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장진과 문화유격대 ‘수다’ [1]
2002-02-09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충무로 뒤집을 여기 ‘수다’ 있수다

처음, 수다는 장진 감독이 만든 작은 공연기획집단이었다. 이젠, 대학로의 ‘장진사단’이 아닌 어엿한 멀티프로덕션의 모양새를 갖춘 문화창작집단 ‘필름있수다’로 탈바꿈했다. 연극 <허탕>과 <박수칠 때 떠나라>부터 <다찌마와 리>로 대표되는 디지털영화 프로젝트, 장편영화 <킬러들의 수다>, 게다가 2002년 단편 프로젝트 <사방에적> <내 나이키> <간이역>까지, 별로 많지도 않은 사람들이 온갖 일에 끼어들어 제판인듯 떠들어대고 있다. 그런데 그게 사람들 넋을 빼놓고 있다. 문화유격대 수다가 풀어놓는 그 거침없는 ‘수다발’의 비밀을, 그들의 꿈을 살짝 들추어본다.


누군가 우리를 향해 “어쩜, 넌 그렇게 수다스럽니?” 말한다면 기분나빠 했을지 모른다. 국어사전에도 떡 하니 ‘수다’- [명사] 쓸데없는 말이 많음’ 이라고 나와 있듯 우리에게 ‘수다’라는 의미는 여자들이나 ‘떠는’ 가볍고, 경박스러운 규방문화의 소산쯤이었다. 그러나 요즘 방송이나 잡지(심지어 인스턴트 떡볶이까지) 등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의 수다’에서 ‘수다’의 의미는 예전과 사뭇 다르다. 부정적인 뉘앙스에서 ‘편하고, 자유스럽게,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다’쯤의 긍정적인 의미로 변화한 수다라는 단어. 이 변화의 중심에 지난해 <킬러들의 수다>를 만들어냈던 장진 감독과 그가 대표로 있는 문화창작집단 ‘필름있수다’(Film it Suda·이하 수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심각한 표정 지을 거 있어? 즐겁고 행복하게 놀자.” 그저 재기발랄한 신인감독의 ‘동아리성 집단’ 정도로 간주되던 수다가 몇년 동안 벌인 작고 큰 유격전들은 엄숙하게 날이 서 있던 기존의 충무로에 뿌려진 유연제였고 발상전복의 촉진제였다. 그리고 수다의 지붕 아래로 소문과 인맥을 타고 서서히 사람들이 모여들자 집 앞 조그만 마당 같던 이들의 놀이터는 서서히, 꽤나 큰 수준의 운동장으로 확장되어갔다. “수다라는 이름요? 제가 지었죠? 왜 수다냐고요? 재밌잖아요. 어감도 좋고… 사실 여기 모인 인간들 어휴, 어찌나 수다스러운지….” (웃음)

우리? 역사있수다

99년 6월1일 혜화동 바탕골 예술관 3층. <간첩 리철진>을 끝낸 장진을 중심으로 임원희, 정재영 등 서울예대 출신의 연극배우들, 김승모, 김지훈, 조장호, 한재권, 김영일, 이은하 그리고 현재 좋은영화의 PD 김성제 등이 모여 ‘수다’라는 간판을 달고(5월30일이 생일인 신하균이 생일파티 휴유증으로 빠진 상태에서) 사무실 페인트칠을 하던 날만 해도 수다는 그저 연극공연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창작집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페인트가 마를 때쯤 올린 연극 <허탕>(1999)이 95년 초연 당시의 아픔을 씻고 성공을 거뒀고 이후 뮤지컬 <아름다운 사인>(1999)에 이어 LG아트센터 개관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올린 연극 <박수칠 때 떠나라>(2000) 역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공식명칭 ‘필름있수다’라는 타이틀을 명함에 파기 시작한 건 지난해 8월에 사무실을 압구정동으로 옮긴 이후. “수다든, 디지털수다든, 필름있수다든 우리는 그냥 ‘수다’다”라고 말하지만 그 시기를 앞뒤로 수다의 성격은 약간의 변화를 맞았다. 2001년 수다가 생산해낸 몇몇 히트상품은 연극에서 영화로 큰축을 옮아가게 했을 뿐 아니라 매니지먼트사업의 성장까지 가져오게 되었다. “기존의 장편영화감독이 단편영화를 만들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디지털영화 프로젝트. 수다에서 기획·제작하고 인터넷 사이트 ‘씨네4M’에서 상영한 <다찌마와 리> <극단적 하루> <커밍아웃>은 유명 배우들과 높은 제작비를 내세운 여타의 영화를 제치고 단연코 인터넷 영화계 최고의 흥행성적을 올렸고 임원희, 정재영, 신하균, 류승범이라는 배우에 대한 충무로의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간첩리철진>을 끝내고 시네마서비스로부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상관없으니 다음 작품 우리와 하자”는 너그러운 약속을 받아냈던 장진 감독의 3번째 장편영화 <킬러들의 수다>의 흥행 성공과 함께 수다라는 이름은 일반인들에게까지 익숙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북 치고 장구 치고 징도 울리고

