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2014-07-22
글 : 주성철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혹성탈출> 3부작의 완결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최초의 <혹성탈출>(1968) 이후 6편까지 만들어지고, 팀 버튼의 <혹성탈출>(2001)을 거쳐 루퍼트 와이어트의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이 만들어지기까지, 이 장구한 시리즈는 ‘진화한 유인원’과 ‘멸종 위기의 인류’의 거대한 대결을 그려왔다. 전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 ‘시미안 플루’가 세상을 휩쓴 뒤 10년, 급속도로 진화한 유인원들은 도시를 떠나 그들만의 사회를 이루었다. 유인원과 인류는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도 될 테지만, 전력을 필요로 하는 인간과 그 인간들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일부 유인원의 존재는 필연적인 전쟁을 불러일으킨다. 루퍼트 와이어트로부터 메가폰을 넘겨받은 맷 리브스를 비롯해 많은 것이 뒤바뀐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을 전격 해부하고, 개봉에 맞춰 한국을 찾은 ‘웨타 디지털’의 한국인 스탭 임창의, 최종진과 만나 시각효과에 관한 얘기도 들었다.

유인원이 드디어 총을 들었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3부작의 모양새를 띤 새로운 <혹성탈출> 시리즈의 중간 기착지다. 또한 이번 3부작이 1968년에 만들어진 프랭클린 J. 샤프너의 첫 번째 <혹성탈출>의 프리퀄처럼 만들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첫 번째 <혹성탈출>에서 테일러(찰턴 헤스턴)는 이름 모를 행성에 불시착한 뒤, 그곳에 사는 유인원들이 언어를 쓰는 것은 물론 마치 인간처럼 멀끔한 옷을 입은 채 빨대로 음료수를 마시거나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들만의 정부를 구성한 것은 물론 군사조직과 과학기술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한 것일까. 지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아버지(존 리스고)의 알츠하이머 치료약 개발을 위해 유인원을 이용한 임상실험에 몰두했던 과학자 윌(제임스 프랭코)에 의해 어린 시저(앤디 서키스)가 태어났고, 그가 바로 1968년 작품에 등장하는 문명화된 유인원들의 선조쯤될 것이다.

물론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에 등장하는 유인원들은 구석기 시대 ‘도구의 인간’ 수준이다. 그럼에도 그 양상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는 것은 인상적이다. 영화 초반부, 유인원들은 리더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이동하고 작살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등 도구를 이용한 수렵에 나선다. 한편 그들의 거주지에서는 모리스(카린 코노발)가 선생님이 되어 어린 유인원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인간으로부터 책도 건네받는다. 그런 그들이 코바(토비 켑벨)로 인해 총까지 들게 됐으니 1968년 작품이 설계했던 유인원들의 문명사회를 일구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물론 그것은 다음 3편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보다 선명해질 일이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이 3편의 거대한 전쟁을 향한 예고편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유인원 문명이 시작하는 영화’

치명적인 바이러스 ‘시미안 플루’가 세상을 휩쓴 뒤 10년, 급속도로 진화한 유인원들은 도시를 떠나 그들만의 자급자족 사회를 이뤘다. 전편에서 임상실험을 통해 태어난 시저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존재가 되어 유인원들을 이끌고 있다. 또한 한 가정의 가장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한편 시미안 플루로부터 살아남은 극소수의 인간들은 지구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생존자 공동체의 리더 드레이퍼스(게리 올드먼)와 건축가 출신의 조력자 말콤(제이슨 클라크)은 다시 인간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전력 부족으로 위기에 처하자, 말콤은 엘리(케리 러셀)와 아들 알렉산더(코디 스밋 맥피)를 포함한 일행을 이끌고 댐을 찾아나선다. 댐은 유인원들의 거주지 근처에 있기에 말콤은 시저와의 평화로운 협상을 꿈꾸는데, 인간들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는 유인원 코바는 마찬가지로 평화를 원하는 시저와 대립한다. 그렇게 지난 10년 동안 서로의 존재를 잊고 있던 인간과 유인원, 두 종족이 다시 마주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다.

