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조물주가 돌아왔다
2014-06-03
글 : 이주현
시리즈 7번째 영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가 주는 쾌감은 어디서 비롯하는가

<엑스맨> 시리즈의 창조주, 브라이언 싱어가 돌아왔다. 그가 <엑스맨2> 이후 11년 만에 연출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시간여행이라는 설정을 통해 과거와 미래의 엑스맨들을 한곳에 불러모은다. 7번째 <엑스맨> 시리즈인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가 이전 시리즈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무엇인지, 브라이언 싱어의 귀환이 왜 반가울 수밖에 없는지 살펴봤다. 뉴욕과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월드 프리미어 행사장에선 휴 잭맨을 비롯한 엑스맨의 주역들을 만났다.

5월14일 싱가포르의 오차드 로드. 휴대폰의 날씨 어플을 작동시키니 현재 기온이 33도라고 일러준다. 시차적응이 필요 없어 좋아했건만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후와 정면으로 대결할 판국이었다. 이날 오후 싱가포르 쇼 시어터 리도(SHAW THEATRES LIDO)에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이하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블루카펫 행사가 열렸다. ‘X-MEN’ 글자가 선명하게 박힌 푸른색 카펫이 쇼 시어터 리도 주위로 빙 둘러쳐졌고, 팬들 및 아시아 각국 기자들이 배우들의 입장을 땀나게 기다렸다. 해가 뉘엿 기울고 시침이 7을 가리켰을 때, 그러니까 열심히 부채질을 한지 두 시간이 지났을 때 “드디어 휴 잭맨이 블루카펫 입구에 도착했다”는 행사 진행자의 안내 멘트가 울려 퍼졌다.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휴 잭맨, 피터 딘클리지, 판빙빙 세 배우가 차례로 블루카펫을 밟자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듯 팬들은 스타와의 셀카 찍기 모드로 돌입했다. 특급 매너를 장착한 세 배우는 달팽이의 속도로 블루카펫을 전진하며 팬들의 호응에 화답했다. 그리고 영화 상영이 끝난 늦은 밤, 할리우드 스타를 향한 함성은 영화에 대한 탄성으로 바뀌어 있었다.

과거로, 현재로, 그리고 바뀐 과거가 낳은 새로운 현재로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7번째 <엑스맨> 시리즈다. 어느덧 <엑스맨>도 장수 시리즈 축에 속하게 됐다. 그사이 시리즈는 몇번의 부침을 겪었다. 슈퍼히어로 무비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엑스맨>(2000), <엑스맨2>(2003) 이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시리즈에서 손을 뗐다. 이후 개봉한 브렛 래트너의 <엑스맨: 최후의 전쟁>(2006), 개빈 후드의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은 평범한 킬링타임용 블록버스터영화였다. 돌연변이들에게 다시금 우리의 애정을 쏟게 만든 작품은 브라이언 싱어가 제작하고 매튜 본이 연출한 프리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였다. <엑스맨> 시리즈의 장수 캐릭터인 울버린 이야기를 따로 떼어내 만든 <더 울버린>(2013)은 시리즈의 쉼표 같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브라이언 싱어가 돌아왔다. 그가 11년 만에 돌아와 만든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1편과 2편에 대한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매그니토가 펜타곤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장면은 <엑스맨2>의 플라스틱 감옥 장면을 자동으로 연상시킨다. 매그니토와 프로페서X가 체스를 두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브라이언 싱어의 무심한 듯 시크한 자기복제는 초창기 <엑스맨> 시리즈 팬들에게 소소한 재미와 감동을 안겨준다. 또한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의외로 유머러스하다(존 F. 케네디가 실은 돌연변이였다니!). 그 유머, 그 여유가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와 이전의 <엑스맨> 시리즈를 구분짓는다.

