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미친 우익 미디어 어디에나 있기 마련
2014-02-27
글 : 안현진 (LA 통신원)
호세 파딜라 감독

뻔한 스튜디오 액션물이 아니었다. 1987년 당시에도 SF 액션물로 둔갑한 폭력과 사회에 대한 은유와 통찰은, 2014년 <엘리트 스쿼드> 시리즈를 연출한 브라질 감독 호세 파딜라의 손에서 익숙한 듯 낯선 액션 스릴러로 거듭났다. 아니, 오히려 지금 이 시점에 더 적절한 영화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월 말 미국 LA에서 프리미어 시사를 마친 호세 파딜라 감독과 로보캅 역의 배우 요엘 신나만, 그리고 로보캅을 만든 과학자 데넷 노튼 역의 게리 올드먼을 만났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리메이크가 아닌 새로운 <로보캅>”이라고.

-<로보캅> 리메이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이야기해달라.
=할리우드로부터 감독직을 여러 번 제의받았고 여러 번 거절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MGM과의 미팅에 갔다. 다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간 자리였다. 거기서 <로보캅> 포스터를 보았고, 지금 이 시점에서 폭력과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튜디오에 <로보캅>을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이야기했고, 3일 뒤에 연락이 왔다. 그다음에 브라질의 회사로 돌아가서 내게 편안한 환경에서 각본가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유일하게 영어를 쓰는 사람은 각본가뿐이었다.

-뻔한 블록버스터일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지.아이.조>를 예상했다는 거 알고 있다.(전원 웃음) <로보캅>이 다른 슈퍼히어로영화들과 다른 점은 캐릭터에 있다. 슈퍼맨, 아이언맨, 배트맨을 보면 아이들은 슈퍼히어로처럼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로보캅은 그렇지 않다. 주인공인 알렉스 머피조차 로보캅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찍어내는 슈퍼히어로들과는 달랐다. 최우선적으로는 많은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두 번째로는 폴 버호벤이 <로보캅>에서 창조해낸 영화 속 현실과 이 시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리메이크하기 위해 폴 버호벤과 따로 만난 적이 있나.
=아니다. 폴 버호벤의 <로보캅>은 리메이크할 수 없는 영화다. 개인적으로 시대를 앞선 훌륭한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원작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나만의 해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야 했다. 내가 만든 <로보캅>이 원작과 다른 점은 알렉스 머피가 스스로의 비인간화 과정을 목격하는 증인이라는 점이다. 알렉스 머피는 처음엔 자신이 로봇이 됐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그다음에 거울로 자신을 마주하게 되자 죽기를 원한다. 옴니코프는 그의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감정까지도 제거하려고 한다.

-원작 <로보캅>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나.
=자라면서 수백번 보았다. 1987년에 브라질에서 개봉했을 때 미성년자였던 터라 영화를 볼 수 없었지만 어쨌든 봤다. 아마 아버지와 함께 봤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고는 사랑에 빠졌다. 아이러니한 동시에 대단한 영화였다. 무엇보다 영화는 스스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SF도 좋아했지만 기계로 인한 파시즘의 도래라는 주제가 마음에 들었다. 사실 그건 고전적인 주제다. 고전적인 주제에 매력적인 캐릭터가 더해졌으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팻 노박 역의 새뮤얼 L. 잭슨의 역할과 장면들은 상당히 흥미롭다. 편향된 시선의 TV 토크쇼와 진행자라는 설정을 영화에 넣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나라에는 미친 우익 미디어는 꼭 하나씩 존재한다. 미국에는 한두개가 아니다. (좌중 웃음) 브라질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그걸로 재미있는 연출을 해봐도 좋을 것 같더라. 로봇이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경찰력을 대체하는 상황을 두고 미국에서 TV토론이 벌어진다면, 팻 노박 같은 진행자가 있을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박스오피스에서 흥행한다면 속편을 연출할 것인가.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나의 차기작은 <로보캅2>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 차기작은 다큐멘터리가 될 것이고 이미 촬영에 들어갔다. 지난 2년 동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5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실종됐다. 어떻게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나? 경찰에 의해서인가? 아니면 단순한 숫자의 실수인가? 말이 안 된다. 이 궁금증에 대해 들여다보고 싶다. 또 다른 아이디어는 브라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3개국의 접경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그곳은 헤즈볼라, 모사드, 마약거래상, 마약단속국이 모여 있는 위험한 지역이다. 이미 각본 작업은 마무리된 상태다. 또 SF와 액션 스릴러의 각본을 쓰고 있다. 어떤 프로젝트가 먼저 시작될지는 알 수 없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감독들은 여러 프로젝트를 마음에 두고 있기 마련이다.

-여러 프로젝트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하나만 열심히 하는 것보다 힘들지 않나.
=물론 하나만 열심히 하는 게 일하기는 쉽다. 하지만 한 가지만 가지고 있다면 그 영화조차도 만들지 못할 위험이 크다. 우디 앨런 정도 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음에 둔 그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아니라면 항상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는 누구도 아닌 내가 꼭 하고 싶은 것이어야만 한다. 영화 한편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지 않다. 3년 넘는 시간을 좋아하지도 않는 일, 하고 싶지 않은 일에 투자한다면 엄청나게 괴로울 것이다.