<혹성탈출> 시리즈의 원작은 1963년 프랑스어로 발간된 피에르 불의 소설 <유인원들의 행성>이다(피에르 불은 <콰이강의 다리>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유인원(ape)을 원숭이(monkey)라 부르면 안 되는 것처럼(영장류 중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등 유인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원숭이라 부른다) 프랭클린 J. 샤프너의 1968년작 영화 <혹성탈출>을 ‘원작’이라 칭하면 안 된다. 원작이 던져준 충격은 바로 ‘인간 없는 세상’에 대한 묘사였다. 전편의 루퍼트 와이어트에 이어 메가폰을 잡은, <혹성탈출> 시리즈의 오랜 팬이라는 맷 리브스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멸망 이후의 지구를 그린 영화’가 아니라 그 자체로 ‘유인원 문명이 시작하는 영화’라고 말한다. 전편에서 시저는 유인원들을 이끌고 샌프란시스코 도심 바깥에 있는 삼나무 숲인 뮤어 우즈로 갔고, 바로 거기서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리고 전편에서는 시저에게만 적용됐던 ‘진화의 시작’이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초반부에는 종족 전체로 확대되어 ‘범유인원적’으로 묘사된다. 사실상 초반 20여분은 인간들이 생존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다. 더구나 그 초기 단계의 진화가 수렵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언어 또한 진화 중이다. 물론 10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배워나가는 단계이기에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유인원의 발성과 인간에 가까운 제스처, 수화, 그리고 최소한의 인간의 언어를 한데 섞어 소통한다.

그처럼 ‘본격적’인 무언가를 기대한 팬들로서는 다소 아쉽게 느껴질 만큼 맷 리브스는 중간 연결편 혹은 환승하는 시리즈로서의 디테일을 다지는 데 충실했다. 그러다보니 지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성공적인 리부트에 열광했던 팬들로서는 이번 영화에서 유인원들이 착실하게 3편을 준비하는 만큼, 폭스사가 현재의 2편을 위해 충분한 준비기간을 원했던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의 요구를 들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전쟁 발발 직전의 위기감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에서 인간과 유인원, 서로 다른 두 진영은 말콤과 시저의 신뢰 아래 살얼음판을 걷는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하는데, 말콤이 협상을 위해 유인원의 거주지로 다시 찾아가는 모습은 마치 <아바타>(2009)를 연상시킨다. 물론 말콤은 아바타처럼 ‘트로이의 목마’ 같은 위장전술을 쓰진 않는다. <아바타>에서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나먼 행성 판도라에서 대체 자원을 채굴하기 시작한 인간들은, 자원 채굴을 막으려는 나비족의 거주지로 아바타(나비족의 외형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하여 원격조종이 가능한 새로운 생명체) 제이크 설리(샘 워딩턴)를 보냈었다. 하지만 인내심이 부족한 인간들로 인해(언제나 그렇듯이!) 빚어진 판도라와 지구의 대결처럼,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의 평화도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차이를 인정하고 경계를 초월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아바타>와의 차이점이라면, ‘새로운 대상에 대한 두려움’보다 ‘익숙한 존재에 대한 고정관념’ 자체를 극복하지 못한다. 평화를 방해하는 것은 바로 과거의 기억이다. 인간들은 진화한 유인원들이 말(言)을 하고 말(馬)을 타는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고(결코 인간과 동급일 수 없다는 우월감을 깨지 못하고), 유인원들 또한 자신을 가두고 학대했던 인간들의 선의를 끝까지 믿지 못한다(세상에 착한 인간이란 없다).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동태를 살피기 위해 인간들의 거주지에 스파이처럼 침투했다가 빠져나오는, 과거 인간들의 실험대상으로 이용되어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던 코바의 모습이다. 총을 든 인간들과 맞닥뜨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충분히 완력으로 대항할 수 있음에도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우스꽝스럽게 아양을 떨어 위기를 모면한다. 이미 그때부터 시저가 몇번이나 강조한 ‘신뢰’는 휴지 조각이 될 것임이 드러난다. 그렇게 인간과 유인원은 누가 지구를 지배하는 종이 될 것인가를 두고 전쟁 직전의 위기에 이른다.

그러기에 시저의 존재는 더욱 빛난다. 영화 속에서 인간과 유인원, 모두를 통틀어 가장 이성적이고 냉철하며 위엄 넘치는 캐릭터다. 시쳇말로 모두가 원하는 지도자상이랄까. 전편에서 이웃집 남자와 시비가 붙은 윌의 아버지를 본능적으로 보호하려는 과정에서 인간을 공격하여 보호시설로 보내졌고, 결국 자유와 존엄을 찾아 유인원 무리를 이끌고 도시를 떠났었다.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그가 내세운 유인원 종족의 제1원칙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는 구호는, 인간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강력한 반전(反戰)의 메시지다. 더불어 그는 영화 속에서 가장 멀리 내다보는 혜안을 지닌 거의 유일한 캐릭터다. 인간과의 충돌을 원하지 않는 시저가 불만을 품은 코바를 향해 말한다. “인간들과 전쟁을 하게 되면 우리는 그동안 이룬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집과 가족, 그리고 미래.” 그런 그가 인간들을 향해 “다시는 오지 마라!”라고 일갈할 때 느끼게 되는 카타르시스는 통쾌하면서도 묘하다. 전편이 그러했듯 인간과 유인원 사이에서의 시선과 감정이입의 역전 효과랄까.

