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제] 부산에서 놓친 영화를 다시 한번
2014-03-12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ACF 쇼케이스 2014 아시아 독립영화의 미래’, 3월13일부터 16일까지 인디플러스에서
<싱가포르에게, 사랑을 담아>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화제작을 서울에서 다시 만난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Asia Cinema Fund, ACF) 지원작 중 주목할 만한 작품을 선별해 상영하는 ‘ACF 쇼케이스 2014 아시아 독립영화의 미래’가 3월13일부터 16일까지 4일간 인디플러스에서 열린다. 한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몽골, 타이 등에서 온 6편의 극영화와 4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날 수 있다. 올해 주제는 ‘아시아 독립영화의 미래’다. ‘미래’라는 단어와는 대조적으로 회고적 성격의 작품들이 눈에 띈다. <산다>와 <콘크리트 클라우드>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상황을, <싱가포르에게, 사랑을 담아>는 1977년 정부 탄압 시기를 각각 회고한다. 지극히 내밀하고 개인적인 회고를 담은 <못> 역시 만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회고가 현재 완료된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회고는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이자 미래이기도 하다. ‘미래’는 또한 독립영화를 이끌어갈 젊은 감독들의 내일을 일컫는다. 이들 중 <싱가포르에게, 사랑을 담아>의 탄핀핀, <콘크리트 클라우드>의 리 차타메티쿤, <못>의 서호빈, <셔틀콕>의 이유빈 감독 등이 참여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마련된다. 10편의 독립영화와 함께 아시아 독립영화의 미래를 가늠해보자.

<싱가포르에게, 사랑을 담아> To Singapore, With Love 탄핀핀 / 싱가포르 / 2013년 / 70분 / 다큐멘터리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조국에 대한 절절한 러브레터로 시작해보자. 때는 1976년 무렵, 싱가포르 정부는 재판 없는 구금을 통해 정권 비판적인 성향의 학생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한다. 이들은 탄압을 피해 영국, 타이, 말레이시아 등지로 흩어졌고, 이후 35년이 흘렀지만 그들의 고립은 여전하다. 그사이 누군가는 유골이 되어서야 조국을 방문한다. 다른 누군가는 영국에서 낳은 어린 아들이 싱가포르 시민권을 갖고 싱가포르 군대에 입대할 수 있길 희망하지만 고국은 이를 거부한다. 2013년 두바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 수상작이자, 2014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 초청작이다.

<콘크리트 클라우드> Concrete Clouds 리 차타메티쿤 / 타이, 홍콩, 중국 / 2013 년 / 99분 / 극영화
주목해야 할 타이 감독 리스트에 조만간 리 차타메티쿤을 추가해야 할 전망이다. 그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징후와 세기>, 아딧야 아사랏의 <원더풀 타운> 등의 편집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콘크리트 클라우드>는 그의 데뷔작이다. 고향을 떠나 뉴욕에 거주하던 머드가 아버지의 자살 이후 고국에 돌아오면서 고등학생인 동생, 옛 연인 등과 재회한다. 표면적인 이야기 아래에는 1997년 외환위기 상황이 자리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본다면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조금은 실감하게 될 것이다. 중간중간 타이의 정서를 짙게 풍기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산다> Sanda 김미례 / 한국 / 2013년 / 93분 / 다큐멘터리
인력퇴출프로그램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KT 노동자들의 투쟁기이다. 이야기는 1998년 IMF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국영기업이던 한국통신은 서서히 민영화되면서 직원들에게 명예퇴직의 압박을 넣기 시작한다. 몇몇 직원은 이를 거부하고 민주노조를 결성하지만 2002년 한국통신은 완전한 민영기업 KT가 되고, 직원들은 부당해고된다. 이해관씨는 12년 만에 복직했지만, 각종 차별대우를 감수하며 어렵게 살고 있다. ‘웃기고도 슬픈’ 오프닝 음악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013년 DMZ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부문 최우수상 수상작이다.

<구럼비-바람이 분다> Gureombi-The Wind Is Blowing 조성봉 / 한국 / 2013년 / 100분 / 다큐멘터리
현재진행 중인 투쟁지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른 곳 중 하나가 제주 강정마을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감행하려는 공권력에 맞서 제주도의 상징, 구럼비를 지키려는 마을 주민의 투쟁은 계속된다. 경찰은 맨몸으로 맞서는 주민들에게 강제연행으로 응답한다. 주민들의 목소리는 날로 쉬어가고 몸부림이 거세지지만 공권력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주민들의 쉰 목소리와 대조적인 청량한 배경음악이 깔리는 것이 인상적이다. 답답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희망을 그리려는 안간힘이 느껴지는 다큐멘터리로,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 BIFF메세나상 특별언급작품이다.

