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이하 <엑소더스>)은 리들리 스콧이 먼 길을 돌아온 모세 이야기다. 그의 장대한 필모그래피를 <글래디에이터>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면, 그가 가장 멀리 거슬러 올라간 시대극이기도 하다. 어쩌면 리들리 스콧은 ‘선택된 한 남자의 박해받는 영웅주의’라는 관점에서, 데뷔작 <결투자들>부터 줄곧 모세의 변주를 그려온 것인지도 모른다. 모세를 경유하여 거꾸로 읽는 리들리 스콧의 지난 시간들.
‘결투’라는 기이한 욕망
<결투자들>(1977)
1977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리들리 스콧의 데뷔작. 영국 출신 앨런 파커 감독의 데뷔작 <벅시 말론>(1976)에 넋이 나간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는 제작자인 데이비드 퍼트넘에게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영국 신인감독을 추천해달라고 했고, 그는 영국 광고업계의 스타 중 하나인 리들리 스콧을 연결해줬다. 그즈음 극영화 데뷔를 꿈꾸고 있던 리들리 스콧의 나이는 마흔살이었다. 하지만 파라마운트는 영국에서 온 나이 든 신인감독에게 통 큰 투자를 할 수 없었고, 적당히 90만달러의 제작비를 내놓았다. 그럼에도 수많은 광고를 찍으며 단련된 장인 리들리 스콧은 느긋했다. 부족한 인원으로도 규모 있는 군대 장면을 연출했고, 제작비 문제로 조명에 공들일 수 없었음에도 흐린 날씨와 자연광만을 이용해 비장하고 몽환적인 결투 장면을 만들어냈다. 할리우드에서 최고 예산의 시대극을 연출하는 그의 현재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결투자들>이 칸영화제의 환대를 받은 이후 두번째 영화 <에이리언>(1979)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결투자들>때문이었다.
“결투자는 만족을 원한다. 그는 명예에 굶주려 있다. 이것은 괴상한 욕망을 다룬 실화이다.” ‘결투’라는 기이한 욕망을 다룬, 조셉 콘래드 원작의 <결투자들>은 위와 같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후 영화는 1800년 나폴레옹 시대의 스트라스부르를 시작으로 1816년 파리까지 두 장교 두베르(키스 캐러딘)와 페로우(하비 카이틀)의 오랜 숙명적 결투 이야기를 담아낸다. 리들리 스콧이 데뷔작부터 시대극을 만들려고 했다는 점, <엑소더스>의 모세와 람세스처럼 두 남자의 필생의 대결을 그려내려 했다는 점은 꽤 의미심장하다. 어딘가 끌려다니는 것 같은 인상의 우유부단한 두베르에게서 모세를, 무려 16년에 걸쳐 쫓아다니며 결투를 포기하지 않는 다혈질의 페로우의 모습에서 람세스를 읽어내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페로우와 람세스 모두 각각 두베르와 모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 하나일 것이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공존’의 메시지
<1492 콜럼버스>(1992)
중국에는 가난한 집도 지붕을 황금으로 얹었다는 소문이 횡행하던 유럽의 대항해 시대. 지구가 둥글다고 믿는 탐험가 콜럼버스(제라르 드파르디외)는 인도와 중국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아서쪽 바다로 향한다. 이자벨 여왕(수잔 서랜던)이 콜럼버스의 계획을 지원하여 1492년, 드디어 산타마리아호를 비롯한 3척의 배가 항해를 시작한다. 하지만 예정된 기간보다 항해가 길어지자, 선원들 사이에서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저주받은 항해’라며 불만이 쌓여간다. 그렇게 극심한 공포와 난관을 헤치면서 드디어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신대륙에 발을 내딛는다. 리들리 스콧의 영화들 중 주인공의 머나먼 여정이라는 점에서, 미지의 땅으로 향하는 <1492 콜럼버스>의 콜럼버스는 유대민족을 이끌고 가나안땅으로 향하는 <엑소더스>의 모세와 닮았다. 더구나 그 땅으로 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들과의 필연적인 충돌을 야기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여기서 이민족과의 조화, 종교적 평화에 대한 갈구라는 관점에서 <1492 콜럼버스>와 <엑소더스>는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맨 처음 원주민들을 맞닥뜨렸을 때 부관은 “총을 들라”라고 외치지만 콜럼버스는 그만두라고 말하며, 화살과 창 등 각종 무기로 무장한 그들 앞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그렇게 원주민들의 마을로 들어간 콜럼버스 일행은 그들을 맞이하는 족장의 웃음과 함께 사이좋게 어울려 지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에덴동산을 발견했다. 세상의 처음이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이들을 개종시키기 위해서는 무력이 아닌 설득으로 해야만 할 것이다. 이들은 야만인이 아니다. 우리 가족을 대하듯이 해야 할 것이다. 저들의 신념을 존중하고 약탈과 강간은 엄히 다스릴 것이다”라는 콜럼버스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꽤 긴 기간 머무른 콜럼버스는 다시 스페인으로 떠나며 족장에게 “다음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올 것”이라고 말하는데, 족장은 “왜?”라고 묻는다. 콜럼버스가 “신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자, 족장은 “우리에게도 이미 신은 있다”고 답한다. <엑소더스>가 얘기하는 ‘공존’의 메시지는 이미 이때부터 잉태돼 있었다.
