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한폭의 그림 같은 영화 <봄>
2014-11-19
글 : 윤혜지

1960년대, 당대 최고의 조각가 준구(박용우)는 불행히도 점점 몸이 마비되어간다. 준구의 아내 정숙(김서형)은 의욕을 잃은 남편의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어느 날, 정숙은 곤경에 처한 젊은 여인 민경(이유영)을 돕게 된다. 민경의 길게 뻗은 팔다리와 맑은 얼굴을 본 정숙은 민경을 준구에게 데려가고, 민경은 준구의 모델이 되어 함께 작업을 시작한다. 둘은 간만에 활력을 얻어 작업을 이어간다. 얼어붙은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던 세 사람은 자신들의 삶에도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민경의 노름꾼 남편(주영호)이 민경을 의심하고 설상가상 준구의 건강도 악화된다.

회화를 전공하고 미술감독으로 오랫동안 활동했던 조근현 감독은 장기를 살려 그림처럼 아름다운 화면을 만들어냈다. 촬영과 조명의 합이 좋다. 카메라는 인물을 정성스럽게 훑어내리고, 자연광에 가까운 빛의 쓰임도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고조시킨다. 영화의 주된 배경인 저수지와 길, 고택의 풍광도 고즈넉하고 운치 있다. 조상경 의상감독이 지은 시대 의상은 고풍스럽고 또 현대적인 멋까지 지녀 보는 이를 홀린다. 특히 한복과 양복이 어우러진 정숙의 의상이 눈에 띈다. 정교하고 조화로운 이미지에 한국적인 개성이 잘 살아 있다는 점을 근거로 2014 밀라노국제영화제에서 촬영상과 여우주연상(김서형)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도 호평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영화가 아름다워야 한다는 목적에만 충실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의상, 음악, 촬영, 조명까지 전부 아름답기 그지없으나 화면이 예쁜 것 이상으로 울림은 크지 않다. 예술가와 뮤즈, 조력자의 관계도에 심취한 나머지 주요 인물의 감정을 포함해 노름꾼 남편이나 식모 향숙 등 그 밖의 인물 설정도 지나치게 헐겁다. 자코메티의 추상적 조형과 그의 미의식을 신봉하던 관념적인 예술가 준구가 삶과 인간을 예찬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민경이 뿜어내는 활력에 감탄하고, 남편에게 폭행당한 민경의 얼굴을 불쌍히 여기긴 하지만 작업실 밖 현실세계에서 생활하는 민경을 본 적 없는 준구가 어째서 그녀에게 생의 의지를 얻게 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남편을 대단히 사랑하고 존경하면서도 그의 작업실에는 발 들이지 않는 정숙의 마음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영화 자체가 한폭의 그림이지만 그림 속 대상은 말 그대로 대상에만 머물고 있다는 인상이다. 봄의 생동은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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