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어쨌든 귀엽고 독특한 로맨스 영화
2013-11-28
글 : 윤혜지
사진 : 오계옥
<번개와 춤을> 이진우 감독

로맨틱 코미디치고는 신경증적이고, 정통 멜로라 하기엔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엔딩까지 보고 나면 장르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더욱 난감해질 테지만, 어쨌든 <번개와 춤을>은 로맨스영화가 맞다. 그것도 아주 “궁극의 사랑”을 다룬. 원작 <피뢰침>의 미정은 어릴 때 번개를 맞은 뒤부터 “까닭없이 죄의식을 느끼는” 여자다. “번개를 맞은 사람들의 모임 아다드”에 가입한 미정은 다시 한번 번개를 맞기 위해, 이유 모를 불안감을 씻어내기 위해 불안의 기원을 찾아 탐뢰여행을 떠난다.

친구인 이상용 프로그래머의 제안으로 ‘숏!숏!숏!’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이진우 감독은 김영하 작가의 <피뢰침>에 “한눈에 꽂혀버렸다”. “계획하지 않았던 아이가 생겨” 급작스레 가장의 부담을 짊어지게 된 감독이 6년간 장편 시나리오 한편을 붙들고 있으면서 느꼈던 “까닭없는 불안감”과 미정의 심리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색을 거치며 좀더 말랑말랑한 제목을 달게 된 <번개와 춤을>은 “원작의 어두움”을 다소 걷어내고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인물의 성장담”으로 탈바꿈했다. 원작과 달라진 밝은 결말은 스스로에게 보내는 응원이기도 했다.

“보충촬영까지 7회차에 불과했던 열악한 작업환경이었는데도 기대 이상으로 영화가 잘 나와준 데에는” 김서형, 최원영 두 배우의 공이 컸다. “만나면 긴장감이 형성되는 배우가 있고, 인간적으로 밀착되는 배우가 있는데 둘은 후자였다.” 분위기는 강렬하지만, 신화 속 인물처럼 손에 잡힐 것 같지 않던 원작의 미정과 J는 각각 김서형과 최원영이라는 배우를 만나 “삶”을 얻었다. 시시때때로 미정을 찾아오던 자취 없는 불안은 “시계만 보면 번개맞던 때가 떠올라 오줌이 마려워지는” 구체적인 증상의 트라우마가 되었고, 신적인 존재로 여겨지던 진지한 J는 “겉으론 밝고 지적이지만 사실은 외로운 뻥쟁이 동규”로 바뀌었다. 키스하면서 두 인물이 함께 오줌을 싸는, 보는 이에 따라 충격일 수도 있을 엔딩은 “세례를 받고 정화되는 이미지”로 비치길 바랐단다. “원작의 신화적인 느낌을 종교적 의식처럼 처리하고 싶었다. 원래는 미정이 동규에게 자기 얼굴에 오줌을 싸달라고 요구하는 신이었는데 성적인 의미로만 치부될까 싶어 갓 연인이 된 남녀가 손을 잡는 것처럼 발랄한 분위기로 같이 오줌을 싸는 걸로 바꿨다.”

거친 비바람이 한차례 지나가고 마침내 탐뢰여행의 끝에서 영화 속 미정은 내면의 안식을 찾는다. 오랫동안 품었던 시나리오 탈고를 앞두고 있다는 이진우 감독에게도 머지않아 해뜰날이 올 것 같다. “냉탕과 온탕을 하루에도 몇번씩 오간다. 시나리오 쓸 땐 우울하다가도,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활력이 생기고 행복하다.” 뜻하지 않게 얻었다는 두 아이들이 그날의 길동무가 되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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