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눈은 거짓말을 못한다
2013-07-23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오계옥
김용화 감독 인터뷰

김용화 감독을 만나기로 한 날, 인터뷰 시간을 40분 미루자는 연락이 왔다. 2천명의 관객이 함께하는 <미스터 고>의 시사회에 참석해 상영 중간에 빠져나오려 했다는데, 그는 결국 관객석에 남아 끝까지 관객과 영화를 보는 쪽을 택했다. 대중의 반응이 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하고 엄중한 심판의 잣대인 김용화 감독은 7월 17일 <미스터 고>의 한국 개봉을 앞두고 부쩍 마음을 졸이는 모습이었다. 극장에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단련된 그의 흥행 감각은 그의 전작 <국가대표>와 <미녀는 괴로워>처럼 <미스터 고>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을까. 그가 4년 동안 품었던 작품, 그리고 애증의 디지털 고릴라 링링과 얼마 전 “눈물로 이별했다”는 김용화 감독을 만나 영화 뒤편의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것 같다.
=못 잔다. 그런데 못 자도 피곤하지가 않다. 마치 약 한 사람처럼. (웃음) 7월 13일엔 중국으로 간다. <미스터 고>가 중국에선 한국보다 하루 늦은 18일에 개봉하거든. 아마 한국 개봉 때엔 국내에 없을 거다.

-오늘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서 관객 2천명과 <미스터 고>를 봤다. 당신은 평소 관객의 반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함께 영화를 본 소감이 어떤가.
=무척 좋다. 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가계부에 숨겨놓으신 돈을 훔쳐 대한극장에서 영화를 보곤 했다. <로보캅> <마네킹> 같은 영화들을 봤는데, 종이 세번 땡땡땡 울리면 모두 숙연해지는 분위기를 좋아했었다. 오늘 문득 그 생각이 나더라. 영화가 시작됐을 땐 모두가 조용하다가, 한꺼번에 2천명이 다 같이 반응하고. 특히 후반부의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언론시사회가 열리기 전 스탭들과 기술시사를 함께한 자리에서의 기분은 또 달랐을 것 같다.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봤는데, 극장 시스템상 좀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다. 가장 좋은 화질과 사운드로 언론시사를 열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안 좋더라. 사실 그날은 이것저것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떤 감정을 느낄 새도 없었다. 평소에 책임을 지고 사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 영화가 관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감독이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부담이 많이 된다.

-<미스터 고>의 가장 큰 성취는 CG로 만든 디지털 고릴라의 퀄리티다. 이 영화를 본 뒤 확실히 한국 VFX 기술이 한 단계 올라섰다는 느낌을 받았다. 올해 1월 인터뷰할 때만 해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고 했는데, 언제쯤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던가.
=6개월 전에 감을 잡은 것 같다. 그동안 고릴라 두 마리가 싸우는 서커스 장면을 만들었다가 통째로 들어내는 등 나의 착오로 제작비를 많이 소비했다. 그런데 (개봉을 앞두고) 막판에 VFX 퀄리티가 확 높아지더라. 마지막 6개월간 우리가 한 작업을 돌이켜봤을 때, 이 정도 예산에 1천숏이 넘는 고릴라를 이 정도의 퀄리티로 뽑아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감이 생겼다.

-영화에 고릴라 두 마리가 등장한다. 조련사 웨이웨이의 유일한 가족이자 뛰어난 타격 실력을 가진 링링, 야수로서의 본능을 간직하고 있는 레이팅이 그들이다. 시작 단계에서 어떤 이미지의 고릴라를 원했나.
=<미스터 고>는 전형적인 영웅 타입의 영화가 아니라 치매 걸린 할아버지가 어린 손녀딸을 구하러 가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링링을 구상할 때, 애니메이터들이 <길버트 그레이프>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떠올리며 작업하길 바랐다.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이지만 인간의 나이로 치면 70, 80살이 되어가는 고릴라가 점점 아이처럼 변해가는 거지. 반대로 젊은 고릴라 레이팅은 엄청난 기동력 때문에 자신의 몸이 제어가 안돼서 자꾸 실수를 한다. 심지어 틱장애까지 있다는 설정이다. <레옹>에서 경찰 역을 맡은 게리 올드먼을 생각하며 레이팅을 만들었다.

-링링의 눈은 배우 문근영을 참조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전작의 캐릭터들을 작업할 때에도 주변 인물로부터 영감을 받거나 레퍼런스로부터 도움을 받은 부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스터 고>의 경우엔 어땠나.
=300kg의 거구인 링링에게서 배우 문근영의 눈빛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런 생각으로 접근했다. 관객은 결국 눈동자부터 확인하게 될 거다. 눈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눈을 보며 감정을 읽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릴라의 눈에 신경을 많이 썼다. 성동일 선배님이 연기하는 에이전트 성충수는 미국 드라마 <안투라지>의 아리 골드를 참조했고, 전세계에서 가장 착한 악당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구상한 사채업자 림샤오강은 역시 <레옹>의 게리 올드먼과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의 원동연 대표(그는 김용화 감독의 전작 <미녀는 괴로워>의 제작을 맡았다._편집자)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좌중 웃음) 동연이 형의 모습은 사실 성충수에게도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다. 죽을 때까지 내게 무한한 영감을 줄 사람이다. (웃음)

-눈빛 때문인지 고릴라의 클로즈업숏이 좋아 보이더라.
=한국영화처럼 클로즈업에 의존하는 나라가 없다. 극장 가면 배우 콧구멍만 보다 나오는 경우도 많다. 클로즈업으로 감정을 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나도 여전히 클로즈업에 대한 강박이 있나보다. 이번 영화에서는 클로즈업은 필요할 때만 과감하게 들어가자는 생각으로 비중을 줄였다. 아마 고릴라의 클로즈업숏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면 그건 클로즈업을 남발하지 않고 꼭 보고 싶은 간지러운 순간에 보여줬기 때문이 아닐까.

