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온 폴 버호벤이 만들었던 <로보캅>(1987)이 재탄생했다.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고뇌하는 로봇경찰이 혼란에 빠진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맸다. 브라질에서 온 호세 파딜라 감독의 새로운 <로보캅> 역시 기본 줄거리는 같다. 배경은 2028년, 로봇 테크놀로지를 이끌고 있는 다국적 기업 옴니코프사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알렉스 머피(요엘 신나만)를 로봇경찰 ‘로보캅’으로 만든다. 하지만 미국 전역에 로보캅을 배치하겠다는 야심을 가진 옴니코프사와 기계 안에서 여전히 인간의 머리로 사고하는 로보캅 사이의 갈등이 시작된다. 과거와 달리 올 블랙 슈트와 첨단 장비로 무장한 로보캅은 오랜 팬들에게 괴리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브라질 슬럼가를 무대로 한 <엘리트 스쿼드> 연작으로 ‘경찰영화’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준 호세 파딜라 특유의 감각이 분명 독특한 색채를 덧씌웠다. 원작과의 꼼꼼한 비교와 더불어 호세 파딜라 감독의 지난 작품들을 분석하고, LA 현지 프리미어 시사 뒤 가진 호세 파딜라 감독과 배우 요엘 신나만, 게리 올드먼과의 인터뷰를 전한다.
내년 2015년은 <백 투 더 퓨처2>(1989)에서 마티(마이클 J. 폭스)가 타임머신과 함께 30년 뒤로 갔던 미래다. 미래로 간 마티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늘에는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 하지만 2014년 현재 여전히 휘발유 아니면 경유의 세상, 자동차는 여전히 바닥에 딱 붙어다닌다. 말하자면 과거의 영화들이 예견했던 미래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더 먼 미래의 것으로 남겨둬야 하는 상황. 하지만 27년 전에 만든 폴 버호벤의 <로보캅>이 예견한 미래의 풍경은 훌쩍 가까이 다가온 현실이다. 호세 파딜라의 새로운 <로보캅>은 도입부부터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그의 경력을 새삼 드러내듯 바로 지금의 세계를 보여준다. 2028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대량생산된 수많은 로봇군인들이 이라크 시내를 위압적으로 거니는 모습은 분명 지금의 중동 현실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이 도입부에서 방송 진행자 팻 노박(새뮤얼 L. 잭슨)은 이라크에서 훌륭하게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이 멋진 로봇군인을 왜 정작 미국에서 로봇경찰로 도입하지 않는지 의아해한다. 그러니까 27년 전의 원작과 가장 다른 점 중 하나가 바로 처음부터 드러난다. 폴 버호벤의 <로보캅>은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지면서 완전히 새롭게 만든 로봇인 반면 호세 파딜라의 <로보캅>은 미국 바깥의 분쟁지역에서는 이미 활동하고 있는 로봇들이다(물론 그 기계 안에 인간을 넣는다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이미 디자인과 기술 점검은 끝난 상태). 그러니까 이번 <로보캅>의 도입부는 (역시 네덜란드에서 할리우드로 막 건너왔던 폴 버호벤의 경우처럼) 브라질 출신으로 이제 막 할리우드로 건너온 호세 파딜라의 다음과 같은 경고문이나 다름없다. ‘이제부터 당신이 보게 될 영화 속 풍경은, 바로 지금 미국이 해외에서 저지르고 있는 그 어떤 만행보다 지나치지 않습니다. 미국 밖에서는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죠. 부디 정신 차리고 보세요.’ 돌이켜보니 새뮤얼 L. 잭슨이 영화 도입부에 방송 진행자로 나온 적은 과거 딱 한번 더 있다. 바로 스파이크 리의 <똑바로 살아라>(1989)에서 DJ ‘러브 대디’로 나온 그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외쳤었다. Wake up, Wake up!(깨어나라, 깨어나라!)
폭력묘사의 수위를 높게!