<콘크리트 클라우드>

<안녕, 투이> Thuy 김재한 / 한국 / 2013년 / 108분 / 극영화
이주여성 문제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첨예한 이슈 중 하나다. 영화는 바로 이 문제를 건드린다. 베트남에서 태어나 한국의 한 시골 마을에 시집온 투이에게 어느날 남편이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경찰은 그가 오토바이를 몰다가 사고가 난 것으로 결론짓지만, 투이는 남편이 손가락이 몇개가 없고 오토바이를 탈 줄 모른다며 그의 죽음에 의혹을 제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사건을 무마시키기에만 급급하다.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풀어내면서도 그 상징성을 드러내는 접근법이 인상적이다.

<거리에서> Jalanan(“Streetside”) 다니엘 지브 / 인도네시아 / 2013년 / 107분 / 다큐멘터리
투쟁에 있어 좋은 본보기가 될 만한 작품은 인도네시아의 거리의 악사 보니, 호, 티티의 삶을 따라가는 이 소박한 다큐멘터리다. 그들은 기타 하나를 둘러멘 채 버스에 올라 승객 앞에서 열창하고, 구걸해 받은 돈으로 생계를 잇는다. 그들은 직접 작사, 작곡까지 하는 싱어송라이터인데 놀라운 것은 그들의 음악이 정말 듣기 좋다는 사실이다. 가사에는 때로는 정치적인 메시지가 실린다. 더 놀라운 것은 최악의 상황에서 샘솟는 유머감각과 긍정적인 마음이다. 거기에다 체험에서 비롯된 격언들은 그 어떤 철학 서적보다 더 깊이있다. 2013년 부산영화제 BIFF메세나상 수상작.

<셔틀콕> Shuttlecock 이유빈 / 한국 / 2013년 / 107분 / 극영화
어른들이 버둥거리는 사이, 아이들은 자란다. 그들은 어른이 없고, 돈이 있는 완벽한 세계를 꿈꾼다. 그러나 그 세계는 그들에게 어른이 되기를 끊임없이 강요한다. 부모가 사고로 돌아가신 뒤 배다른 누나 은지와 민재에게 유산 1억원이 남겨진다. 어느 날 은지가 돈을 갖고 사라지면서 민재는 은지를 찾기 위해 고물차를 몰아 길 위로 나선다. 차에 몰래 탄 동생 은호도 함께다. 세 남매간에 펼쳐지는 미묘한 심리적 갈등과 청소년 세계의 언어를 내밀하게 파고든다. 민재 역의 배우 이주승은 이 영화 전체를 내포하는 듯한 하나의 얼굴을 인상적으로 연기해낸다.

<못> Mot 서호빈 / 한국 / 2013년 / 109분 / 극영화
청춘에게도 숨통이 트일 공간이 필요하다. 그들은 세상과는 단절된 채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공간을 마련해놓고 젊음을 증명한다. 그런데 그 숨통을 트여주던 작은 못이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이 된다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마지막 방학, 죽마고우 현명, 성필, 두용, 건우와 성필의 동생 경미와 그녀의 친구들이 아지트에 모인다. 캠프파이어를 벌이던 중 건우와 경미는 잠시 자리를 비우고, 그길로 경미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 채 사고로 사망한다. 그로부터 4년 뒤, 다시 모인 친구들은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결코 추억이 되지 못할 사건의 회고담이다.

<갈망아지> Yellow Colt 코롤도즈 초이주반지그 / 몽골 / 2013년 / 91분 / 극영화
강렬하고 비극적인 영화에 지쳤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몽골의 장대한 풍광 위에서 펼쳐지는 길 잃은 갈망아지 옐로우와 어린 소년 칼트의 우정 이야기다. 이 사랑스러운 영화는 갈망아지와 어린 소년이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꽤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이때문에 둘 사이에서 느껴지는 화학작용이 상당하다. 칼드 역을 맡은 아역배우의 귀여운 눈물연기는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둘 사이를 묵묵히 받쳐주는 어른들의 넉넉한 인품과 삶을 대하는 태도 역시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2013년 울란바토르국제영화제 개막작이다.

<만찬> The Dinner 김동현 / 한국 / 2013년 / 125분 / 극영화
한 가족의 몰락사이자 한 장남의 고군분투기다. 혹은 가족을 통해 보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장남 인철에겐 자식이 없고, 둘째 딸 경진은 심장병을 앓고 있으며 이혼 뒤 홀로 아들을 키운다. 막내아들 인호는 대리운전 기사로 일한다. 그나마 가장 듬직하던 인철마저 회사에서 해고당하지만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지 못한다. 인철은 대리운전 기사 노릇을 하다가 동생 인호와 만난다. 자식들이 버둥거리는 사이, 나이든 부모는 자식들로부터 자꾸만 멀어진다. 한 가족의 이야기이자 누구의 삶과 견주어도 겹치는 부분이 발견되는 사회의 모습이다.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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