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주년을 앞두고 아내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고 아내를 찾아나선 남편은 전 국민이 의심하는 용의자로 몰린다. 결혼생활의 어두운 단면과 미디어 문화의 부조리 사이에서 사건은 이상하게 흘러간다. 지난 9월 뉴욕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데이비드 핀처의 신작 <나를 찾아줘>는 현재 2주 연속 북미 박스오피스 정상을 질주 중이다. 종종 베스트셀러 원작과의 승부에서 자신의 장기를 발휘해온 데이비드 핀처의 재능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길리언 플린의 원작과의 비교와 함께 <나를 찾아줘>를 분석하고, 뉴욕 시사회장에서 만난 데이비드 핀처, 벤 애플렉, 로저먼드 파이크와의 인터뷰도 전한다.
척 팔라닉의 원작을 영화화한 데이비드 핀처의 <파이트 클럽>(1999)에서 타일러(브래드 피트)는 이렇게 말한다. “파이트 클럽의 첫 번째 규칙은 파이트 클럽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규칙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나를 찾아줘>를 통해 데이비드 핀처가 얘기하고 싶은 것도 그것이다. ‘미국 중산층 부부의 규칙은 결혼생활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이트 클럽>에서 타일러가 (지방흡입수술로부터 나오는 부자 아주머니들의 더러운 지방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고급 미용비누와 <나를 찾아줘>에서 주인공들이 오직 카메라 앞에서만 만들어내는 고급 미소도 결국은 하나다. 그 비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안다면 결코 쓰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처럼, 그 미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안다면 사람들은 결혼에 대한 회의로 빠져들 것이다. 육체의 고통과 강박증적인 불안감으로 지탱되는, 자본주의의 찌꺼기처럼 느껴지는 파이트 클럽과 <나를 찾아줘>의 뒤틀린 가정이 기묘하게 하나로 만나는 듯한 이 서늘한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은 뭘까.
비밀의 비밀의 비밀을…
전직 신문기자 닉(벤 애플렉)과 그의 아내 에이미(로저먼드 파이크)는 경기 악화로 뉴욕에서 중서부 미주리주로 이사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더없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혼 5주년 기념일에 에이미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유년 시절 어린이 동화 시리즈 <어메이징 에이미>의 실제 여주인공이었던 유명인사 아내가 사라지자, 세상은 떠들썩해지고 남편 닉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게다가 에이미가 결혼기념일 선물로 숨겨뒀던 편지와 함께 곳곳에서 드러나는 단서들로 인해 닉은 궁지에 몰린다. 그렇게 생사를 알 수 없는 에이미를 찾으려는 수사가 시작되고, 미디어는 화제에 목말라하는 대중을 위해 앞다투어 선정적으로 사건을 보도한다. 마치 <트루먼 쇼>(1998)의 트루먼(짐 캐리)처럼 닉의 일거수일투족이 미디어를 장식한다. 그런데 처음에는 재산과 보험금 등을 노린 전형적인 가정범죄의 특징을 띠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속에는 예상치 못한 강력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처음에는 2011년 시작된(현재 시즌4 방영 중) 미드 <홈랜드>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작전 중 실종되어 전사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해병 니콜라스 브로디(데미안 루이스)가 8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구출되어 돌아오고, 그가 구출되기 전에 자신의 정보원으로부터 니콜라스에 관한 정보를 받았던 CIA 요원 캐리(클레어 데인즈)는 그가 미국을 공격하기 위해 돌아왔다고 주장하며 그를 감시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니콜라스의 아내는 이미 니콜라스의 친구와 사귀고 있는 중이었다. 남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새로운 사랑이 싹텄던 것. 하지만 졸지에 미국 사회의 영웅이 된 니콜라스와 그의 아내는 미디어 앞에서 ‘힘겨운 시간을 이겨낸 잉꼬부부’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를 찾아줘>는 그 관계의 밑바닥까지 파고든다. 사건을 따라가는 관객도 ‘닉은 누구인가?’, ‘에이미는 누구인가?’ 계속 질문하게 만든다.