1980년대 후반 들어 VHS 비디오기기의 보급률이 1가구 1대 수준으로 높아지면서 비디오 대여점은 호황을 맞았고, 은퇴하면 비디오 대여점을 차리겠다는 중년들이 치킨집 차리겠다는 사람들만큼이나 많았다. 물론 거기에도 은밀한 거래가 이뤄졌다. ‘다운로드’가 없던 시절 이른바 정식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은 무삭제판 ‘B자 비디오’ (정품이 아닌 복사본을 대여해주는 것으로 당시 신작 영화들도 개봉 전에 이처럼 흔하게 유통됐으며, 요즘의 ‘불법 다운로드’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파일’로 소장할 수 없기에 돌려보거나 카피해서 봐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라는 거대한 시장이 있었던 것. 아마도 당시 <로보캅>은 <비엔나 호텔의 야간 배달부>나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그리고 <퍼블릭 우먼> 같은 에로영화가 아닌 작품으로 가장 많이 돌려본 B자 비디오 작품이 아닐까 싶다. <로보캅>이 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하긴 했지만 무진장 삭제된 버전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은 B자 비디오를 구하러 다녔는데, 이미 그걸 본 사람들은 ‘원판은 무지막지하게 끔찍하다’며 으스댔다. 어렵사리 구한 <로보캅> B자 비디오에는 검은색 굵은 사인펜으로 ‘로보콥’이라는 한글이 쓰여 있었다. 그땐 그냥 대량으로 카피해서 특별한 스티커도 없이 겉에 사인펜으로 대충 휘갈겨 썼었다. 그렇게 보게 된 <로보캅> 무삭제판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기자의 수준에서 볼 때 거의 공포영화였다. 악당들이 기관총을 난사하여 주인공 알렉스 머피(피터 웰러)를 완전히 벌집으로 만들었고, 유독물질 탱크를 들이받은 악당의 몸은 형체도 없이 녹아내렸다. 정말 무서웠다.
실제로 과거 폴 버호벤이 <로보캅> 연출을 맡으면서 스튜디오로부터 받았던 주문은, ‘로봇 존 웨인’이 등장하는 현대판 서부극 혹은 앞서 개봉한 일종의 ‘인조인간 영화’들인 <블레이드 러너>(1982)나 <터미네이터>(1984)와의 차별성을 위해 폭력묘사의 수위를 높게 설정하는 것이었다. 그가 할리우드로 오기 전 만들었던 일련의 작품들인 <사랑을 위한 죽음>(1973), <로즈 앤 스워드>(1985) 역시 노골적인 성적, 폭력적 묘사가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었다. 이번 <로보캅>에도 등장하는, 마치 공룡처럼 두개의 큰 다리로 움직이는 로봇경찰 ED-209가 작동 오류로 시연식에서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로 총을 난사하고, 머피가 클레런스(커트우드 스미스) 일당에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은 너무 잔인해서 처음에는 X등급, 그러니까 사실상 등급 판정을 받지 못해 개봉이 힘든 수준이었다. “언젠가 우리 눈앞에서 벌어질지도 모를 사실적인 폭력의 공포를 주기 위함이었다”던 폴 버호벤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잔인한 장면들을 자진삭제하고서야 R등급(17살 이하는 부모나 성인보호자 동반시 관람가)으로 개봉하게 됐던 것. 그럼에도 디트로이트의 거대하고 황량한 제강소에서 벌어지는, 로보캅이 맨 얼굴의 살갗을 드러낸 거의 종교 수난극과도 같은 라스트 신의 파괴력은 무지막지했다. 그렇게 원작 <로보캅>의 핵심은 무시무시한 폭력성에 있었다.
