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조용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강렬한…
2014-11-25
글 : 송경원
정리 : 박소미 (영화평론가)
사진 : 최성열
<표정들> 양시모 감독을 만화가 기선이 만나다
만화가 기선, 양시모 감독(왼쪽부터).

젊은이들의 고민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다. 꿈을 좇자니 배가 고프고, 현실을 따르자니 마음이 쓰리다. 양시모 감독의 <표정들>은 연극에 대한 열망을 간직한 청년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을 담았다. 자전적인 경험들이 듬뿍 녹아든 이야기는 얼핏 과거와 비슷한 꼴인 듯 하면서도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고민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과 감성은 시대마다 달라지는 것일까. 28살에 첫 장편영화를 만든 양시모 감독을 28살에 데뷔해 어느덧 12년차 만화가가 된 기선이 인터뷰했다.

기선_인터뷰 진행을 의식하다보니 내내 감독님이 어떤 사람일지 상상하면서 봤다. 주인공 캐릭터가 내성적이고 조용하고, 무력해 보이지만 반전이 있는 게, 보면서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신지가 떠올랐다. 주인공의 대사가 너무 없어서 감독님도 그렇게 말수가 적은 분인지 궁금했다.

양시모_그렇게 과묵한 편은 아니다. (웃음) 처음부터 조금 비겁한 소년 같은 인물을 원했는데 듣고 보니 <에반게리온>의 신지와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소년이라는 표현도 잘 맞는 것 같고.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제대로 표현한 것 같아 다행이다.

기선_66분이란 길이가 살짝 애매하게 느껴졌는데, 어떻게 기획하게 된 영화인가.

양시모_학교 졸업영화다. 애초에 장편으로 구상한 건 아니었지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자전적인 요소들을 바탕으로 해 성장을 뼈대로 한 이야기를 구체화하다보니 단편으로는 한계가 있어 조금 무리해서라도 제대로 찍기로 했다.

기선_정말인가? 졸업작품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만듦새는 영락없는 상업영화 수준인데. 왠지 얄밉다. (웃음)

양시모_과찬이다. 사실 지금도 얼떨떨하다. 장편영화는 처음 만들었고 이런 인터뷰를 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올해 2월에 졸업식을 마치고 학생이라는 타이틀이 없어지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 되더라. 영화를 계속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래서 얼마 전까지 제주도에서 지내다가 왔다. 서울독립영화제 출품하기 전까지는 제주도랑 서울을 왔다 갔다 했다.

기선_제주도가 고향인가.

양시모_아니, 그냥 혼자 제주도에서 좀 지내봐야겠다 싶어서 내려갔다. 서울에 있으면 더 답답하고 우울할 것 같아서.

기선_역시 조용해 보이는 사람들이 일을 더 크게 친다. (웃음) 왜 하필 제주도였나.

양시모_예전에 여행 갔을 때 무척 좋았기에 무작정 갔다. 서울에 있어도 별거 없고. 사실 앞으로도 잘 모르겠다.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 하지만 정작 제주도에 있을 때는 영화를 계속하느냐 마느냐는 그리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그냥 재밌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작품이 상영되고 인터뷰를 하고 있으니 계속 영화를 만들고 또 다른 좋은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선_확실히 자전적인 영화가 맞는 것 같다. 영화 속 주인공과 정말 닮았다.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낙관적인 분위기가 있다.

양시모_맞다. 나도, 영화도 그런 분위기 아래 있다.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건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다. 이 영화가 미래에서 과거를 보는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옛날이야기를 보는 감각으로. 저때는 저렇게 방황했지만 결국 지나고 보면 지금의 고민과 어려움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들고 싶었다. 당장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그 안에서 만족과 행복감을 얻을 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최종적으로 그 방법을 찾는 게 아닐까 한다.

기선_주인공의 아내도 무척 사랑스럽게 그렸다. 주인공의 고충을 다 받아주고, 다 이해해주는 캐릭터다. 본인의 희망사항이 투영된 거 아닌가? (웃음)

양시모_그런 부분도 없지 않아 있을 거다. 나는 확실히 나보다 어른스러운 사람이 좋다. 그렇다고 마냥 판타지적인 인물은 아니다. 실제로 내 주위에 영화 속 상황과 똑같은 처지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부인이 “네가 있든 없든 아이를 낳겠다”고 해서 굉장히 놀랐다. 세상에 이런 강한 사람도, 자신에 대해 확신이 있는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다들 불안을 말하지만 불안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어떻게든 살아가는 게 사람 아닌가.

기선_그래서 그런지 영화는 전반적으로 따뜻하다.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순응하는 상황에 대해 우리는 보통 우울하고 갑갑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전혀 다른 지점에서 행복을 찾아내 보여주는 게 신선했다.

양시모_너무 철이 없는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찍고 싶었다. 학교에서 반응은 썩 좋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지적이 식상하다 내지는 비현실적이란 거였다. 하지만 이런 현실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주변에서 최대한 많은 조언을 듣는 편인데 나중에 보면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더라. (웃음) 혹평에는 그리 상처받지 않지만 내가 나를 믿지 못할 때가 힘든 것 같다. 사람들 눈에 맞추다 나를 잃고 스스로를 의심할 때.

기선_제목이 <표정들>이라 그걸 의식해서 봤는데 다 무표정이더라. (웃음) 그게 좀 아쉬웠다. 감정적인 톤은 좋은데 디테일이 약한 느낌?

양시모_일부러 지루하게 연출한 건 아니다. (웃음) 원래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니라 무표정으로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쌓아올리고 싶었다. 다들 별일 없이 사는 것처럼 그런 표정을 하고 살지 않나. 개인적으로 허우샤오시엔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런 정서를 살리려고 했다.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예를 들면 <펑꾸이에서 온 소년> 같은.

기선_다 찍고 나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

양시모_아마 아쉬운 게 없는 영화를 찍은 감독은 세상에 한명도 없지 않을까. 기술적인 부분도 있지만 시간과 예산 문제로 미처 이야기를 다 하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어 그게 가장 걸린다. 사실 다른 작품을 새로 들어가는 것보다 이 영화를 추가로 더 찍고 싶다. 66분이 아니라 80분 정도로. 이야기를 확장하려는 건 아니고 좀더 풍부하게 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보여주고 싶은 장면들이 있다.

기선_추가촬영이 영화 새로 찍는 것보다 더 어렵지 않을까.

양시모_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신작보다는 이쪽을 먼저 하고 싶다. 애착이 많이 가는 영화이기도 하고.

기선_역시 영화랑 닮았다. 조용하고 담담하게 강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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