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의 오! 마돈나]
[한창호의 오! 마돈나] 누벨바그 세대 지성과 퇴폐의 아이콘
2014-03-21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잔 모로 Jeanne Moreau

대개 스타들은 자기를 알아주는 감독을 한번쯤은 만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인데, 그럴 때 배우와 감독은 각각 자신의 경력에서 절정에 이른다. 존 포드에게 존 웨인이 없었다면, 또 반대로 존 웨인이 존 포드를 못 만났다면, 두 영화인의 위상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명감독과 스타의 만남은 대개 한번이고, 이것도 행운인 셈이다. 평생 이런 만남을 경험하지 못하는 영화인들이 더 많다. 그런데 그런 만남을 훈장처럼 여러 개 달고 있는 배우도 있다. 그런 화려한 경력의 대표적인 배우가 잔 모로다.

루이 말, 프랑수아 트뤼포의 연인

잔 모로는 배우로선 뒤늦게 서른이 다 돼서야 주목받기 시작했다.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던 모로를 스크린의 스타로 발굴한 감독은 루이 말이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8)를 통해서다. 프랑스에서 누벨바그가 막 시작될 때인데, 루이 말은 누아르 스타일의 범죄물에서 팜므파탈이기보다는 자포자기의 비관주의자로 모로를 묘사했다. 사랑을 위해 범죄까지 저질렀지만 버림받았다는 슬픔에서, 파리의 밤거리를 혼자 방황하는 잔 모로의 외로운 이미지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 연주와 어울려 관객을 아득한 고요 속으로 끌어당겼다. 이 영화를 통해 지적이고, 도시풍이고, 퇴폐적인 이미지가 잔 모로에게 각인된다.

이 작품은 26살 청년 루이 말의 감독 데뷔작이다. 청년의 감상주의가 지나친 면도 있지만, 루이 말은 영화가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자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의 매력, 곧 사랑의 일탈과 감상적인 음악의 사용을 두번 더 이용한다. 바로 다음해인 1959년 <연인들>에선 브 람스의 현악 6중주 1번곡, 그리고 <도깨비불>(1963)에선 에릭 사티의 피아노곡으로 데뷔작의 대중적 성공을 계속 이어갔다. 루이 말과의 작업으로 잔 모로는 단번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새 시대의 배우로 조명받는다. 지적이고 외로운 이미지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를 만나 <밤>(1961)을 통해 다시 한번 발휘된다.

우울한 이미지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프랑수아 트뤼포의 <쥴 앤 짐>(1962)이다. 두 남자와 동시에 사랑에 빠진 변덕스런 여성 역할이다. 사랑받을 때는 함박웃음이 터지고, 외로울 땐 눈가에 검은 그림자가 크게 드리운다. 성격만큼이나 외모도 변화무쌍하여 두 남자와 길거리를 뛰어다닐 때는 선머슴처럼, 사랑스러운 노래를 부를 때는 예쁜 소녀처럼 보이기도 한다(당시 모로는 34살이었다). 하지만 남자들과의 관계에선 늘 주도권을 쥐고 있다. 그 주도권을 잃어버렸다고 생각될 때 영화의 절정도 찾아온다. <쥴 앤 짐>은 당대의 페미니즘 분위기와도 어울렸고, 잔 모로는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새 여성의 이미지를 대변했다. <쥴 앤 짐>은 아마 감독과 배우 모두에게 자신들의 최고작으로 기억될 것 같다.

트뤼포와 작업할 때 두 사람은 연인 사이였다. 이들이 대중의 특별한 주목을 받은 것은 두 사람 모두 기혼자여서이다. 잔 모로는 첫 남편과 오랫동안 별거 중이었지만, 법적으론 기혼녀였고, 트뤼포도 기혼남이었다. 하지만 이럴 때 여론의 관심이 누구에게 더 쏠리는지는 다들 알 것이다. 그런데 잔 모로는 데이트한 사실을 숨기기보다 당당하게 밝혔다. 더 나아가 모로는 트뤼포뿐 아니라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를 촬영할 때 루이 말, 마일스 데이비스와도 데이트를 했다고 말했다. <쥴 앤 짐>의 자유분방한 여성은 현실에서도 별로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행동도 당시 파리의 새 세대 여성들에겐 인기였다. 잔 모로의 태도에는 시대의 틀을 무시하는 듯한 스타의 오만함이 있었는데, 그게 팬들에겐 매력이었다.