오리지널과 같은 점과 차이점
오리지널의 팬이라면 아무래도 새로운 로보캅 디자인에 일단 실망했을 것이다. 한국의 퀵서비스맨을 보고 디자인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검은색의 슬림한 외관이 낯설다. 또 자동차가 아닌 오토바이를 타기에 역시나 범죄도시의 심판관인 배트맨의 노골적인 영향이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옴니코프사의 CEO를 연기한 마이클 키튼은 원조 배트맨이 아니던가. 원조 로보캅의 매력은 실버 색상의 둔중한 외관, 특히 어떤 총격도 막아내는 그 우람한 대흉근에 있었다. 과거 특수분장을 맡았던 롭 보틴의 로보캅 의상이 실제로 너무 무거워서, 메소드 연기파 배우였던 피터 웰러가 엄청나게 고생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가 의도적으로 느리게 걷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더불어 그 우람한 체격 때문인지 <터미네이터>의 아놀드 슈워제네거에게 캐스팅 제의가 들어갔다가 거절당한 것 역시 유명한 일. 어쨌건 프리 프로덕션 기간부터 싸움이 끊이질 않았던 폴 버호벤과 롭 보틴은 이 의상 디자인에 이르러 1차 화해를 이뤘고, 이후 그들의 최고 합작품 <토탈 리콜>(1990)로 나아가게 된다. 어쨌건 전편에 대한 오마주로, 허벅지에서 나오는 고성능 테이저건을 살려둔 건 천만다행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차이점은 호세 파딜라의 로보캅이 과거와 달리 기억이 온전한 상태라는 것이다. 박사 역의 게리 올드먼의 말을 빌리자면 ‘머피는 로보캅이라는 슈트에 올라탄 승객’이다. 과거 로보캅은 재탄생과 동시에 시점숏 장면들만 길게 보여주며,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세상을 처음 보는 것 같은 상황을 연출했다. 그래서 자신이 과거 살해당한 경찰관 머피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우연히 만난 과거의 악당이 그를 향해 “어? 넌 우리가 죽였는데”라고 말하고, 함께 짝을 이뤄 다녔던 루이스 경관(낸시 앨런)이 “넌 머피야, 나 기억 안 나?”라고 물으면서 혼란이 오고, 급기야 자신의 과거 자료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과거 로보캅이 기계에서 점차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번 로보캅은 그 반대로 점차 기계 몸에 맞춰 비인간적으로 변해가는 양상을 지켜본다. 세 번째로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바로 가족의 존재다. 호세 파딜라의 로보캅이 보다 측은한 이유는 아마도 그가 발기한 상태로 죽었을 것이라는 19금의 상상 때문이다. 격무를 끝내고 모처럼 집에 돌아온 머피가 아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 할 즈음 불청객들에 의해 죽고 마는 것. 머피가 작전 수행 도중 죽었던 폴 버호벤의 <로보캅>에서 가족은 사건 이후 집을 떠나 새 삶을 시작하며 사라지는 설정이지만 이번 로보캅은 계속 아내, 아들과 함께한다. ‘가족애’는 새로운 로보캅의 행동양식과 규범을 규정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폴 버호벤의 <로보캅>(1987)은 ‘사고하는 기계’라는 철학적 질문을 잔혹한 폭력성과 버무렸다. 더구나 로보캅 프로젝트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의 양상이 정부나 기업 그 자체가 아니라, 사실상 군수기업내의 직장 내 선후배 사이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그들에게 한 도시의 치안이 좌지우지되는 것이다. 더불어 원작과 달리 호세 파딜라의 <로보캅>(2014)에 로보캅의 아내가 등장하면서, 과거 파트너를 이뤘던 중심인물 루이스 경관(낸시 앨런)의 존재가 사라진 것은 팬들에게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현실의 소음을 흥미롭게 담아내다
이처럼 호세 파딜라의 <로보캅>은 과거의 향수를 채워주는 데는 분명히 실패했지만, 그와 별개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작품이라 여겨진다. 폴 버호벤의 또 다른 작품을 리메이크한 렌 와이즈먼의 <토탈 리콜>(2012)이 안겨준 황당함 때문에 보다 너그럽게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하드코어 서부극같은 B급의 둔탁한 매력이 사라진 것은 아쉽지만, ‘로보캅=공산품’ 혹은 ‘민영화의 미래’라는 핵심 테마가 호세 파딜라의 이전 작업과 맞물려 굉장히 흥미로운 현실의 소음을 내게 된 것. 특히 맨 처음 태어난 로보캅이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장면은, 마치 <아바타>(2009)에서 하반신 마비를 겪었던 제이크 설리(샘 워딩턴)가 실험실을 박차고 나가는 장면처럼 묘사되는데, <아바타>와 달리 그 탈주의 해방감은 이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충격적인 풍경 속에서 소멸된다. 마치 현대판 <모던 타임즈>(1936)처럼 자신과 같은 로봇경찰이 중국에서 OEM으로 대량생산되고 있고, 그 공장의 바깥은 농부들이 삿갓 쓰고 일하는 논밭이다. 로보캅의 뒤통수에는 애플 아이폰처럼 ‘디자인 바이 옴니코프 인 디트로이트, 제조국 중국’이라고 쓰여 있을 것이다. 2028년의 미래에도 제3세계 국가나 이라크의 현실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는 냉철한 상상이다. 그런 점에서 호세 파딜라는 폴 버호벤보다 <디스트릭트 9>(2009)과 <엘리시움>(2013)을 만든 닐 블롬캠프와 더 닮았다. 모내기하는 동아시아의 논두렁을 구르다 전원이 끊겨 쓰러지는 로보캅, 바로 거기에 호세 파딜라의 야심이 담겨 있다. 미래 사회를 움직이는 것도 역시 초국적 자본이다.
