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동심의 세계가 파괴되는 과정 <허니>
2013-09-25
글 : 김지미 (영화평론가)

<허니>는 <에그>(2007), <밀크>(2008)를 잇는 세미 카플라노글루의 유수프 3부작 중 세 번째 작품이다. 제작연도로는 마지막이지만 주인공인 유수프의 성장 과정 중 첫 부분인 유년 시절을 다루고 있다. <에그>에는 마흔살의 시인 유수프가, <밀크>에는 열여덟의 청년 유수프가 등장하고 이 작품에는 여섯살의 유수프가 등장한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시인 내면의 근간을 이루는 시공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듯하다. 앞의 두 작품이 유수프가 어머니와 어떻게 분리되고 독립하며 사별하게 되는지를 다루고 있다면 이 작품은 아버지 그리고 인류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대자연과 소년 유수프가 관계 맺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수프의 하루는 마호메트의 말씀을 읽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빠는 글을 읽는 아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웃으며 경청하고 아이가 지난밤 꿈에 대해 큰소리로 말하려 하자 꿈이야기는 남들이 들으면 안된다며 아이의 입에 귀를 갖다대준다. 부자간의 귓속말은 꿀처럼 달콤하고 서로를 단단하게 끌어안은 손길에서 느껴지는 유대감은 세상 어느 것도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아버지가 없는 곳에서 유수프는 사뭇 다르다. 성인(聖人)의 글귀를 거침없이 읽어 내려가던 아이는 교실에서 동화책 제목조차 읽지 못하고 더듬거리는 통에 급우들은 키득대고 읽기를 중지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책을 잘 읽으면 받는 배지는 늘 다른 아이들의 몫이다. 또래보다 작은 유수프를 걱정해 엄마가 따라놓은 우유 한잔도 아빠가 대신 마셔주지 않으면 밤새 식탁 위에 그대로다. 늘 유수프를 이해해주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보호해줄 것 같던 아빠는 어느 날 꿀을 모으기 위해 더 깊은 숲으로 떠난다. 늘 양봉을 하던 곳에 더이상 벌이 모여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틀이면 온다던 아빠는 며칠이 지나도록 오지 않고 달콤하고 풍요롭던 유수프의 유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유수프의 학교 생활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나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영화에서 보았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어른들의 시선으로는 포착하지 못하는 사려 깊은 아이들의 섬세한 감성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 영화들이 동심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영화는 그 완벽한 세계가 어떻게 파괴되는지에 관심을 둔다. 감독은 동심의 세계가 파괴되는 과정을 보여주되 관객이 감정에 함몰되는 대신 애착과 분리, 삶과 성장에 대해 사유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아버지 대신 거대한 나무둥치에 안긴 유수프의 마지막 모습은 삶의 비의를 알게 된 유년의 슬픔과 삶에 존재하는 다른 위안들에 대한 깨달음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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