1962년은 잔 모로의 경력에서 한 획을 그은 해가 된다. 평생의 동료인 오슨 웰스를 그때 만난다. 이제 막 데뷔한 동년배 감독들이었던 루이 말, 프랑수아 트뤼포와 달리 당시 웰스는 이미 전설이었다. 웰스는 미국에서 매카시즘이 한창일 때, 사실상 자발적으로 유럽으로 피신했다. <악의 손길>(1958) 이후에는 미국에 자유롭게 머물 수 있었지만, 유럽에서 영화작업을 하는 날이 더 많았다. <악의 손길>에 이어 4년 만에 발표한 작품이 카프카의 원작을 각색한 <심판>(1962)이다. 여기서 잔 모로는 밤무대 가수로 나온다. 도입부에서 비교적 짧게 등장하지만 요셉 K.(앤서니 퍼킨스)의 꿈의 연인, 곧 금지된 대상으로서의 퇴폐적인 이미지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는 자그레브, 로마, 밀라노, 파리 등지에서 촬영됐고, 이때 웰스와 모로는 급격히 친해졌다.

오슨 웰스 말년의 뮤즈

1960년대 웰스는 자신의 마지막 극영화 세편을 발표한다. 그 세 작품 모두에 잔 모로가 출연하는 것은 물론이다. 첫 영화가 <심판>이었고, 두 번째는 헨리 5세의 청년 시절을 다룬 <심야의 종소리>(1965)이다.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폴스타프’라는 노인이 주인공인데, 왕이 되기 전의 왕자에게 쾌락의 달콤함을 전수한 인물이 바로 그다. 모로는 이런 방탕한 노인(오슨 웰스)의 애인이자 창녀로 나온다. 역시 짧은 등장이지만, 15세기 영국 매춘부의 타락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웰스와의 마지막 작품이 <불멸의 이야기>(1968)이다. 극영화로는 웰스의 유일한 컬러 작품이다. 마카오를 배경으로 부자 노인(오슨 웰스)이 자식을 갖기 위해 젊은 여성과 하룻밤을 원한다는 내용이다. 그 여성으로 잔 모로가 나오는데, 그녀의 부친은 바로 부자 노인의 젊은 시절 사업 파트너였고, 그 노인 때문에 파산을 하여 자살했었다. 말하자면 여성은 아버지의 복수를 실현하기 위해 하룻밤 사랑을 판다. 복수에 사로잡힌 여성의 어두운 분위기는 에릭 사티의 피아노곡과 어울려 시종일관 멜랑콜리한 느낌을 전달한다. 사랑 속에 죽음을, 또는 죽음 속에 사랑을 숨긴 여성의 복잡한 감정은 모로의 연기를 통해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세 작품 모두 웰스가 유럽에 머물며 만들었고, 웰스 특유의 바로크적인 화면이 대단히 역동적으로 표현된 걸작들이다. 마지막 두 영화는 당시에 웰스가 살던 스페인에서 촬영됐다. 그런데도 더욱 영국처럼, 또 마카오처럼 보일 정도로 공간 표현이 발군이었다. 웰스 말년의 뮤즈는 단연 잔 모로였다. 세 작품 가운데 모로 특유의 퇴폐적인 지성미가 유독 빛났던 작품은 <불멸의 이야기>이다.

<불멸의 이야기>가 웰스의 극영화 마지막 작품인데, 우연찮게도 이때 잔 모로의 스타로서의 경력도 끝난다. 1958년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에 출연할 때 서른살이었던 모로는 약 10년간 불같은 삶을 살았고, 1968년 마흔살 즈음에 정점에서 내려온다. 그해에는 오랜만에 트뤼포를 만나 <비련의 신부>도 찍었다. 루이 말을 만나 함께 신인으로서 영화 경력을 시작한 모로는 오슨 웰스를 만나 함께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을 걸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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