호세 파딜라 감독의 <엘리트 스쿼드> 연작
호세 파딜라의 <로보캅>에 대해 굳이 쓴소리를 덧붙이자면, 너무 유머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 <로보캅>에서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로보캅이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자, 방송국 리포터가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나요?”라고 묻고 로보캅은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해맑게 몰려드는 아이들을 향해 “문제를 일으키지마”라고 경고한다. 또한 손가락 끝에서 뾰족한 것이 튀어나와 시스템과 접속하여 자료를 다운받고 재생하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게 <스타워즈> 시리즈의 R2D2의 기능과 흡사한 위트 있는 설정이었다. 그러니까 호세 파딜라의 로보캅은 여러모로 진짜 ‘사람’ 같다. <로보캅>의 팬들로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지만,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그의 출세작 <엘리트 스쿼드>를 떠올려보면 의미심장한 작가적 연장선이기도 하다.
<로보캅>에 담겨 있는 테마는 호세 파딜라의 전작 <엘리트 스쿼드> 연작(2007, 2010)에 충실히 담겨 있다. 할리우드가 민영화된 미래 사회의 경찰을 다루고자 그를 원한 것도 그것 때문이며, 호세 파딜라 역시 <로보캅>의 오랜 팬이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슬럼가에서 활동하는 군경 ‘보피’(S.W.A.T. 보다 더한 지옥훈련을 통과한 특수경찰로 해골 마크를 긍지로 지니고 있다)의 이야기를 그린 <엘리트 스쿼드>에서 “경찰도 가족이 있고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경찰이면서 좋은 무리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러닝타임 내내 내레이션을 하는 주인공이자 팀을 이끄는 리더 나시멘토(바그너 모라), 그리고 신참 보피 대원 마티아스(앙드레 라미로)와 네토(카이오 준쿠에이라)는 세명의 서로 다른 로보캅이나 다름없다. 승승장구하는 나시멘토의 모습은 역시 언론과 대중의 사랑을 받는 로보캅의 모습과 비슷하다. <로보캅>의 미래 사회가 그런 것처럼, 총격전이 끊이지 않는 리우에서 마약업자와 갱들은 부패경찰과 공존하며 살아간다. “부패한 경찰이 되어 모른 척하고 살든지 아니면 갱과 전쟁을 해야 한다. 정직한 경찰이 슬럼에 들어오면 보통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나시멘토의 말에서 보듯 ‘정직한 경찰’ 로보캅 역시 위기를 자초하는 캐릭터다. 나시멘토의 결론은 오직 “시스템에 적응하라”는 것이다. 한계도 경계도 없는 그 시스템은 부패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특히 2편에서는 보피가 수행한 특별한 작전을 ‘이라크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묘사한다. 폴 그린그래스가 <그린존>(2010)에서 그린 것처럼, 이라크 내에 대량살상무기가 숨겨져 있다며 거짓 정보하에 작전을 펼쳤던 미국의 독선을 빗댄 것이다. 마찬가지로 슬럼가에 경찰로부터 훔쳐간 총기류가 있다며 보피가 대대적인 작전을 펼치지만 사실상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단지 정직한 경찰이 되고자 했던 것뿐인데, 그 의지와는 달리 흘러가는 나시멘토의 딜레마가 끝을 향해 달려간다. 특히 아들을 사랑하는 <로보캅>의 머피처럼 <엘리트 스쿼드>의 나시멘토는 아들에게 한점 부끄럼 없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 보피를 떠나려 한다. “인종청소, 사회청소를 자행한 군경은 사라져야 한다. 내 동료의 절반 이상은 모두 감옥에 가야 한다”는 그는 “변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시스템은 단단하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그를 두고 <시티 오브 갓>(2002)으로 혜성처럼 등장해 역시 할리우드로 진출했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차기작은 할리우드가 아닌 브라질에서의 개인 다큐멘터리 작업이다. 그의 데뷔작도 슬럼가의 무고한 소년 산드로를 죽인 브라질 경찰들이 명명백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던 실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버스174>(2002)였다. 현재의 작업이 본격적인 할리우드 활동을 위한 숨고르기인지 어떤지 알 길은 없지만, 어쨌건 다큐멘터리스트로서 그의 ‘본질’은 변함없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