-링링을 영입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주니치 드래건스의 구단주로 분한 오다기리 조의 괴짜 연기에 대한 반응이 엄청나다.
=그와는 <마이웨이> 촬영장에서 만나 많이 친해졌다. 이후에 칸영화제에서 조를 만났는데 그런 말을 하더라. “진짜로 고릴라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 거냐고. 나는 진정한 판타지영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관객이 미국영화의 판타지에는 관대하면서 아시아영화의 판타지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생각을 깨고 싶다, 그런 취지의 말을 했더니 오다기리 조가 출연하고 싶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주니치 드래건스 구단주 역할을 주며 고르라고 했는데, 나는 그가 주니치를 골라서 좀 놀랐다. 일본 국민의 80%는 요미우리 팬일걸? 아주 작은 배역이고, 자신도 다른 영화 작업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는 매번 주니치 구단주에 대한 캐릭터 분석을 보내왔는데, 너무나 철저하게 분석해와 정말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헤어스타일의 경우에도, “30년간 같은 미용사에게 머리를 깎아왔다”는 대사도 자기가 리허설 때 준비해 와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는데 너무 좋더라. (웃음)

-실제 구단의 이름이 영화에서 명시되고, 두산과 NC를 제외한 여러 팀들이 패배하는 장면이 그려지기 때문에 분개하는 야구팬도 있더라. 특히 볼링처럼 야구공을 땅에 굴렸는데 링링에게 홈런 맞는 기아의 팬들. (웃음)
=<미스터 고>는 모든 야구팬들의 축제 같은 영화다. 모든 구단이 즐겁게 참여하는 영화가 되길 바랐는데…. 지는 팀도 있어야 하니 우리 연출부가 고민하다가 구단들의 이름을 쫙 써놓고 지는 팀을 결정할 사다리를 탔는데, 우연히 기아가 걸린 것뿐이다. 두산과 NC가 메인 구단으로 등장하지만 그들로부터 지원받은 건 전혀 없다.

-링링의 타격폼과 레이팅의 투구폼이 인상적이었다. 이전의 어떤 영화에서도 전례가 없는 고릴라 야구 장면의 연출을 앞두고 어떤 고민을 했나.
=100개가 넘는 포즈를 두고 고민했다. 우리가 ‘오리지널’로 만든 메인 포즈를 잡고, 그 이외의 동작으로 고릴라의 엄청난 순발력으로 대처할 수 있는 코믹한 포즈들을 구상했다. 고릴라가 어떻게 팔을 휘둘러야 시속 200km의 강속구가 나올지, 공을 치고 던지는 팔의 스윙감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한편으로는 <미스터 고>에 대해 CG의 기술적 진보는 주목할 만하지만 드라마가 촘촘히 구성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고릴라의 소중함을 깨닫는 웨이웨이의 변화가 조금 갑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고민을 많이 했다. 플롯과 플롯 사이에 재미도 줘야겠고, 자기 고백도 해야겠고…. 하지만 그렇게 만들었다면 또 지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요즘 관객은 플롯을 이해하는 감각이 매우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 변할 가능성이 있는 친구가 언제 변해야 하는가. 그 영화적 시점에 있어서는 지금의 내 선택이 맞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일정한 단계를 밟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물에 대한 존중(고릴라)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던데.
=<미스터 고>가 동물학대 영화라는 말이 있던데, 그런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따지면 다른 영화들은 얼마나 심한가. <아바타>는 다른 생물들을 마구 죽이기까지 하는데.

-중국에서는 같은 버전으로 개봉하나.
=그렇다. 2시간6분30초 버전인데, 6분30초를 줄이면 중국에서 하루에 한회를 더 상영할 수 있다더라. 5천개관이면 5천회를 더 상영할 수 있다는 거지. 그래서 나는 당장 편집해서 갖다주려고 했는데, 중국쪽에서 오히려 편집을 원하지 않더라.

-영화를 본 중국 관객, 혹은 중국 영화계 관계자들의 반응이 한국과 어떻게 다르던가.
=한국 관객과 완전히 똑같다. 내가 웃기길 원했던 부분에서 웃어주고, 감정에 빠지길 원하는 부분에서는 감정이입을 해주더라. 전작에서는 관객 반응이 종종 내 예측을 비껴나가기도 했다. 아시아에서 언젠가 이런 영화가 나왔으면 했다. 어느 나라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야기 말이다.

-4년 동안 붙들고 있던 프로젝트를 마치니 허전하겠다.
=벌써 직원들은 다음 작품 작업 중이다. (웃음) 덱스터로 수많은 작품의 제안이 들어왔는데, 우리의 연구 개발을 위해 도움이 되는 영화를 제외하면 VFX 예산 30억원 이하의 작품은 거절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우리가 하고 싶지 않은 작품들을 하면 금세 지칠 것이고, 산업 기반이 더 빠른 속도로 약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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