그러나 일년에 한두편 정도의 히트작을 내는 많은 영화제작사 중 하나로 수다를 평가하기엔 뭔가 미진한 부분이 있다. 인터넷 기획영화의 성공이나 몇몇 유명배우의 탄생은 수면 위에 보여진 수다의 모습일 뿐이다. 수다를 여타의 영화제작사와 차별화시키는 것은 바로 멀티프로덕션으로서의 성격이다. 딱 부러지게 영화제작사 혹은 공연기획사 아니면 독립영화창작소로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북 치고 장구도 치고 징도 울리고 꽹과리도 치는 전천후 집단.

영화감독 장진은 요즘 김종국의 후속곡 <행복하길>의 뮤직비디오를 찍고 있고, 공연기획만 해오다가 이번 단편 프로젝트와 함께 “영화쪽 일에 눈을 떴다”는 이은하 공연기획팀장은 단편영화 메이킹필름을 찍기 위해 8mm카메라를 들었다. “저는 영화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하지만 우리는 이것저것 해보다가 적성에 맞는 거 골라서 열심히 하자, 주의예요.” 수다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연출전공 사람들이 제작부, 연출부, 마케팅, 공연기획 등을 넘나들어도 “모든 걸 잘해낼 수 있는 전천후 인간들”이라는 것이 장진 감독의 자랑이다. 하긴 유격대전투에서 군복입은 정규군이고 아니고가 상관있던가.

심각해질 필요도 없지만 장난처럼 보이지 않는 것과 어깨에 힘주지 않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작업태도가 이들의 작업을 과소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지난해 인터넷 프로젝트에 이어, 3편의 각기 다른 성격의 단편을 붙여 극장 개봉을 계획하고 있는 올해 단편영화 프로젝트 역시 새로운 발상이다. ‘음, 이제 이건 별로 재미없는걸….’ 이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생산품에 대중이 흥분하고 있을 때 미련없이 떠나 다른 새로운 것을 꿈꾼다. 충무로의 외인유격대 수다는 단독 또는 소부대 단위로 기습하여 승리를 거두고, 신속하게 빠져나와 대중 속에 숨어서 반격을 피한다. 이들에겐 고정관념의 후방이 주요 활동무대가 되며, 경비가 허술한 장르, 허술한 자본을 저장한 곳이 주요 공격목표가 된다. 때론 장진 감독 혼자서, 때론 배우 하나가 수다라는 이름을 등에 새기고 각개전투를 벌이기도 하고 단편 프로젝트, 연극처럼 모두가 수다라는 이름으로 똘똘 뭉쳐 단체전을 벌이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수다는 전복적 기습을 즐기지만 투쟁을 꿈꾸진 않는다. 언더그라운드의 습기나 어둠 대신 햇빛을 자양분 삼아 자라나는 이들에게 변화는 새로운 것과 재미있는 것을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일 뿐이다. 하나, 전복적인 발상과 실험정신만이 수다의 모든 것은 아니다.

新인류 ‘수다적 인간’

결국 이 충무로에 전례없는 집단을 가능하게 한 중심부엔, 장진 감독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호모 로쿠엔스(Homo loquens, 언어적 인간)와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적 인간)의 복합체인, 언변에 능하고 제대로 놀 줄 아는 ‘수다적 인간’. 그러나 이 ‘맨파워집단’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크게 보자면 장진이란 인간을 중심으로 학연과 지연, 혈연관계로 모인 기본 멤버들의 관계는 수직이 아니라 평행선에 놓여 있다. 가령 제작부장은 동기이고 배우는 일년 후배이고 단편감독은 친구의 동생이고, 실장님, 이사님, 대표님이라는 호칭보다 형, 야, 오빠가 더 편한 사이. “날 때부터 동아리 분위기는 아니었다니까요. 공연을 주로 하던 수다라는 집단이 영화쪽 일에 무게가 실리자 내 라인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그렇게 보이는 거죠.” 서울예대 동아리 ‘만시’(만남의 시도)에서 이어진 이런 ‘동아리 분위기’는 “맘에 안 들어도 쉽게 못 자른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제외하면 “투자집단이 절대 가지지 못하는 연대”로 똘똘 뭉친 저력을 보인다. “우리 배우들만 해도 말이죠. 물론 보기엔 영화 한두편으로 유명해졌다고 생각하겠지만 갑자기 뜬 게 아니라니까요. 기본 10년은 투자한 배우들인데, 하, 진짜 늦게 빛보는 거예요.”