그 비밀과 반전의 연쇄구조는 마치 데이비드 핀처의 전작 <패닉 룸>(2002)을 떠올리게도 한다. 뉴욕 맨해튼 웨스트사이트 시내에 있는 커다랗고 오래된 저택의 3층 침실 옆 ‘패닉 룸’은 중세의 성채에 존재했던 귀족들의 피난처를 현대적으로 바꾼 것이다. 밖에서 결코 뚫고 들어올 수 없는 강철 문으로 이뤄진 패닉 룸은 침입자들로부터 주인을 보호한다. 독립된 환기구와 전기, 그리고 물 등의 간단한 생활용품과 독립된 전화선이 설치돼 있으며, 완벽한 안전을 위해 잠금장치가 되어 있다. 그런데 모두가 잠든 한밤중 저택 안으로 3명의 강도가 침입한다. 강도 중 한명(포레스트 휘태커)은 전 주인이 숨겨둔 수백만달러의 돈이 패닉 룸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패닉 룸의 설계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나를 찾아줘>의 이야기 구조는 강력한 비밀이 또 다른 비밀로 이어지는 거울의 방같기도 하고, 닉과 에이미가 설계한 견고한 패닉 룸처럼도 느껴진다. 영화가 시작하면 관객은 닉의 쌍둥이 여동생인 마고(캐리 쿤)의 입장에 서서 쌍둥이 오빠 닉을 동정하며, 그의 누명을 함께 벗겨주고픈 수사관의 입장이 된다. 하지만 마고의 시선을 빌려 사건에 개입하던 관객은 닉이 마고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비밀이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 혼란스러워진다.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변곡점이다. 스릴러 장르에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하고자 했던 관객의 의지를 그처럼 한번 꺾어놓는다. <패닉 룸>에서 흥미로운 것은 3명의 침입자들이 하나의 목적 아래 성향이 서로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누군가는 폭력을 싫어하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한시도 손에서 총을 놓지 않으며, 그렇게 사사건건 부딪힌다. 비워져 있을 거라고 생각한 집에 들어왔다가 누군가(조디 포스터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연기한 모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치 체스 게임에서 수가 막혀버린 상황과 맞닥뜨린 것이다.
동시에 관객은 이 게임이 누군가에게 조종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관객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비중이 적든 크든 간에 사건에 대해 일말의 진실을 알고 있는 누군가를 배치해야 하는데 데이비드 핀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심지어 후반부에 이르러 영화에서 가장 균형감을 갖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수사관 론다 보니(킴 디킨스)가 사건에 이의를 제기하려 하는 순간에도 철저하게 무시당한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단지 두 부부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가 공모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결국 관객은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결코 사건에 개입할 수 없는, 집안의 말 못하는 고양이 같은 처지가 된다. 그런데 그 고양이는 사건의 진실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 뻔하기에 영화의 결을 풍부하게 만드는 중요한 장치다. 어쨌건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여기서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는 것은 결국 데이비드 핀처의 본령이 스릴러라는 점이다. 언제나 ‘이번에는 관객을 어떻게 따돌려볼까’ 하는 것만 고민하는 감독 말이다.
원작소설 vs 영화
데이비드 핀처가 유명 원작과의 승부를 즐기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에이리언3>(1992)로 데뷔한 이래 척 팔라닉 원작 <파이트 클럽>, 로버트 그레이스미스 원작 <조디악>(2007), F.스콧 피츠제럴드 원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스티그 라르손 원작 <밀레니엄>(2011) 등 원작의 영화화 과정에서 자신의 지분을 그처럼 알뜰하게 챙기는 감독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각본을 직접 쓰지 않는 대신 언제나 할리우드의 1급 시나리오작가들과 일해왔다. <소셜 네트워크>의 각본을 맡은 아론 소킨은 말할 것도 없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에릭 로스는 <포레스트 검프>(1994), <인사이더>(1999), <뮌헨>(2005) 등을 썼으며 <밀레니엄>의 각본을 맡은 스티븐 자일리언은 <쉰들러 리스트>(1993), <갱스 오브 뉴욕>(2002), <머니볼>(2011) 등을 썼던 작가 겸 감독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를 찾아줘>는 원작자 길리언 플린이 직접 각본까지 맡았다는 점에서 가장 다르다. 원작의 영화화를 즐기는 핀처가 원작자에게 각본까지 맡긴 첫 번째 사례라는 것. 원작이 나온 해가 2012년이기에 영화화하기까지 시간이 가장 짧게 걸린 작품이라는 것도 ‘최초’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껏 핀처가 영화화한 원작 중 가장 ‘두꺼운’ 작품이라는 것도 일종의 최초라 할 수 있다. 물론 <밀레니엄>이 더 방대하지만 ‘영화화한 분량’이라는 관점에서 <나를 찾아줘>가 훨씬 더 압축적이다.
