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베토벤의 슬픔을 듣는 낭만주의 예술가의 초상
2015-01-27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마이크 리 감독이 그린 윌리엄 터너, <미스터 터너>

마이크 리의 전기영화 <미스터 터너>는 화가의 말년에 초점을 맞춘다. 낭만주의의 대가였던 윌리엄 터너가 정점으로 올라가는 화려한 성장기는 생략됐다. 대신 영화에는 대가의 고독과 피폐함이 강조돼 있다. 마이크 리가 주목하는 화가의 삶에, 터너의 무엇이 들어 있는지 바라봤다. 마이크 리는 그것이 ‘역사적인 예술가’의 운명이라고 보는 듯하다.

예술가에게 낭만주의의 천재는 꿈의 대상이다. 제도와 이성을 초월하여 세상을 조종하는 연금술사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평범한 집안 출신에, 지적 배경이 낮고, 성격적 결함도 많은 베토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숭고의 힘을 느끼게 할 때, 대개 우리는 예술의 신비한 마력 앞에 이성을 잃는다. 예술가란 그런 마법을 부리는 주술사의 표상이 아닌가. 그래서 낭만주의의 천재 앞에 교육 같은 제도는 하찮은 미물로 전락된다. 설사 그런 정체성이 낭만주의자들이 지어낸 허상이라 할지라도, 그 허상은 실제보다 더 큰 설득의 유혹을 갖는다. 마이크 리는 하층계급 출신인 윌리엄 터너에게서 낭만주의 예술가의 초상을 읽는다. 덧붙여 자신의 삶도 그럴 수 있기를 겹쳐놓았다.

리얼리스트의 시대극

알다시피 마이크 리는 영국 키친-싱크(Kitchen-Sink) 리얼리즘의 노장이다. 켄 로치와 더불어 그는 영국, 특히 런던에 거주하는 노동자계급의 ‘부엌’에서 일어나는 갈등 표현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통찰하는 감독이다. 곧 마이크 리의 관심은 현대사회의 비극성에 집중돼 있다. 그런 그가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회화의 대가인 윌리엄 터너(1775∼1851)의 전기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은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설사 마이크 리가 미술학교 출신이라 하더라도, 그동안의 영화들은 회화주의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흔이 넘은 노장은 이제 현실의 냉혹한 목격자이기를 중단하는 것일까? 혹시 ‘영국적 영웅’을 소환하려는 지역주의자로 추락하지는 않을지에 대한 걱정도 제기됐다. 결과는 우려와 달리 자신의 미학, 곧 리얼리즘의 토대 위에 표현된 19세기 화가의 전기영화가 됐다. 윌리엄 터너는 발군의 화가이기도 하지만, 마이크 리의 대부분 주인공들처럼 런던에 살며 시대의 일상을, 특히 하층계급의 일상까지 매개하는 역할로 제시돼 있다.

<미스터 터너>는 터너가 저지대 국가들(네덜란드, 플랑드르)을 여행하며 일몰을 스케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여름이면 영국과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자연을 스케치하고, 겨울이면 아틀리에에서 열심히 채색을 하며 그림을 완성했다. 도입부는 터너가 평생에 걸쳐 실천한 삶의 그런 패턴을 보여주는 셈이다. ‘일출과 일몰’은 터너의 일관된 테마인데, 영화도 처음과 끝은 일몰과 일출의 감정, 곧 시간이 종결되고 다시 시작되는 감정으로 열고 닫는다. 말하자면 영화는 한 시대를 완결지은 인물이자 동시에 새 시대의 선구자로 터너를 위치 지은 것이다.

시대적 배경은 터너가 대략 50대 중반인 1830년쯤부터다. 터너는 당시에 같은 영국 아카데미회원인 존 컨스터블과 더불어 영국 낭만주의 회화의 대가로 대접받고 있었다. 말하자면 영화는 화가의 성장기는 건너뛰고 삶의 후반, 곧 이미 대가가 된 터너, 특히 그의 말년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터너는 영화 속 자신의 갤러리에 전시된 <그리종의 눈사태>(1810), 그리고 <눈보라: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과 군대>(1812) 등 30대 때 그린 작품들로 낭만주의 회화의 특성, 곧 자연의 야만성, 자연의 거대함 등 당시 미술계가 찬미하던 ‘숭고’의 미학을 성취한 화가였다. 칸트의 계시인 숭고(Sublime)는 거대하고 압도적이어서 짐짓 공포감을 느끼게 하지만 왠지 마음이 끌리는 것, 좋은 것, 하지만 알 수 없고 포착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지칭했다. 그건 이성으로 도식화된 계몽의 질서를, 혹은 속박을 파괴하는 것이고, 낭만주의자들은 그런 파괴에 매혹됐다. 영국의 화단은 터너를 그런 흐름의 선두로 평가했다.

