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진아, 나 심장 터질 것 같아.” <남자가 사랑할 때>의 언론 시사회장에서, 황정민은 옆 좌석에 앉은 한혜진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완성된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으로 보는 배우의 심정이야 짐작가지 않는 바가 아니지만, 영화 수십편의 개봉을 경험한 ‘베테랑’ 배우 황정민이 이토록 긴장한 모습을 보인다면, 거기에는 필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멜로를 안 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누아르나 ‘남자영화’를 하는 동안 새롭게 유입된 관객이 있을 거다. 그분들은 멜로영화 속 황정민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렇게 진득한 감성의 멜로영화가 2014년 관객에겐 어떻게 와닿을까. 그런 점들이 궁금하다.”
<남자가 사랑할 때>는 2014년의 <파이란> 같은 영화다. 화려하고 세련된 기교보다는 투박한 진심을 지향하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주연을 맡은 황정민의 승부수 역시 그가 연기하는 태일의 사랑을 얼마나 “진짜”처럼 보이게 할 것인지에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는 단순하다. 하지만 여기에 깊이를 더하려면, 그냥 ‘나, 너 좋아한다’ 이런 기본적인 감정으로는 안 된다. 뭔가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서, 눈빛만 봐도 그 사람이 상대방을 얼마만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관객이 그걸 느끼는 순간부터 배우 황정민이 아니라 영화 속 태일에 몰입하게 될 테니, 치열하게 연기하는 수밖에 없지. 그러다보니 멜로가 어렵다. 쉽진 않은데, 참 재미있다.”
<신세계>에 함께 출연하며 더욱 가까워진 선배 최민식이 <파이란>에 출연했던 시기도 40대였다. <너는 내 운명>과 <행복>을 촬영했던 30대를 거쳐 어느덧 40대 중반에 접어든 황정민에게 <남자가 사랑할 때>는 40대의 첫 멜로영화다. “아무래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사랑에 대한 감정이 더 깊어지지 않았을까? 분명 30대의 나와는 다른 깊이감이 생겼을 거다. 스스로에게 그런 기대를 내심 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40대의 황정민은 보다 깊고 넓어졌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태일로서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건 비단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뿐만이 아니라, 보다 복합적인 층위의 사랑이다. 이성으로서의 사랑, 형제간의 애증 섞인 사랑, 미안함과 애틋함이 녹아든 부모에 대한 사랑. ‘남자가 사랑할 때’라는 제목에는 다양한 유형의 사랑이 포함되어 있고, 각각의 등장인물과 마주하며 비슷하고도 또 다른 사랑의 감정을 조율하는 건 ‘남자’를 맡은 황정민의 몫이었다. 그는 정교하게 쌓아올린 디테일로 이 난관을 돌파해나간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맛있는 반찬 그릇을 앞으로 스윽 내미는 남자, 퉁명스럽게 대하면서도 용돈을 슬쩍 쥐어주는 삼촌, 사이가 좋지 않은 형을 두둔하는 아버지에게 “누구 편이야?”라고 쏘아붙이는 둘째 아들. 시장통을 전전하던 삼류 건달 캐릭터를 우리 주변에서 볼 법한 연인, 삼촌, 동생, 아들로 받아들이게 하는 황정민의 설득력이 놀랍다. 40대 배우의 내공과 연륜이란, 아마 그런 것일 거다.
<부당거래>와 <신세계>에 참여한 가족 같은 스탭들과 만든 <남자가 사랑할 때>는 맥가이버 머리부터 엔딩 음악 선곡까지, 황정민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 각색 단계부터 합류해 제작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그는 <신세계>를 촬영할 때와 마찬가지로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의 즐거움”을 이번 현장에서 느꼈다. “그게 참 좋은 것 같다. 영화를 한평생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한다는 게…. 처음 만난 제작사, 스탭들과 함께 <남자가 사랑할 때>를 만들었다면 지금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영화를 보는데, 가족처럼 똘똘 뭉쳤던 우리의 에너지가 곳곳에 묻어 있더라. 좋았다. 재미있었고, 멋진 작업이었다.” <신세계2>에서 그들과의 재회를 기약하며, 황정민은 블록버스터 <국제시장> 촬영을 마쳤고, “<러쎌 웨폰>같이 가볍고 재미있는” 느낌의 영화가 될 <베테랑>의 크랭크인(3월 예정)을 기다리고 있다. 멜로, 규모의 시대극, 범죄물. 안주하고 싶지 않고,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기는 더더욱 싫다는 이 베테랑 배우의 진심은 2014년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글쎄. <신세계>보다는 관객이 많이 드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웃음) 15세 관람가 영화가 많을 것 같아서 천만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