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성(오른쪽)/박진석 형제 감독의 역할은 정확하게 분할된다. 현장의 모니터 옆에서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은 동생 박진석 감독이, 배우 옆에서 연기 지도하는 것은 형 박진성 감독이 맡는다. 이번 프로젝트를 김영하 작가의 단편 <마지막 손님>으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하고 각색을 한 건 동생이었다. 마침 <깡철이>의 스틸작가로 일하느라 바쁜 형 대신이었다. “김영하 작가의 작품은 다 재밌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로 만들기 힘들겠더라. 그런데 이 소설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진짜 있었던 것 같은 이야기에 끌렸다. 원래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더라.” 시나리오는 주고받으면서 고쳐나갔다(물론 이들은 다른 일도 나눠 한다. 음악은 음악감독이기도 한 동생이 절대 양보하지 않는 영역이고, 낯을 가리는 동생 대신 대외적인 일은 형이 한다. 형은 <깡철이> 작업으로 번 돈을 <The Body>의 모자란 제작비로 사용하기도 했다).
<The Body>는 한 소녀의 시체로 말문을 연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바닷가, 교복을 입은 채 피살당한 소녀의 시체가 을씨년스러움을 더하는 가운데, 장소는 어느덧 한 미술감독의 작업실로 옮겨간다. 갑작스런 영화감독의 방문, 감독은 소녀의 더미를 보고 미술감독 부부와 모종의 작당을 한다. “이번이 세 번째인가요?”라는 감독(최덕문)의 말에 “일인데요, 뭘”이라는 미술감독(박혁권)의 응수. 이어지는 화면, 감독이 소녀의 더미에 담배빵을 하면, 다시 바닷가 현장에서는 소녀의 시체를 앞에 둔 기자가 “교복 입은 소녀만 세 번째네요. 손바닥에 담배빵까지…”라는 대사를 친다. 흑백의 화면, 차가운 겨울의 바닷가, 곧 무시무시한 일이 발생할 것 같은 어두컴컴한 작업실 공간, 시체의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영화는 완벽하게 끔찍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모양새를 갖춘다. 이 스릴러의 끝에 대해 박진석 감독에게 힌트를 빌리자면 이렇다. “잠깐 관객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서술 트릭을 만든거다. 흑백 화면도 스릴러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 부러 사용한 거고.”
‘트릭’ 안에 숨어 있는 건 탁 까놓고 말해 영화 촬영현장의 고충이다. 30억원짜리 화려한 영화 촬영현장도, 현장의 스탭에게는 새벽에 나와 길거리에서 쪼그리고 앉아 후다닥 김밥을 먹어야 하는 열악한 공간이다. 영화 작업을 하면서 스탭들의 중요성을 절감한 두 감독은 이 메시지를 크리스마스이브를 배경으로 한 단편에 녹여내고 싶었다. “영화 만들기의 고충을 에둘러 표현한 블랙 코미디다. 센티멘털한 이야기, 뭉클한 감동을 주고 싶은데 우리가 휴먼 드라마 장르의 영화를 하긴 힘들 거 같고. (웃음)” ‘스탭을 위하는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The Body>의 촬영현장은 쉽지 않았다. 박진성 감독은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꼭 좀 나가야 한다”며 이 작업을 즐겨준 배우 박혁권, 최덕문, 신동미의 무한 협조와 모래 먼지에도 끄덕 않고 버텨준 박홍렬 촬영감독의 몸 사리지 않은 현장 투혼을 강조한다. 장편 <마녀의 관> 이후 다음 작품으로 안톤 체호프의 희곡으로 코믹극 한편을 만들고 히치콕이 평생 만들고 싶어 했다는 제임스 베리의 희곡 <메리 로즈>를 히치콕 대신 만들겠다는 두 감독의 계획까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