당시에 터너는 후원자 에그레몬트 백작을 만나, 그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저택인 ‘페트워스 하우스’(Petworth House)에 자유로이 드나들며 풍요로운 조건 속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여유가 넘치고 자신만만한 터너는 귀족 여성들 앞에서 작업 과정을 공개하기도 하는데, 마치 마술사가 마법을 부리듯, 맹렬히 붓질을 하고, 칼로 물감을 바르고, 심지어 캔버스에 침을 뱉으며 채색을 하기도 한다. 그의 작업 태도는 규율을 무시하는 자유분방한 낭만주의 예술가의 전형처럼 보였다(이런 모습은 나중에 아카데미 전시회에서 다시 반복된다).

런던의 이발사 아들

터너의 부친은 런던의 이발사였다. 그는 아들의 재능이 발견된 뒤, 화가의 충실한 조수를 자처한다(터너의 모친은 정육점 딸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지극하여 노인이 돼서도 아들을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물감을 만드는 아버지다. 아들도 그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보통 이상이다. 쉰이 넘었지만, 아직도 아버지의 볼에 키스를 하며 애정을 표시한다. 그 부친이 죽자, 터너는 세상에 홀로 던져진 고아처럼 쓸쓸해 보인다. 모친은 화가가 어릴 때 정신병에 걸려 시설에 감금된 뒤, 이미 그곳에서 사망했다. 유일한 혈육인 부친의 죽음이 결국 터너의 삶을 바꿀 것이다.

보다시피 터너는 하층민 출신이다. 그리고 삶의 대부분을 아버지와 둘이서 살았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 세 여성을 만난다. 먼저 두딸을 낳았다고 주장하는 사라라는 여성이 있다. 역시 미천한 집안의 여성인데, 터너는 그녀가 주장하는 두딸을 한번도 자신의 자식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아마 사라의 행동이 방정하진 않았을 것 같다). 사라는 돈이 떨어지면 양육의 책임을 물으며 터너를 찾아오지만, 그는 차갑게 외면한다. 터너는 아버지로서의 의무는 전혀 이행하지 않는, 보기에 따라서는 무책임한 남성으로 그려진다. 두 번째 여성은 하녀인 한나이다. 오로지 일만 부려먹는 여성인데, 터너는 간혹 자신의 성적 욕구를 그녀를 통해 해결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하녀는 주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

사회에선 명성이 높은 예술가의 사랑은, 또는 성생활은 남이 알면 민망한 수준인데, 삶의 마지막에 터너는 반려자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을 만난다. 하지만 그녀도 터너의 명성에 걸맞은 상대는 아니다. 그녀는 해양화를 그리기 위해 종종 방문했던 런던 근처의 해변도시 마게이트(Margate)의 숙소 주인이다. 그녀는 이미 두번 과부가 된 경험이 있는 ‘미시즈 부스’인데, ‘미스터 터너’는 그녀와 삶의 마지막을 함께 보낸다(결혼은 하지 않는다). 터너는 영국 최고의 화가라는 위치에 올랐지만, 여성과의 관계는 어릴 적 자신의 계급을 넘어선 적이 없고, 마이크 리는 이런 관계를 사물을 관찰하듯 객관적으로 그린다. 특히 부스 여사를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길을 걷는 여행 장면을 그대로 따라간다든지, 지금은 모두 런던 시내에 포함되는 코벤트가든(터너의 집)과 첼시(부스 여사의 새집) 사이의 19세기식 이동 과정을 일일이 묘사하는 것은 리얼리스트로서의 미덕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그런 가운데 터너의 사회적 삶과 개인적 삶은 상층부/하층부, 사교/고립, 영예/무명, 빛/어둠 등으로 극명하게 대조돼 있다.