이런 기본인력 외에도 “한번 같이 일한 배우는 반드시 기억해서 다시 일해요. 내 꿈이 있다면 수다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 사람들 모두 수다의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까지 같이 가는 거예요”라는 장진 감독의 말대로 수다는 강제력으로 사람들을 구속하진 않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집단이다. 신선한 발상이긴 하지만 아직 시장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단편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혹시 돈을 못 번다고 해도 우린 소중한 감독을 얻잖아요. 까먹는다 셈쳐도 2억원으로 얻는 걸 생각하면 해야 하는 일이에요”라고 말한다. “혼자 떠들 때는 궤변이라고 무시당하던 이야기들이 한 사람이라도 맞장구쳐주면서 그래, 맞아, 하면 그게 정변이 되는 거거든요. 그게 진짜 힘이고 위안이죠.”

요즘은 압구정동 크낙새빌딩 1층에 위치한 사무실이 터져나갈 정도로 이동인원이 많은데도 이들은 판이 넓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놀 수 있으니, 이 아니 기쁠쏘냐, 며 즐거워하는 눈치다.

충무로 최고의 세팅집단을 꿈꾼다

수다를 멈추면 수다가 아니다. 단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2002년 초도 분주하게 시작한 수다의 올해 라인업을 보고 있으면 메이저 제작사, 저리 가라다.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이 쓴 <우아하고 감상적인 생활>(가제, 감독 미정)의 시나리오가 이미 나온 상태이고, 김지운 감독의 “세련된 펄프누아르”가 “감독이 원할 때”를 기다리고 있으며, 베테랑 CF감독 이경일의 대규모 전쟁영화가 2002년 한해를 아우르고 있다. 앞의 3편이 올해 수다 자체 제작을 기다리고 있는 프로젝트라면 <동감>의 김정권 감독의 신작 <화성으로 간 사나이>의 시나리오 및 강우석 감독의 차기 프로젝트, 씨네2000의 다음 영화 등에 수다의 인력이 아웃소싱될 예정이다. 그리고 한해가 끝나는 12월에는 오랜만에 수다의 모든 식구들이 모여 LG아트센터에서 연극을 올린다.

그들은 주식회사 수다로 코스닥 상장을 꿈꾸지는 않는다. “수다에 돈 쌓아놓을 생각은 없어요. 돌아갈 정도만 벌면 되는 거죠. 제 꿈이요? 좋은 제작사 골라서 어디 딴 데 가서 영화 만드는 거예요.” 지금 당장은 ‘수다의 꿈’과 ‘장진의 꿈’이 유사점이 많지만 올해 프로젝트들이 안정감 있게 진행되면 내년 하반기쯤엔 자유롭게 빠져나가 공부하고 싶다는 장진 감독. “‘수다대장’은 누가 되도 상관없다고 봐요. 내가 대장할 때는 아무래도 영화에 주력하는 거고, 다른 누군가가 대장이 돼서 연극쪽으로, 드라마쪽으로 기울 수도 있는 거고….”

그가 그리는 수다의 청사진은 광고, 음악, 공연, 영화, 방송, 뮤직비디오등 각각의 문화매체들이 합쳐지고 교류되는 장을 만드는 것. “밖에서는 몇년 끌어도 안 되는 프로젝트가 수다에 맡겼더니 작가, 기획, 마케팅 붙어서 바로 작업 들어가더라, 하는 충무로 최고의 세팅집단으로 말이죠” 여전히 재미있고 감동적인 놀이터 고지를 개량, 확장하기 위해 열심히 전투중인 수다. 우리는 이들이 풀어놓을 수다가 아직은 많이 궁금하다.

장진과 수다사단

“나는 장진 감독 오른팔이다. 그런데 장진 감독은 왼손잡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은하 공연기획팀장과 “나는 장 진감독의 왼팔이다. 그런데 장진감독은 오른손잡이다”라고 주장하는 기획팀 수석 PD 조장호. 기획경영실장 김승모, 기획팀 PD 서장석, 사업기획팀장 김지훈, 음악프로듀서 한재권, 제작실장 지상용, 경영팀 최성연, 매니지먼트팀 이사 김영일, 매니저 권준범, 김양래, 권호혁, 이용혁, 이용현, 김양윤, 배우 정규수, 이문식, 조덕현, 정재영, 임원희, 임승대, 김일웅, 신하균, 류승범, 구혜주 등. “역할이 구분되어 있지만, 구분되어 있지 않은. 상하가 구분된 듯하지만 구분되지 않는” 기묘한 집단에서 이들은 모두 ‘양손잡이’ 대표 장진의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10년 이상 된 친구, 선배, 후배, 형, 동생 혹은 최근 공개채용 등을 통해 구성된 신입(?)들까지, 이외에도 수다의 식구들은 진행되는 프로젝트 유무에 따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를 반복. 특별한 울타리 없이 넓은 공터에서 누구라도 놀이에 끼워줄 준비가 된 ‘수단’(Sudan)들의 숫자는 언제나 n + ∽(무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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