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야한 걸 골랐다. 딴 건 못한다. 제일 야한 게 뭔지 찾았다. (웃음)” 그전까지 ‘김영하 작가’를 잘 몰랐다는 이상우 감독은 김영하의 단편 <비상구>(소설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 수록된 단편)에 그야말로 혹했다. 여자 배꼽 근처에 있는 화살표 문신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가장 은밀한 부위인 성기를 향해 정확히 촉이 내리꽂히는 소설 속 이미지가 단숨에 그를 사로잡았다. “이 장면을 도대체 어떻게 찍냐고 다들 놀라더라. 여배우 캐스팅은 너무 힘들었다. 하겠다던 매니지먼트사에서 대본 보고는 그길로 연락이 없더라. (웃음)” 이상우 감독은 기어코 그 장면을 연출했다. 살집이 두둑한 여자의 음모를 남자가 미는 부감숏은 어느새 음모를 향한 클로즈업숏으로 바짝 따라붙고, 이 ‘기이한’ 의식은 숨죽인 채 면밀하게 지속된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 <비상구>는 섹스와 폭력이 점철된 <아버지는 개다> <엄마는 창녀다>의 궤를 이어 ‘센세이셔널’의 꼬리표가 붙을 게 분명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조심했다. 야한 비주얼이 주도하지만, 정작 이 이야기를 비집고 들어가면 20대의 반항, 열패감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그게 4수를 하며 신촌 바닥을 헤매던 내 20대의 이야기 같아 공감이 가더라.” <비상구>는 신촌의 모텔에 기거하는 우현(한주완)의 일탈을 그린 작품이다. 퍽치기를 하거나 만화를 보거나 자위를 하며 일상을 탕진하는 그는, 클럽에서 일하는 동거녀(유소현)가 손님에게 폭행을 당하자, 욱하는 마음에 그를 폭행해 쫓기게 된다. 가장 빛나야 할 순간인 청춘은 소모되고 무기력하며, 그들에게 이 진탕에서 빠져나갈 비상구를 찾는 건 요원해 보인다. 사소한 일이 불거져 격랑의 세월이 형성되고, 인생이 결정되는 20대. 아웃사이더 이야기를 신파 멜로의 틀 안에 녹여낸 <비상구>는 이상우 감독 특유의 꾸밈없는 드라마투르기와 거침없는 비주얼이 맞물려 절박한 우현의 심경을 표현해낸다. 특히 벗어날 수 없는 지금의 자신이 아닌, 친구 종식과 가졌던 ‘꿈’을 이야기하는 판타지 장면이 주는 감상적 연출은 이 영화를 그저 ‘센세이셔널한’ 작품이라는 관음의 늪에서 구해낸다.
“장편만 11편을 했는데, 원작을 가지고 작업한 건 처음이다. 남의 카메라를 빌려서 찍는 것 같아 처음엔 걱정도 되더라”는 이상우 감독은 예산상의 문제로 스케일 있는 장면은 걷어냈지만, 최대한 상업영화의 모양새를 갖추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장비에 신경을 많이 쓴 작품이다. 모텔도 세트라서 제작 규모가 커졌다.” 이상우 감독은 늘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을 만큼. 1천만원 투자해서 찍으면 1천만원만 벌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다. 영화를 계속 하고 싶어서다. “설정이 센 작품을 계속 하는 건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작품을 보길 바라서다.” 현재 그는 <지옥화> <내 아버지의 모든 것>의 개봉을 앞두고 있고, <나는 쓰레기다>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의 후반작업을 하고 있으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 <조선 성형의 꽃>의 시나리오 작업까지 병행하며 바쁘게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