정말 뛰어난 적수를 만나 기진맥진하게 대결을 벌이고 났을 때, 마치 멋진 섹스를 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는 걸 본적 있다. 아마도 엽문과 궁이의 대결이 그런 느낌이지 싶다. 본능과 감정을 일깨우는 그런 대결이다.

-궁이의 존재는 이 영화의 중요한 허구라 할 수 있다.
=궁이는 절대적으로 새로이 창조된 존재가 맞다. 엽문의 생애를 돌아보고 자료를 조사하는 가운데 그런 식으로 허구가 많이 가미됐는데, 그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테마의 본질을 흩뜨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엽문의 상대로 창극을 하는 여자, 작가, 무술하는 여자 등 많은 사람을 떠올리다가 현재의 모습이 됐다. 물론 신구 교체가 이뤄지던 민국 시대에, 그 모든 모습이 한데 모여 있는 신여성이기도 하다. 그때는 여자가 자신의 의지를 마음대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자신의 권리를 쟁취한다는 개념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에 궁이 캐릭터는 엽문과 대등하게 무척 중요하다.

-궁이는 <일대종사>의 감춰진 주인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당시에 전통적 여성들의 무술세계라는 것은 없었다. 무술하는 여자가 없었다는 게 아니라 <일대종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무림 안에서의 ‘지위’라는 게 없었다는 의미다. 그런 가운데 궁이 캐릭터는 무림세계 안에서 운명을 거부하는 존재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외 영화 속 허구라고 할 만한 설정이 더 있나.
=가령 금루에서 전족을 하고서 팔괘장을 구사하는 여자 고수는 과거 무협소설에서나 봤던 캐릭터이지 실제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대종사>가 무협영화로서 가지는 재미라고 보면 된다. (웃음) 무엇보다 일제강점기라는 역사로 인해 엽문이 지나치게 이상화, 영웅주의화돼 있었다. 엽문이 중국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일본인이나 서양인 고수와 싸웠다는 것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다 사실이 아니었다. 엽문의 목표는 윗세대로부터 계승한 것을 어떻게든 온전하게 이어나가고 싶다는 그것 하나였다. 엽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굉장히 개인적인 사람이었다.

-엽문은 이미 엽위신 감독에 의해 두번이나 영화화돼 큰 성공을 거뒀고, 당대 최고 액션배우라 할 수 있는 견자단이 엽문을 연기했다. 아무래도 막중한 부담감 속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파악한 엽문은 전형적인 무술인의 모습이 아니다. 싸움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안에는 교수 같은 모습, 문인 같은 모습도 있다. 중화권에서 그런 기질을 잘 표현해낼 배우가 누구일까, 생각해보면 양조위 말고는 없다. 감정을 잘 조절하고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는 실제 양조위의 면모는 엽문과 무척 닮아 있기도 하다.

-엽문을 얘기할 때 당연히 함께 불려나오는 이름이 바로 그의 제자이기도 한 이소룡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소룡은 엽문의 수많은 제자 중 하나였다. 전세계가 아는 스타이긴 하지만 진정한 계승자라 볼 수는 없다. 엽문은 당시 돈이 없어 도장 다니기도 힘들었던 대중에게 영춘권을 널리 보급했다. 보다 작은 공간을 활용하고 다른 권법에 비해 누구든지 쉽게 입문할 수 있다. 이소룡의 가장 큰 공헌은 그것을 국제적으로 알렸다는 점이다.

-<일대종사>의 마지막은 중국 본토에서 홍콩, 대만 등지로 대규모의 피난이 시작된 1949년이다. <일대종사>는 새로 형성되기 시작한 거대도시 ‘홍콩’에 대한 프리퀄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광둥 불산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생을 마감한 엽문을 통해 광둥인의 자부심, 홍콩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 더 나아가 중국 본토와의 상생(相生)에 대해서도 읽을 수 있었다.
=영화에도 나오는 대사지만 ‘권’(拳)에는 남과 북이 따로 없다. 홍콩뿐만 아니라 이제 중국은 남과 북을 아울러 나아가는 통합의 길목에 서 있다. <일대종사>를 통해 바로 그 전통 중국무술의 명맥이 홍콩에서도 부단히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바로 그 ‘권법’은 ‘영화’와도 일맥상통한다. 이제 홍콩영화는 중국 본토의 자본이 없으면 제작이 힘들고, 바로 그런 새로운 시장을 감안하여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길을 걷던 중국영화와 홍콩영화가 만났고, 이제 홍콩영화라는 개념이 희미해져 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홍콩 정신은 남아 있다. <일대종사>는 1949년에서 끝나지만 홍콩의 역사는 바로 그때부터 시작이다. 결국 <일대종사>는 홍콩을 중심에 두고 바라본 중국의 근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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