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 어딘가에 자리 잡은 일루셔니스트 이은결의 작업실 겸 스튜디오엔 그가 30여년 동안 모아온 온갖 마술 도구, 소품을 비롯해 지금 한창 제작 중인 새로운 마술 세트가 펼쳐져 있었다. 그중 가장 눈이 갔던 세개의 물건을 스케치했다.

스튜디오의 검은 커튼 뒤엔 조르주 멜리에스를 오마주한 거대한 기차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멜리에스 일루션> 전시 당시 사용했던 제작물이다. 멜리에스의 영화적 도구들과 말년의 멜리에스가 시계탑 근처에서 장난감 가게를 했던 때를 모티프로 하여 사진기, 필통, 장난감, 시계, 온갖 기계 부품과 담배 파이프 등으로 만들어진 열차다. “열차에 가미할 오브제를 결정하는 과정이 정말 오래 걸렸다. <멜리에스 일루션>에서 열차가 지닌 근대성의 상징성, 시간성, 하이테크놀로지를 표현”하고 싶었던 이은결은 오는 5월에 공개 예정인 새 공연에서도 이 열차를 사용할 계획이다. “멜리에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하기 위해 태블릿 등을 이용한 새 퍼포먼스를 염두에 두고 있고, 종국엔 열차가 영상을 뚫고 나오는 장면까지를 함축적이고 빠른 속도로 만들기 위해 고민 중”이다.

이은결 총감독의 ‘최애 티니핑’은 바로 병사핑! 병사핑은 로미 공주가 하츄핑을 구하기 위해 라미엔느성으로 들어갔을 때 성을 지키던 친구들이다. 병사핑이 최애인 이유는 “이리로 가라고 하면 이리로, 저리로 가라고 하면 저리로 가는, 무리 지어서 움직이는 노예” 같은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는 것. 무엇보다도 “온통 새까만 색깔이라 보자마자 좋았다!” 하츄핑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로미 공주처럼 이은결의 최애 티니핑은 ‘처음 본 순간’ 결정됐다.

오래전 마술을 처음 연습했을 때부터 일루셔니스트 이은결이 온갖 아이디어를 적고 그려놓은 노트가 십수권 쌓여 있었다. 최근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주로 이용하지만, 그의 세월과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노트 속엔 손동작 하나하나, 한번 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마술의 다양한 원리가 글과 그림으로 빼곡하게 적층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