길리언 플린에게 시나리오를 맡긴 것은 아마도 원작의 독창적인 서술 기법 때문일 것이다. 섬세한 심리묘사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전개, 그리고 결혼과 미디어 사이에서 사생활 노출 등 여주인공의 심리를 충실하게 따라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아직 출간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여성 원작자 길리언 플린에게 그대로 각본을 맡긴 것은 꽤 지혜로운 일이다. 스릴러 장르라는 점에서 이전 데이비드 핀처 작품들과 유사하지만, 사건 전개의 묘미와 별개로 내레이션 등 캐릭터에 대한 심리묘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원작을 영화화한다면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맡았으면 좋겠다. 위트 등 나의 부족한 블랙코미디적인 감각을 그가 영화로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생각해오던 길리언 플린은 각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 사실과 맞물려, 완성된 영화와 원작이 시작과 엔딩을 똑같이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아내의 뒤통수를 떠올리면서 “무슨 생각하고 있어?”라고 질문하며(결혼생활 중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시작했던 영화와 원작은 결국 같은 길을 걷는다. ‘에이미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고나 할까. 그저 스산하게 느껴지는 그 엔딩이 에이미의 지난 시간을 거치며 날카롭게 날아와 박힌다. 다시 그 도입부의 질문으로 돌아가 엔딩에 이르면,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라서 무서운 게 아니라, 그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서운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이쯤에서 <밀레니엄>과 <나를 찾아줘>의 엔딩을 비교해보라. <에이리언3>에서 영화 사상 최강의 여전사 리플리(시고니 위버)를 불구덩이에 던져버린 것을 시작으로, 데이비드 핀처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파격적인 엔딩 장면을 연출해온 감독이었다. 역시 팬들 사이에서 가장 논쟁적인 엔딩은 <쎄븐>(1995)에서 밀스(브래드 피트)에게 마지막에 배달된 택배박스에 담겨있던 것이 진짜 트레이시(기네스 팰트로)의 머리였냐는 것이고, <파이트 클럽>에서 무너져내리는 빌딩숲 장면은 또 어땠나. 그에 비하면 가장 정적이면서도 더욱 둔탁하게 후려치는 엔딩의 <밀레니엄>과 <나를 찾아줘>는 스릴러 장르라는 외피를 두른 핀처의 진짜 ‘성인영화’다. 그는 전작 <밀레니엄>을 만들면서 ‘어른들을 위한 <해리 포터>, 성인용 프랜차이즈’를 만들고 싶은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마치 속편을 암시하는 것처럼 끝낸 <밀레니엄>의 속편을 만들지 않아 그 진짜 의도가 궁금했지만, 어쩌면 그는 <나를 찾아줘>를 통해 그 프랜차이즈 약속을 지킨 셈이다.
피가 난무하지 않는 서스펜스
원작자 길리언 플린의 작품세계
무려 10년 동안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작가로 변신한 길리언 플린의 작품은, 현재 국내에 <나를 찾아줘>를 비롯해 <다크 플레이스> <몸을 긋는 소녀> 등 총 3편이 출간돼 있다. 데뷔작 <몸을 긋는 소녀>는 살인사건 취재차 12년 만에 고향을 찾은 여주인공 카밀이 마을 주민들을 인터뷰하면서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에 서서히 다가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그 고향 또한 <나를 찾아줘>처럼 미주리주의 한 작은 마을이다. <나를 찾아줘>가 화려한 도시 뉴욕을 떠난 에이미의 결핍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그 공간적 배경은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소설 <다크 플레이스> 또한 캔자스주의 한적한 농장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30대 젊은 엄마와 두딸이 무자비하게 난자당한 피투성이 시신으로 발견되고, 유일한 생존자인 일곱살 리비는 오빠 벤을 살인범으로 지목한다. <나를 찾아줘>처럼 가장 가까웠던 상대가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는 상황을 그렸다. 이처럼 모두 영화화 판권이 팔린 세편의 작품을 통해 길리언 플린은 단숨에 주목받는 스릴러 작가로 올라섰다. 특히 <나를 찾아줘>는 ‘아마존’ 종합 1위에 오르며 그 이름을 확고히 했다. ‘피가 난무하지 않는 서스펜스를 쓸 수 있는 작가’라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평가와 더불어 “나는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철저히 고립시키며 외로움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탐구하고 싶었다. 내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실패자와 왕따들을 사랑한다”는 ‘작가의 변’이 그 작품세계의 핵심을 요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