동시에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징검다리 삼아 만든 <엑스맨> 시리즈의 총결산 같은 작품이다. 브라이언 싱어는 오리지널 시리즈의 캐릭터와 프리퀄의 캐릭터를 총출동시켜 한 세대의 이야기를 매듭지으려 한다. 캐릭터들의 만남은 시간여행이라는 장치를 통해 실현된다.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마블 코믹스 <언캐니 엑스맨> 시리즈 중에서 과거와 미래의 엑스맨들이 만나는 이야기인 크리스 클레어몬트의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참고해 만들어졌다. 과거를 통해 미래의 운명을 바꾼다는 설정은 낯설지 않은데,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각본가이자 제작자인 사이먼 킨버그는 시간여행 이야기를 풀기 위해 “<백 투 더 퓨처> <백 투 더 퓨처2> <터미네이터> <터미네이터2> 같은 영화들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50년의 시차를 두고 과거와 미래를 오간다. 2023년, 세상은 온통 잿빛이다. 돌연변이들을 멸종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로봇 센티넬이 종말의 시계를 앞당겼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적으로 맞섰던 프로페서X(패트릭 스튜어트)와 매그니토(이안 매켈런)는 힘을 합쳐 인류를 구원할 방도를 찾는다. 센티넬이 제작된 1973년으로 돌아가 닥터 트라스크(피터 딘클리지)의 센티넬 개발을 멈추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다. 1973년에 당도한 울버린(휴 잭맨)은 미래에서 온 메신저가 되어 젊은 프로페서X(찰스, 제임스 맥어보이)와 젊은 매그니토(에릭, 마이클 파스빈더)를 만난다.

물량 공세, 그 이상의 캐릭터

악당의 힘이 세진 건지, 슈퍼히어로의 힘이 약해진 건지, 슈퍼히어로들이 떼로 뭉쳐 다니는 게 요즘의 유행이다.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역시 캐릭터 물량 공세를 펼친다. 사실 <엑스맨> 시리즈만큼 풍부하게 캐릭터를 활용할 수 있는 작품도 드물다. 돌연변이 한명한명이 모두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라서 돌연변이 캐릭터 누구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물량 공세는 결과적으로 성공한 듯 보인다. 브라이언 싱어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 능숙하게 캐릭터를 조율한다. 캐릭터의 향연이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캐릭터 각각의 개성은 살리고 관계는 복잡하게 엮어버리는 방식으로. <엑스맨> <엑스맨2>를 필두로 한 오리지널 시리즈가 인간과 돌연변이의 대립구도를 부각시켰다면,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돌연변이와 돌연변이의 대립을 전면에 내세웠다.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그 둘을 아우르면서 돌연변이 개인의 고뇌속으로 좀더 깊이 들어간다. 두 다리로 걷는 찰스의 등장 신, 발가벗겨지듯 대중 앞에서 제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미스틱(제니퍼 로렌스)의 부상 신은 영화가 생략한 시간을 상징적으로 메우는 동시에 캐릭터의 감정 상태를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찰스와 에릭의 적대적/협력적 관계, 찰스와 에릭과 미스틱의 삼각관계는 이런 개인의 고뇌와 맞물려 더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영화를 끌고 가는 것은 프리퀄의 캐릭터들이지만,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인물들은 따로 있다. 빛의 속도로 시간을 달리는 소년인 퀵실버(에반 피터스)는 화려하게 신고식을 치르며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 퀵실버의 속도로 시간을 늘려놓은 펜타곤 식당 장면은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압도적인 한 장면이 되기에 충분하다. 오리지널 시리즈의 캐릭터들인 키티(엘렌 페이지), 스톰(할리 베리), 아이스맨(숀 애시모어)의 활약상은 물론 닥터 진(팜케 얀센), 스콧(제임스 마스던)의 깜짝 등장도 반갑기 그지없다. 미래 시제의 이야기가 과거의 이야기보다 상대적으로 적어 비숍(오마 사이), 블링크(판빙빙), 워패스(부부 스튜어트) 등의 활약이 미비하긴 하지만 영화는 조연 캐릭터들을 허투루 소비하지 않으려고 한다. 제작진 입장에선 배우들 스케줄 맞추는 게 “마치 지그소 퍼즐을 맞추는 것 같았다”(사이먼 킨버그)지만, 관객으로선 이보다 더한 상차림을 쉽게 받아보지 못했을 거다.

돌연변이는 위험한 존재인가, 돌연변이는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있는가, 돌연변이는 인류의 미래인가. <엑스맨> 시리즈가 지금까지 던져온 질문들을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역시 끌어안고 있다. 브라이언 싱어는 이번 영화에서 확실히 긍정의 답을 제시한다. 공존의 가치를 깨닫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희망쪽으로 한 걸음 더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돌연변이들을 향한 브라이언 싱어의 애정 고백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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