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봉준호] 엔진을 움켜쥔 사나이
2013-08-12
글 : 주성철
사진 : 최성열
봉준호 감독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감독으로서 자기 영화의 배우들을 향해 ‘환상의 조합’이라 부르는 건 너무 당연한 인사치레 같지만, 지금도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의 배우들을 ‘꿈의 캐스팅’이라 느낀다. 한정된 세트에서 거의 100% 촬영하다보니 그의 이전 영화들에 비해 로케이션의 다채로운 재미가 대폭 줄었지만, 매 순간 자신의 개인기를 유감없이 펼치고 사라지는 크고 작은 배우들의 매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만큼 그에게 <설국열차>는 ‘배우의 맛’으로 버틸 수 있었던 영화다.

먼저 봉준호 감독의 헤어스타일을 두고 장난스럽게 “그레이트 헤어!”라 명명한 크리스 에반스는, <살인의 추억>(2003)과 <마더>(2009)를 챙겨보고 분석하며 <설국열차> 오디션에 적극적으로 응한 배우다. 사실 봉준호 감독에게 그의 첫인상은 ‘몸 좋은 미국 고등학생’이었지만 만남을 거듭할수록 반전의 매력을 느꼈다. 특히 인상적인 작품은 그가 마약에 찌든 변호사로 나온 <펑처>(2011)였다. 영화에서 변호사의 능력과 사생활이 별개로 굴러가는 그는 그야말로 제멋대로 살아가는 남자였다. 아내는 지긋지긋한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천장에 총 세례를 퍼부으며 이별을 고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퍼스트 어벤져>(2011)의 인간적인 슈퍼히어로 정도로 기억한 배우였는데 <선샤인>이나 <펑처>에서 의외의 모습을 봤다. 캡틴 아메리카로 이미 뜬 사람이 <펑처> 같은 인디영화에 출연했다는 것부터가 신선했다. (웃음) 영화마다 그 스펙트럼이 무척 넓다고 느꼈고, 열차칸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커티스의 모습에 잘 들어맞았다”는 게 봉준호 감독의 얘기다.

<설국열차> 제작 초기부터 틸다 스윈튼은 요즘 흔한 말로 ‘신의 한수’로 여겨졌다. 언제나 밀랍인형 같은 창백한 매력을 뽐낸 그의 획기적인 변신만으로도 <설국열차>의 중반 분위기를 지배한다. “틸다가 연기한 메이슨은 순전히 그녀 자신의 의지로 빚어낸 캐릭터다. 이제껏 보여주지 않은 외양의 변화부터 불타는 출세욕과 과거의 신분을 은근히 드러내는 사투리 연기까지, 단지 외모의 변화만으로 ‘대배우’라는 얘기를 듣는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게 봉준호 감독의 얘기다. 그를 향한 틸다 스윈튼의 무한한 신뢰도 사실 이제는 좀 새삼스러울 정도다. “예술에 있어 내가 외국 누군가의 작품에 출연했다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저 예술의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봉준호 감독과 크리스 에반스는 나의 새로운 가족이고, 봉준호는 힘든 촬영을 무사히 이끌어온 가장이다. 그런데 좀 어린아이 같은 구석이 있는 가장이다. (웃음)”

봉준호 감독의 얘기에 따르면 송강호가 연기한 남궁민수는 ‘<스타워즈>의 한 솔로’ 혹은 ‘<미래소년 코난>의 다이스 선장’ 같은 인물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거의 30분이 돼서야 등장하는 열차 설계자인 그는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인물들에게 더 큰 혼란을 안겨준다. 느닷없이 한국어로 주절주절 얘기하기 때문이다. 그가 의도한 것은 한국어가 등장하는 데서 오는 ‘재미’ 같은 것이 아니라 느닷없는 충격이나 이질감을 원했기 때문이다. 커티스로 하여금 과연 이 사람과 이 여정을 함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동반한 괴리감 말이다. 그로서는 송강호를 그야말로 잔인하게 툭 던져놓은 것이다. 물론 그것은 오래도록 함께한 파트너십이 있기에 가능했다. “송강호 선배는 어떤 작품이든 본인만의 해석법이 있다. 그걸 늘 존경했고 거기에 전율할 때가 있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물론 함께하지 못한 다른 많은 배우들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엔진실에 버티고 선 모습만으로도 존재감을 느끼게 해준 에드 해리스는 클라이맥스의 섬세한 흐름을 완벽하게 공유한 배우였고, “역시 자식 잃은 부모의 한이 초능력을 발휘하게 한다”는 얘기처럼 옥타비아 스펜서는 예기치 않은 놀라운 액션 실력으로 예기치 않은 신 스틸러가 됐고, “임신한 여자 선생님이면 좋겠다는 고아성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교실칸의 알리슨 필은 의외의 충격을 줬으며, 이제 곧 애 아빠가 됨에도 불구하고 제이미 벨은 촬영현장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마스코트였다. 그처럼 느긋하게 배우들의 매력을 느껴보라는 것이 봉준호 감독의 마지막 주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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