로마처럼 카이로를 재현하다
<글래디에이터>(2000)
<에이리언>(1979)과 <블레이드 러너>(1982)를 경유하면서 리들리 스콧은 프로덕션 디자인에 관한 한 당대 최고의 비주얼리스트로 불렸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9), <미지와의 조우>(1977)의 압도적인 비주얼을 선보였던 할리우드의 전설적 시각효과 엔지니어 더글러스 트럼블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도시를 뒤덮은 산성비와 스모그 사이로 네온사인만 현란하게 점멸하던 2020년 LA의 음울한 풍경을 훌륭하게 형상화했다. 특히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복제인간 리플리컨트를 만들어내는 타이렐사의 거대한 외관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로부터 왔다. 더불어 영국에서 7년간 왕립미술학교를 다니며 순수회화와 그래픽을 공부했던 리들리 스콧은 고대 그리스 로마와 이집트의 경관을 탁월한 지각과 정확성으로 그려냈던 영국 화가 로렌스 알마 타데마 경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해왔다. <블레이드 러너> 속의 피라미드, <글래디에이터>의 로마, <엑소더스>의 카이로는 그렇게 묘한 삼각형을 이룬다. 평소 머빈 르로이의 <쿼바디스>(1951),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1959), 스탠리 큐브릭의 <스팔타커스>(1960), 앤서니 만의 <로마제국의 멸망>(1964) 등 과거 스튜디오 대작영화들에 매혹됐었다고 말해온 리들리 스콧에게 있어 <글래디에이터>로 시작된 본격 시대극의 역사는 어딘가 <엑소더스>로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그가 모세 이야기 그 자체를 다루기 싶었다기보다 람세스, 살라딘, 나폴레옹이 사랑했던 도시 카이로를 재현하고픈 욕망이 이제야 발현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더구나 혈통의 계승자가 아님에도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친아들인 코모두스(와킨 피닉스)보다 막시무스(러셀 크로)를 더 나은 권력의 계승자로 총애한다는 점에서, <엑소더스>에서 람세스보다 왕위 계승의 적임자로 평가받는 모세의 상황과도 닮았다.
<엑소더스> 이후의 이야기
<킹덤 오브 헤븐>(2005)
유럽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지 100여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엑소더스>는 <킹덤 오브 헤븐>의 프리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엑소더스>의 유대민족이 가나안땅으로 향하는 것처럼 <킹덤 오브 헤븐>에서 오랜 전쟁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유럽인들은 부귀와 구원을 찾아 성지로 떠난다. 하지만 <엑소더스>가 줄곧 질문하는 것처럼 ‘믿음’을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영화는 두 남자가 한 여자의 장례를 치러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자의 얼굴을 덮어놓은 천이 날아가면서 창백한 시체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러고는 신부가 먹으려는 오래된 사과에서 구더기가 기어나온다. 그런 그들 옆으로 피곤에 찌든 표정의 십자군이 지나간다. 그 십자군 무리의 우두머리인 고프리(리암 니슨)는 젊은 대장장이 발리안(올랜도 블룸)의 숨겨진 아버지로, 그에게 ‘유럽에서 미천했던 자도 큰일을 할 수 있는 신분 차별이 없는 곳’,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인 성지로 함께 떠날 것을 제안한다.
회교도들에 맞서 100년이나 건재해온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한 성스러운 여정인 것이다. <킹덤 오브 헤븐>은 예루살렘이 직접 등장한다는 점에서 <모세>의 전주곡이라 할 수 있고, 각각 살라딘과 람세스라는 거대한 상대편 왕들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더구나 평화로운, 하지만 깨질 수밖에 없는 공존이라는 점에서도 <1492 콜럼버스>나 <엑소더스>를 떠올리게 한다. 고프리는 발리안에게 말한다. “더 나은 세상, 양심이 살아 있는 땅, 하늘의 왕국(킹덤 오브 헤븐)을 만들어보자. 기독교와 이슬람은 평화롭게 지내왔어. 우리 예루살렘의 왕과 살라딘의 공존이지. 그건 가능해.” 로마처럼 카이로를 재현하다
운명을 따라 떠나다
<로빈 후드>(2010)
<로빈 후드> 역시 <킹덤 오브 헤븐>처럼 오랜 십자군 원정의 피로감으로 가득한 영화다. 영화 속 누군가가 십자군 원정으로 국력이 쇠퇴한 영국에 대해 말하길, ‘취사병만으로 공격해도 영국을 정복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오프닝의 전투가 끝난 다음, 우연히 군인들의 막사를 찾은 사자왕 리차드(대니 휴스턴)는 로빈 후드(러셀 크로)에게 “신이 우리가 바친 제물을 기뻐하실까?”라며 솔직한 심경을 묻는다. 이에 로빈 후드는 ‘아니오’라고 솔직하게 답하고 줄줄 얘기한다. “아크레의 대학살 때문입니다. 2500명의 모슬렘 백성들을 데려오라고 했을 때 내 발밑의 팔이 묶인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두려움도 분노의 눈빛도 아니었습니다. 처량한 눈빛이었습니다. 그녀는 알았던 겁니다. 폐하께서 우리에게 그들의 목을 치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을. 그 순간 우린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신은 없습니다.” 리차드는 그의 솔직함을 칭찬하며 “이게 바로 영국인이다!”라고 얘기하지만 곧장 그를 가둔다. 이교도와의 공존, 신에 대한 부정 등 <로빈 후드> 역시 십자군 원정을 매개로 <엑소더스>와 같은 맥락 위에 놓인다. 더불어 로빈 후드와 모세의 공통점이라면 ‘뜻하지 않게 선택된 자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라는 점과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주인공이라는 설정이다. 로빈 후드는 어느 날 얻게 된 칼의 손잡이 옆에 ‘봉기하라, 양이 사자가 되는 그날까지’라는 문구를 떨쳐내지 못하고 전혀 다른 운명의 길로 빠져든다. 더불어 6살 때 자신을 세상 밖으로 내몬 아버지의 환영이 내내 그를 괴롭힌다. 그처럼 <로빈 후드>와 <엑소더스>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접어든 한 남자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