낭만주의의 틀을 깨고 나아가다

대가의 삶에 변화가 오는 것은 부친의 죽음 이후다. 죽음을 의식하기 시작한 화가의 작풍은 변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구상의 견고한 외형에 변화가 온다. 터너는 컨스터블과 더불어 영국 풍경화의 정점에 도달했는데, 스스로 그 위치를 허문다. 마이크 리가 주목한 대목은 바로 이것, 소위 예술가의 ‘말년의 양식’이다. 베토벤이 자신이 완결지은 고전주의의 정점을 스스로 허물고, 그 자신이 새로운 변화, 곧 낭만주의 음악의 선구자가 되는 과정 말이다. 베토벤처럼 터너는 삶의 말년에 자신이 대표하는 낭만주의의 한계를 넘어가기 시작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스스로 시대와의 불화를 자처하는 것인데, 영화는 그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페트워스 하우스에 걸려 있는 성인 세바스천의 순교화 앞에서 터너가 순교의 고통을 상상하는 에피소드, 그리고 미술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아카데미 회원들과 친교하지 못해 따돌림을 당하는 가난한 화가의 에피소드는 말기의 터너의 고독을 암시하는 장치로 보인다. 특히 트라팔가 해전의 영웅이었던 전함 테메레르가 이제 해체되기 위해 마지막 정박지로 예인되는 장면의 목격과 그것의 작품화(<전함 테메레르>(1838))는 바로 한 시대를 풍미한 자신의 자화상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삶의 마지막을 앞둔 터너는 더욱 과감해진다. 말기의 대표작 중 하나인 <눈보라>(1842)는 선박의 돛대에 몸을 묶어 눈보라를 직접 체험한 뒤 그린 작품이다. 거의 생명과 맞바꾼 이 그림은 제목과 제작연대를 가린다면 그것이 19세기 중반의 작품이란 사실을 알아채기 쉽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이다. 캔버스는 잔뜩 화가 난 붓질의 흔적들로 가득 차 있어 추상표현주의의 잭슨 폴록이 떠오를 정도다. 후기작 중 가장 유명한 <비 증기 속도>(1844)도 마찬가지다. 노란색 대지와 회색 안개 속에 짙은 밤색의 두 선이 사선으로 그어져 있을 뿐, 기차의 모습은 전혀 드러나 있지 않지만, 우리는 그 그림이 문명의 상징인 증기차를 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림은 점점 추상화되고, 터너는 점점 아카데미로부터, 곧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마이크 리는 이 시기의 터너를 낭만주의의 진정한 영웅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자신이 개척하고 발전시킨 낭만주의의 틀을 깨고, 훗날 미술사에서 정의하는 대로 인상주의, 더 나아가 20세기의 아방가르드 미학의 실마리까지 제시한 까닭이다. 낭만주의의 눈밝은 해석가인 이사야 벌린에 따르면, 진정한 낭만주의자라면 자기만의 가치에 목숨을 건 헌신이 있기 마련인데, 곧 순교자의 고독이 있기 마련인데(<낭만주의의 뿌리>), 마이크 리는 말년의 양식을 펼치던 시기의 터너의 모습을 바로 그렇게 그리고 있다. 터너는 새롭게 발견한 자신의 미학을 전혀 타협 없이 전개시키고 있다. 따라서 영화의 종결부는 자기만의 양식을 지키던 터너의 순교의 과정에 다름 아니다.

라파엘전파의 등장과 대가의 죽음

먼저 빅토리아 여왕의 혹평을 듣는다. 아카데미 전시회를 방문한 영국 여왕은 터너의 그림 앞에서 “지루하다”고 외면한다. 여왕이 보고 있는 그림은 <일출과 바다괴물>(1845년경)인데, 무엇을 그렸는지 좀체 알기 어렵고, 멀리서 보면 20세기 화가인 마크 로스코의 작품처럼, 황금색의 명암으로 실험된 추상화 같다. 이젠 런던 시민들조차 알 수 없는 대상을 그린 그림이면 터너의 작품이라고 비꼰다. 그리고 마침내 사진이 등장한다. 단숨에 외관의 유사성을 복사해내는 기계 앞에서 터너는 “(자신도) 끝나간다”는 사실을 예감한다.

최종적으로 마이크 리는 터너의 끝을 확정짓는 것은 ‘라파엘전파’의 등장으로 꼽고 있다. 아카데미 전시회에서 터너는 존 에버렛 밀레이의 <나무꾼의 딸>(1851)을 본다. 자신은 낭만주의의 틀마저 깨고 추상의 지점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었는데, 한쪽에선 젊은 화가들이 초기 르네상스 형식의 복고주의 화풍, 곧 라파엘전파 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그림은 다시 뚜렷한 윤곽선을 갖고 세부를 정밀하게 묘사하며 사실주의로 진화됐다. 미학의 패배는 예술가에겐 죽음과 다름없고, 알다시피 19세기 중반 이후 영국 화단의 주인공은 라파엘전파가 된다. <나무꾼의 딸>을 본 그해 터너는 죽는다.

마이크 리는 터너가 한 시대를 열고, 정점에 도달한 뒤, 다시 새로운 세상에 도전한 태도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런 찬란한 역사를 남긴 위인의 사적인 삶은 비록 고독과 비천함으로 점철됐지만 말이다. 마치 사적인 불행을 역사적 업적의 희생으로 보는 듯하다. 영화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이 연주되는데, 이것은 베토벤은 물론 터너에 대한 헌정곡처럼 해석된다. 두 예술가 모두 ‘슬픔’을 토대로 위대한 예술을 남긴 까닭이다. 아마 마이크 리도 그런 삶을, 삶의 마지막의 순간을 희망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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