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적으로 어두운 작품인데, 특히 미디어에 대한 반감이 느껴진다.
=데이비드 핀처_글쎄, 미디어 전체에 대한 것은 아니다. 사실상 극소수를 지칭한다. 남의 불행을 뉴스 거리로 여기는 일부 매체들 말이다.
벤 애플렉_재미있는 것은 원작에서 결혼에 대해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는 거다. 보통 우리가 자신이나 다른 이들의 관계에서 알고 싶지 않아 하고 보고 싶지도 않은 점을 말이다. 이렇게 어려운 질문을 던지면 때로는 추악한 대답을 듣게 된다. 로저먼드는 이런 불편한 상황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작자 길리언 플린과 감독 데이비드 핀처의 비전을 사실적으로 담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로저먼드 파이크_영화는 결혼을 잔인하게 해부한다. 즐거웠던 연애 시절부터 그 후까지. 사실 모든 것은 친밀감(intimacy)에서 기인한다. 거기서 아름다움이 나올 수도 있고, 때로는 기만과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도 나올 수 있다. 누군가를 너무 잘 알면 크고 작은 나사를 어떻게 조일 수 있는지도 거의 알 수 있지 않나. 이런 느낌을 바탕으로 초창기의 로맨틱한 장면에서부터 대화가 거의 없는 권태기의 관계까지 함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중심 인물들의 감정의 진폭이 큰 영화다. 배우들과의 소통은 어땠나.
=데이비드 핀처_로저먼드의 경우, 출연한 영화를 지난 10여년간 여러 편 봤는데도 정확히 그녀가 어떤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대부분 배우들을 보면 이들이 어떤 능력을 가진 배우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데 로저먼드는 예외였다. 그런 면에서 상당히 흥미를 느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 3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는데, 형제 자매가 있냐는 질문에 외동딸이라고 대답하더라. 내가 찾던 에이미가 바로 이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벤은 그때 딱히 다른 프로젝트가 없었던 데다(웃음) 원작의 팬이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잘 통했다. 개인적으로 ‘완벽한 캐스팅’이라는 것을 잘 의심하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좀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도 ‘완벽한 캐스팅이라서 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 하고 생각했다.
벤 애플렉_혼자 댄스를 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고나 할까. (웃음) 늘 자율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서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안심하게 해줬다. 현역 최고 감독 중 하나라고 믿는다. 대부분 좋은 감독들은 배우와 합이 잘 맞거나, 아니면 영화에 지식이 많은 부류로 나뉜다. 데이비드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감독이다. 배우와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이들에게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끌어내면서, 테크니컬한 면까지 영화 전반에 대한 지식이 뛰어나니까. 엔지니어의 마인드를 가졌지만 아티스트의 미각을 가졌다고나 할까. 솔직히 그런 감독이 실존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 또한 감독을 겸하고 있기에 그런 두 장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부럽다.
로저먼드 파이크_배우에게 숨쉴 수 있는 공간을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동시에 모든 것을 보는 능력도 놀라웠다. 한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내 뒤에서 내가 보는 시점을 촬영했는데, 대사 하나 없이 내 뒤통수밖에 보이지 않는 데도 얼굴 표정에 대한 잘못된 점을 정확하게 짚어내더라. 덕분에 무성영화처럼 말없는 장면에서의 표현력을 많이 배운 것 같다. 얼마 전에 내가 출연한 또 다른 영화 시사회 때문에 런던에 갔는데, 시사회 내내 ‘데이비드였으면 가만두지 않았을 장면’들이 많아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웃음)
-음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접근했나.
=데이비드 핀처_<소셜 네트워크>의 경우 존 휴스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신시사이저를 많이 사용했지만, 음악을 작곡한 장본인은 트렌트 레즈너였기에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다. <나를 찾아줘> 역시 그에게 의뢰했을 때 그는 귀에서 귀까지 큼지막한 미소를 지었다. 나에게 “뭐가 보이냐”고 묻기에 “고급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을 때 백그라운드에 틀어놓을 것 같은, 계속 반복되는 은은하고 잔잔하며 안심시켜주는 듯한 음악”이라고 말하니 한참을 웃더라. (웃음) 그러고 나서 가져온 음악이 바로 이 음악들이다.
-조작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연기의 가닥을 잡았는지.
=벤 애플렉_닉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다양한 반응이 있다. 캐릭터가 변하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관객이 그를 보는 시선도 점점 그를 알아가면서 변한다고 본다. 그리고 ‘나쁜 놈’이라고 단정지으면 연기하는 폭이 좁아지지 않나. 그래서 닉을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이 영화에 대해 남자와 여자 관객의 반응이 상반되는데, 한 여기자가 “나쁜 놈을 연기한 기분이 어떠냐”고 묻더라. 반면 남자들은 닉에 대해 “음… 그래” (동의하고 이해한다는 의미) 하고 한숨만 쉬었다. (웃음)
로저먼드 파이크_에이미는 영화 속 다양한 캐릭터들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연기하는 게 상당히 재미있었다. 하지만 초기에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절대로 이 캐릭터를 남자로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여성 관객은 내 말을 이해할 것 같은데, 에이미는 완전한 여성 캐릭터다. 게다가 영화에서 다른 시간대를 보여줄 때 몸무게의 변화도 있어야 했다. 각각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몸무게로 연기를 해야 했다. (웃음) 그런데 당시 벤은 배트맨이 되기 위해 준비 중이어서(2016년 개봉예정인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 V 슈퍼맨: 돈 오브 저스티스>), 후반부에 촬영한 샤워 장면에서는 배트맨과 촬영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웃음)
-당분간 연출을 자제하고 다른 감독들과 함께 작업하며 많이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데이비드 핀처와 함께 작업하며 어떤 것들을 발견했는지.
=벤 애플렉_지금 이 시점에서 내 경력에 대해 느낀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은 감독에게 달려 있다는 거다. 데이비드의 연락을 받았을 때 솔직히 너무 기뻐서 전화번호부가 시나리오라 해도 연기할 의향이 있었다. (웃음) 평소 존경하던 감독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내가 연출을 시작하기 전 늘 보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쎄븐>이다. 가장 완벽하게, 마치 스위스 시계처럼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렇게 영화를 만들까 늘 궁금했고, 함께 작업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소문과 달리 데이비드는 재미있고 나이스한 사람이더라. ‘악마’가 아니었다. (웃음)
-<나를 찾아줘>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비전’이 있다면.
=데이비드 핀처_거창하게 ‘비전’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웃음), 원작이 마음에 들긴 했어도 5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영화화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작업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소한 3개의 시리즈로 만들어야 원작을 살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직접 시나리오를 쓴 원작자 길리언 플린의 초고를 보고, 자신이 자식처럼 여겼을 많은 내용들을 과감하게 쳐낸 것을 보고 크게 감동했고, 나 또한 힘을 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