철학적이고 정치적 질문이 이 프로젝트를 움직였다

로보캅 연기한 요엘 신나만

-원작의 대단한 팬이라고 들었다.
=맞다. <로보캅> 원작뿐 아니라 폴 버호벤 감독의 팬이기도 하다. 아마 출연 제의를 받기 전에도 원작을 25번은 족히 봤을 것이다. 처음에 <로보캅>이 리메이크된다는 걸 들었을 때 내게 딱 맞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 출연 제의가 오고, 감독이 <엘리트 스쿼드> 시리즈와 다큐멘터리 <버스174>를 만든 호세 파딜라라는 걸 알게 된 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실제로 로보캅 역할로 캐스팅됐다는 걸 알게 됐을 때의 반응이 궁금하다.
=오디션을 모두 세번 본 뒤 매니저에게 내가 캐스팅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여자친구와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전화를 끊자마자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녔다. 여자친구가 “당신이 로보캅이야!”라고 말하며 수영장에 뛰어들자고 해서 발끝을 담갔는데 너무 추워서 발을 도로 뺐다. (웃음) 그녀가 ‘진짜? 당신이 로보캅이라고?’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더라. 그 뒤 물에 뛰어들었다.

-원작을 그렇게 많이 봤으니 역할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겠다.
=어렸을 때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로보캅 흉내를 너무 낸 나머지 어머니가 의사에게 나를 보이러 갔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는 원작과 여러 면에서 달랐기 때문에 나만의 시선에서 해석한 이야기를 보여줘야만 했다. 원작을 따른 것이 있다면, 머리가 먼저 어깨가 나중에 움직이는 로보캅 특유의 동작이었다. 피터 웰러의 존경할 만한 몸연기에 대한 오마주였다.

-당신이 해석한 <로보캅>에 대해서 이야기해달라.
=내가 연기한 알렉스 머피는 상황이 만들어낸 희생양이다. 인간의 얼굴과 판단력을 가진 로봇 시스템을 미국 땅에서 경찰력으로 팔려는 대기업의 마케팅 도구로 사용된다. 로봇이 사람과 결합하는 것은 영화에서 자주 봐온 아이디어이지만, 이미 삶의 많은 부분에 컴퓨터가 들어와 있는 이 시점에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한 주제일 것이다. <로보캅>은 표면적으로는 액션영화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이면에는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럼 그 질문들에 대해선 출연진, 제작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나.
=그 질문에 대한 대화는 촬영현장에서 계속해서 진행됐다. 그 점이 사람들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만들었다고도 생각했다. 게리 올드먼이나 새뮤얼 L. 잭슨 같은 배우들은 그들이 하고자 하는 영화에만 출연하고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 영화에 참여했다는 것은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그만큼 흥미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2028년은 멀지 않았다

로보캅 만든 과학자 역 게리 올드먼

-원작 <로보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상이나 기억은 무엇인가.
=원작 영화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또렷한 기억은 목소리다. 그다음에 기억에 남는 것은 은빛으로 반짝이는 갑옷을 입은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에 내게 남은 인상은 기술에 대한 것이었다. 원작이 만들어진 1987년에 SF는 ‘Science Fiction’이었지만 지금은 ‘Science Fact’가 됐다. 터치스크린이며 비디오게임 등은 이미 우리의 삶에 들어와 있는 기기들이다. 그렇기에 과거의 관객보다 현재의 관객이 이 영화에 반응하고 더욱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2028년은 멀지 않았다.

-<로보캅>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각본이 마음에 들었다. 호세 파딜다 감독은 그가 만들려는 영화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어떤 영화를 만들지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있었다. 우리가 어제 시사회에서 본 영화와 똑같은 영화를 나는 호세를 처음 만난 날 그의 입을 통해서 보았다. “Yes”라고 대답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각본을 볼 때 어떤 점을 보나? <로보캅> 각본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각본을 볼 때 특정한 것을 찾으려고 한 적은 없다. 그래서 그에 대한 답은 모른다. 각본을 읽고 마음에 들면 앞으로 두달은 이 영화를 촬영할 수 있겠다 혹은 이 감독과는 일할 수 있겠다 같은 결정을 하게 된다. 나는 잘 쓴 글에 반응한다. 잘 쓴 각본에는 영화가 보여줘야 할 거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드라큘라> 대본을 읽었을 때 캐릭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로보캅>의 각본이 그렇게 즉각적이었던 건 아니다. 이 영화와 가까워진 건 모두가 둘러앉아 대본을 읽었을 때다. 우리는 함께 영화를 바보로 만들 수 있는 요소들을 제거해나갔다. 호세는 영화가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는 요소를 가능한 한 없애려고 노력했다.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맞다. 그를 좋아한다. 그는 스튜디오 밖에서 영화를 만들던 사람인데 대중문화로 진입했다. 호세의 그런 배경이 그의 영화를 독특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는 할리우드에 길들여진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브라질 사람의 시선이 이 영화에 들어 있다. 알폰소 쿠아론, 토마스 알프레드슨도 마찬가지다. 원작 <로보캅>을 만든 폴 버호벤도 네덜란드 사람이다. 이들은 어느 정도는 아웃사이더이고, 그래서 그들만의 개성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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