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래피와 에로티시즘은 엄연히 다르다. 단순히 보여주느냐 마느냐의 일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라 섹슈얼리티 이면에 무엇을 더 담아내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1980, 90년대를 주름잡았던 에로티시즘의 대가 잘만 킹의 유작 <섹슈얼 어딕션: 꽃잎에 느껴지는 쾌락과 통증>은 그가 확고한 영화 세계를 품었던 거장임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다. 비록 이미 유행이 지나 낡은 지점도 보이고 잘만 킹의 최고작도 아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대가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엔 충분할 정도의 압축된 형식미를 선보인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빅토리아(말레나 코건)는 자신이 경험한 치명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동산 사업가 잭(크리스토스 바실로포로스)과 결혼한 그녀는 남편과 파격적인 섹스를 즐긴다. 잭은 빅토리아가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그녀의 숨겨진 욕망을 테스트하고 어느덧 빅토리아도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서서히 중독되어간다.
잘만 킹 에로티시즘의 특징은 육체에의 탐닉을 통해 여성의 숨겨진 욕망을 파고든다는 데 있다. 덕분에 에로티시즘 영화로는 드물게 잘만 킹의 영화를 옹호한 페미니스트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만 킹 영화는 어디까지나 남성의 쾌감에 봉사하는 에로티시즘 영화다. 관객의 욕망을 자극하고 흥분을 불러일으킬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섹슈얼 어딕션: 꽃잎에 느껴지는 쾌락과 통증>의 결정적인 문제는 이 부분에서 90년대만큼의 파괴력을 발휘하지 못한단 사실이다. 유작이라는 특별한 가치를 빼면 철 지난 잘만 킹표 에로 콘텐츠 중 한편에 불과하다. 덧붙이자면 <섹슈얼 어딕션: 꽃잎에 느껴지는 쾌락과 통증>(Pleasure or Pain)이란 제목은 한물간 촌스러운 영화라고 대놓고 광고하는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