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sh on]
[flash on] 구원자의 피로감 그리다
2015-03-05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호산나> 나영길 감독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부문 황금곰상은 나영길 감독의 <호산나>에 돌아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작품으로 제작된 <호산나>는 이미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을 비롯해 미쟝센단편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클레르몽페랑국제단편영화제의 초청을 받은 화제의 작품이다. 제목의 ‘호산나’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뜻으로, 신과 같은 치유력을 가진 소년과 그에게 의지한 채 파괴되어가는 인간 군상이 살아가는 살풍경한 마을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구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짧은 지면으로 풀기 힘든 풍부한 상징과 과감한 비주얼 구현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러닝타임은 25분에 불과하지만 그 해석과 호불호를 둘러싼 논쟁의 시간은 사뭇 길어질 영화다.

-수상의 분위기는 점쳤나. (웃음)

=전혀 언질이 없었고 기대도 안 했다. (웃음) 일단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것만으로도 내겐 영광이었다. 클레르몽페랑 때는 1400석 크기의 상영관에서 상영했고, 이번에도 200~300석 정도의 상영관에서 상영했는데, 이렇게 큰 극장에서 작품을 상영한다는 것 자체가 흥분되는 일이었다.

-베를린 상영 때 관객 반응은 어땠나.

=반응이 적극적이고 호오의 감정이 뚜렷하더라. 한번은 관객과의 대화 시작 전 한 관객이 모더레이터에게 ‘왜 이런 영화를 봐야 하냐’며 선정성과 폭력성에 대해 항의하기도 했다. 국내 상영 때는 이런 적이 없었고, 또 처음 받아보는 질문이어서 좀 놀랐다.

-그런 반응이 무리가 아닌 게 자해, 겁탈 장면, 동물 사체 등 이미지가 주는 충격이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허용치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다.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스탭들은 워낙 나에 대해 잘 아니 큰 의견차는 없었는데, 개고기 이미지나 개구리 압사 장면 등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주인공 소년 섭(지혜찬)이 파괴적인 구원자로 구현된다.

=어릴 때부터 매달린 주제였다. 아버지, 이모부 등 가족의 상당수가 목회자 출신이라 종교적인 부분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영상원 졸업작품을 만들면서 구체화했는데, 루이스 브뉘엘의 <나자린>(1958)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를 한번 비틀어보고자 했다. 말없이 인간들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빛을 통해, 그리스도의 피로감을 전달하고 싶었다. 할 수 있는 한 신의 이미지를 뒤틀고 싶었다. 4~5살 때부터 가족들이 집에 모여 찬송가를 부르면, ‘나는 왜 여기 있나’ 하는 위화감을 느꼈다. 유쾌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런 식의 저항감이 이 영화에 반영된 것 같다.

-그럼에도 영상원에 들어오기 전에 신학대학에 들어갔다.

=명확하게 싫어하자면 먼저 그 대상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이유가 제일 컸다. 사실 그해 영상원에 떨어지면서 차선책으로 신학대학을 선택한 면도 있었다. 무조건 1학년 때는 기숙사 생활, 술담배 금지 등 규율이 심한 학교였다. 일종의 영적사관학교 같은 곳이라고 자칭하는 데였는데, 그래서 학교와 마찰이 좀 있었고 결국 다니지 못하고 이듬해 영상원에 들어갔다.

-연출에 관심을 가진 건 언제부터였나.

=고등학교 1학년 때 영화를 만들었다. 창조교육 영상집단이라고, 지금의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의 모태가 된 곳인데 그곳에서 가이드를 많이 받았다. 이후엔 영상원에 들어가서 작업했다. 원래 꽂히는 영화를 몇번이고 파서 보는 스타일인데, 호러영화를 좋아한다. <이레이저 헤드>(1977)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봤는데 정말 몇 백번을 돌려봤다. 그러면서 이미지에 대한 매혹이 시작된 것 같다.

-다음 작품은 진행 중인가.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 힘든 작품이라 그런지 제작사의 제안이 거의 없다. 지금 쓰고 있는 작품도 성서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는데, 중간에 또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 싶어서 아직 확정은 아니다. 이 지긋지긋한 세계를 어떻게 더 지긋지긋하게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이런 영화적 고민이 더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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