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버스, 정류장>의 이미연과 심재명 [1]
2002-02-23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사진 : 이혜정
20년 친구 <버스, 정류장> 감독 이미연 제작 심재명, 영화 찍고 나눈 속풀이 수다

같은 길을 가려는 친구에게, 친구는 오히려 무기력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남이라면 쉽게 건넬 부탁이 친구 사이엔 오히려 어색해지고, 쿨하게 오갈 수 있는 충고도 혹 서로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세상에 흔한 것이 친구이고 우정이라지만 <버스, 정류장>을 통해 프로듀서와 감독이라는 제2의 관계를 맺어야 했던 친구, 심재명 대표와 이미연 감독의 이야기는 그래서 특별하고 또 궁금하다. 동덕여대 국어국문과 첫 미팅에서 인연을 맺은 뒤 20년 동안 침식과 퇴적 혹은 융기를 거친 우정의 단면은 그대로 촘촘히 균일한 것이었으나, 한편의 영화를 기획하고 찍고 개봉을 하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음을, 이들은 부인하지 않는다.

미팅으로 만나 고고장에서 굳은 우정

심재명(이하 심) | 우리 어떻게 만났는지가 궁금하시다는데?

이미연(이하 이) | 우리요? 대학동기인데요. 뭐 그렇다고 우아하게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만난 건 아니고.

심 | 사실은 1학년 들어가고 첫 미팅 나가서 만났어요. 아,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친한 애들은 다 그때 그 멤버구나.

이 | 재명이 처음 봤을때 귀엽더라고요. 나는 키만 크지 뻘쭘한 스타일이었지만 이 친구는 아담한 게 남자들이 보면 정말 귀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데 뭐 둘 다 미팅에서는 별 성과가 없었어요. 사실 짝짓기도 잘되고 쭉 그 길로 나갔으면 이렇게 안 친해졌을지도 몰라.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이죠.

심 | 매일 미팅 끝나면 모여서, 이번엔 택시를 타고 갔기 때문에 성공을 못한 거다, 다음에는 꼭 버스를 타자,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징크스를 끼워맞추기도 했었죠. (웃음) 하지만 무엇보다 우정을 꽃피웠던 장소는 지금 나이트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고고장’이었어요. ‘고팅’(고고장+미팅)은 정말 밥먹듯이 했거든요. 1년365일 중 300일은 출근도장 찍었을 정도니까.

이 | 300일은 너무하고 일주일에 많이 갈 때는 3, 4일 정도는 갔을 거야. 그게 그건가? (웃음) 그때 입장료가 1500, 2천원 할 땐데 일단 점심 때 만나서 밥먹고 종로2가 고고장이 문열 때까지 기다렸다가 3시쯤 들어가서 8, 9시쯤까지 1분도 안 쉬고 춤추다 나왔어요. 학생입장에서 놀다가 택시타고 집에 들어간다는 개념이 그때까진 없었고 우리에게 고고장은 워낙 일상의 일부가 되었기 늦게까지 놀거나 그렇지 않았어요. 술도 한 모금 안 마시고 콜라마시면서 죽어라고 흔들다 나오는 거죠.

심 | 진짜, 우리 대학생활 가만히 생각하면 무슨 중학생 같지 않아?

이 | 고고장 가는 중학생? (웃음)

심 | 요즘 대학생들하고는 정말 많이 달랐어요. 불란서문화원 가서 영화보고, 매일 편지쓰고, 판 사서 몇번 노래를 들어봐, 너무 좋지 않니? 뭐 이랬으니까. 정말로 사춘기야 사춘기. 1학년 중간고사 때였나. 강당 매트리스에 둘이 누워서 보던 하늘이 생각나요. 그때 하늘이 유난히 파랬는데 그때 그렇게 누워서 미연이와 처음으로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아요. 우와, 이거 정말 <여고괴담…>이다.

이 | 그때는 뭐가 그렇게 알고 싶고 궁금한 게 많았는지, 저 사람이 내 친구였으면 하는 욕구가 너무 강했나봐요. 매일 만나고도 하루에 서너장씩 편지써도 다음날이면 또 쓸 말이 생기는 거예요. 그것도 그냥 주는 게 아니라 우체국가서 우표붙여서 보내고 그랬었는데…. 지금도 집에 가면 편지가 박스에 한 가득이에요.

심 | 우린 버스를 자주 탔는데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미연이한테 음악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가요나 알았지 팝송 이런 거 잘 모르던 시절이었는데 얘는 너무 유식한 거야. 당시 그룹 ‘퀸’ 소속사에 팬레터 보내고 그럴 정도였으니까.

이 | 아유, 쪽팔리는 기억들 다 끄집어낸다. (웃음) 2학년 되고 내가 연극반 시작하면서 고고장 출입은 끊었죠. 하지만 재명이는 연극반이 아니었는데도 공연있으면 포스터 다 붙여주고 연극반 준회원 수준으로 ‘깍두기’ 노릇하며 계속 붙어다녔어요.

심 | 난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더라고요. 별로 멋있어보이진 않았어. 물론 그땐 연극표 공짜로 주니까 좋아서 그랬지.

이 | 그렇게 서로 편지쓰는 습관은 심 대표가 졸업하고 영화사 들어가고 내가 파리에서 공부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계속 된 것 같아요. 연애한단 이야기는 재명이가 파리로 보낸 편지에 이은 감독 이름이 조금씩 묻어나와 그렇구나 한 정도예요. 그러다 귀국할 땐 공항에 둘이 꽃다발 들고 나와 있더라구요.

심 | 꽃다발은 안 들고 있었어. (웃음)

이 | 안 들었나? 어쨌든 그 이후 우리가 아주 다른 일을 했다면 서로의 생활을 이야기해주느라 말도 많이 하고 편지도 계속 썼을 텐데…. 오히려 비슷한 일을 시작하면서 개인적인 이야기가 뜸해진 게 사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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