맷 리브스는 시저를 보면서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의 로렌스(피터 오툴)를 떠올렸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시저는 단순히 유인원 무리의 리더, 원시부족을 이끄는 족장 수준을 넘어선다. 우유부단하게 묘사되는 생존자 공동체의 리더 드레이퍼스와 비교해도 그렇다. 압권은 바로 전편에서 살던 10년 전의 집을 찾아 과거의 사진 액자를 들여다보는 장면이다. 시미안 플루로 아내를 잃은 말콤의 기억, 역시 혼란스런 가운데 딸을 잃은 엘리의 기억 정도를 제외하면 영화 속에서 과거를 반추하는 인간은 전혀 없다. 시저가 사진을 보며 그저 윌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뇌기능 개선 실험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만든 그를 탓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종교가 없는 유인원 세계에서 윌을 향한 그리움은 묘한 느낌을 준다) 인간과 유인원을 통틀어 ‘역사’를 고민하는 유일한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편에서 보게 될 것들은…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의 원제는 <Dawn of the Planet of the Apes>로 마치 조지 로메로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의 속편인 <시체들의 새벽>(Dawn of the Dead, 1978)을 본뜬 느낌이다(이 또한 3부작의 가운데 편이다). 더구나 과거 <혹성탈출>과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은 ‘혁명의 해’ 1968년 같은 해에 만들어졌을뿐더러 각각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로서의 유인원과 좀비를 등장시켰다는 흥미로운 공통점도 있다(여기에 1968년 만들어진 또 다른 한편을 더한다면, 역시 같은 의미의 존재로 컴퓨터 HAL을 등장시킨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도 있다). 그러니까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다음의 완결편으로 나아가는 ‘새벽’ 혹은 ‘서막’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5편인(그냥 올드팬들에게는 ‘과거 3부작의 2편’이라고 말해야 더 편한)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1980) 혹은 <반지의 제왕2: 두개의 탑>(2002)처럼 다음 완결편의 거대한 전쟁을 암시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되는 것. 이번 시리즈를 향한 아쉬움은 할리우드에 만연한 바로 그 ‘3부작 강박증’에 기인할 것이다. 제목 속의 ‘반격’은 바로 다음 3편에서야 이뤄지니까.

어쨌건 다음 3편을 기다리며 예상하는 재미는 있다. 변함없는 시저의 카리스마는 더 말할 필요가 없어 보이고, 진화한 유인원들 앞에 두려움과 적대감을 동시에 지닌 드레이퍼스 또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3편에서 가장 아쉬운 캐릭터라고 입을 모으지만 <다크 나이트> 시리즈를 비롯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2) 등에서 보여준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가 존재감 없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2세’들의 대결도 있다. 맷 리브스의 이전작 <렛미인>(2010)에 출연했던, 말콤의 아들 알렉산더로 나온 코디 스밋 맥피는 다음 시리즈를 위해 아껴둔 느낌이고, 아버지보다 코바를 더 믿으며 질풍노도의 2편을 보낸 시저의 사춘기 아들 또한 마찬가지다. 궁금한 건 또 있다. 알렉산더로부터 책을 건네받은 오랑우탄 모리스가 얼마나 더 위대한 교육자가 될지도.

앤디 서키스.

시저에게 과연 오스카의 영광이?

시저를 완성한 기술만큼이나 그를 연기한 디지털 액터 앤디 서키스의 공로도 대단하다. 이제 그는 ‘골룸’이 아니라 완벽하게 ‘시저’로 재탄생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장상 부문이 따로 신설된 것은 1982년이지만, 그보다 13년 전인 1969년 <혹성탈출>의 특수분장을 맡은 존 챔버스의 공로를 인정해 분장부문 특별상을 마련하기도 했었다. 말하자면 앤디 서키스가 아카데미 ‘모션 캡처’ 부문의(진짜 신설되기는 힘들겠지만 특별상이라도) 수상자가 되어야 한다는 팬들의 바람은 지금도 유효하다. 더불어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거의 실내에서 촬영한 전편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은 야외 촬영 분량을 자랑한다. 복잡한 퍼포먼스 캡처와 네이티브 3D 촬영(지난 1편은 2D)을 시도하면서도 영화 속 숲과 댐, 그리고 유인원들의 거주지를 묘사하기 위해 거의 90% 가까이 밴쿠버의 숲과 뉴올리언스 외곽에서 촬영한 것. 앤디 서키스를 비롯한 퍼포먼스 캡처 전문 배우들의 공로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강한 설득력을 얻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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