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방랑자 캐릭터 탄생 101주년을 기념해 ‘찰리 채플린 기획전’이 열린다. 3월19일 <모던 타임즈>의 일반 개봉을 시작으로 3월26일부터 4월1일까지 KU시네마테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키드>(1921), <파리의 여인>(1923), <서커스>(1928), <시티 라이트>(1931) 등을 묶은 Part1 기획전이 열린다. 4월2일부터 12일까지 아트나인에서도 상영된다. 이후 상반기 중 시작될 Part2 기획전에서는 <위대한 독재자>(1940), <황금광 시대>(1942), <살인광 시대>(1947), <라임라이트>(1952), <뉴욕의 왕>(1957)을 만날 수 있다. 이중 8편의 리뷰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싣는다. 이번 기회에 차례대로 놓치지 말고 챙겨보자.
1921 <키드>
흑백 / 무성 / 53분 / 감독 찰리 채플린 / 출연 찰리 채플린, 에드나 펄비안스, 재키 쿠건
채플린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자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 방랑자는 빈민가에서 버려진 갓난아기를 5년간 애지중지 키우고, 아이는 자라 방랑자와 귀여운 사기행각을 벌이며 생활한다. 이후 고아원에 끌려가지 않으려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구출하려는 방랑자의 고군분투는 채플린의 그 어느 영화보다 진한 애정이 묻어나 관객의 눈물을 자아낸다. <키드>는 채플린의 완벽주의 기질을 널리 알린 작품이다. 1919년 7월30일에 크랭크인한 영화는 무려 1년 가까이 촬영되었다. 단편이었던 전작들이 릴 두개 분량이었던 데 반해 <키드>는 일곱개의 릴을 사용했다. 촬영된 필름 전체는 훨씬 많은데 무려 60시간에 달해 상영시간 대비 53배를 쓴 셈이다. 채플린의 다른 영화와 비교해도 유난히 많은 양이다. <키드>는 채플린의 괴로운 사생활 속에서도 만들어졌는데, 첫 번째 아내였던 밀드레드 해리스가 낳은 첫아이가 3일 만에 세상을 떠났고 영화가 완성되자 해리스가 이혼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끝내 완성되어 세상에 따뜻한 웃음을 선물한 <키드>는 부모가 이혼하고 보육 시설에 넘겨졌던 채플린 자신의 어린 시절에 보내는 작은 위로다.
1923 <파리의 여인>
흑백 / 무성 / 81분 / 감독 찰리 채플린 / 출연 에드나 펄비안스, 아돌프 멘주, 칼 밀러
채플린이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채플린 영화이자 채플린 초기 영화 중 보기 드물게 흥행에 실패한 작품. 찰리 채플린, 메리 픽퍼드, D. W. 그리피스, 더글러스 페어뱅크스와 함께 설립한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에서 채플린이 연출한 첫 영화다. 기존 스타일과 달리 본격적인 비극을 다뤘다. 채플린의 뮤즈 중 한 사람이었던 에드나 펄비안스를 여주인공으로 유럽 여행 중 상류사회에서 보고 들은 허영과 허위의식을 꼬집는다. 파리 사교계를 중심으로 사랑에 몸을 던지려는 여자와 그런 그녀를 연민하는 연인, 그리고 여자를 사교계의 스타로 키운 남자의 삼각관계를 그렸다. 비극적인 멜로드라마가 주요 플롯임에도 카메라는 인물에 감정이입하는 대신 거리를 두고 관찰한다. 철저한 객관화는 인물의 복잡한 감정을 차분하게 풀어놓지만 때문에 관객이 몰입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와 삼각관계 구도를 자연스럽고 신선한 방식으로 제작한 내공을 읽을 수 있다. 채플린이 유독 애정을 가졌던 작품으로 죽기 1년 전인 1976년 직접 영화음악을 작곡해 재상영했다. 이 작업이 채플린의 마지막 영화 관련 작업이었다.
1928 <서커스>
흑백 / 무성 / 72분 / 감독 찰리 채플린 / 출연 찰리 채플린, 앨런 가르시아, 메르나 케네디
찰리 채플린 코미디의 출발이 슬랩스틱이라면 그 정수는 <서커스>에 담겨 있다. 거의 절반 가까운 상영시간이 오직 슬랩스틱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방랑자 찰리가 우연히 서커스 단원이 되는 이야기를 뼈대로 한다. 채플린 영화답게 서커스 단원이자 매력적인 여인 메르나와의 관계가 드라마의 축을 이루지만 기본은 단편영화부터 꾸준히 이어오던 구조의 병렬에 가깝다.
1927년 최초의 토키영화 <재즈 싱어>의 바로 다음해 나온 영화 <서커스>는 몇몇 장면의 유사함에서 알 수 있듯 <시티 라이트>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웃음 속 해학, 자기희생, 엔딩의 쓸쓸한 정서가 특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방랑자는 메르나를 짝사랑하지만 메르나와 렉스가 서로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 두 사람을 이어주기 위해 애쓴다. 엔딩 장면에서 서커스도, 두사람도 사라진 벌판 위에 서 있는 채플린의 모습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모던 타임즈>와 마찬가지로 제작, 감독, 각본, 편집, 음악, 주연의 1인6역을 맡았으며 서커스 장면을 찍기 위해 직접 외줄타기 연습을 하는 등 완벽주의적 면모를 발휘했다. 제1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위원회가 그를 후보 지명에서 탈락시켰고 대신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했다.
1931 <시티 라이트>
흑백 / 무성 / 86분 / 감독 찰리 채플린 / 출연 찰리 채플린, 버지니아 셰릴, 플로렌스 리
떠돌이 방랑자 찰리는 마지막 남은 동전 한닢으로 꽃 파는 눈먼 소녀의 꽃을 산다. 소녀는 때마침 지나간 자동차 소리를 듣고 찰리를 부자로 오해한다. 찰리는 소녀를 돕고 싶어 취직을 하고 불법 권투내기에도 참가하지만 쉽지 않다. 한참 후 술에 취한 백만장자를 만난 찰리는 그에게 소녀의 눈 수술비를 얻어내고 소녀에게 전한 뒤 사라진다. <시티 라이트>가 개봉한 1931년은 이미 유성영화가 산업의 중심에 자리잡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시티 라이트>는 이에 대한 반발로 제작되었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기에 <시티 라이트>야말로 찰리 채플린 무성영화 미학의 정점에 가까운 작품으로 거듭났다. 아직 제대로 된 연출이 불가능했던 유성영화에 반해 <시티 라이트>에서 선보이는 방랑자 캐릭터의 완성도 높은 팬터마임 연기는 한편의 잘 짜인 안무에 가깝다. 동상을 중심으로 한 경찰과의 추격전, 권투시합 장면 등은 지금 봐도 감탄이 나올 만큼 절묘한 호흡을 자랑한다. 도시의 빛과 어둠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제목처럼 술에 취할 때만 인간적으로 바뀌는 백만장자를 통해 자본가,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자비와 연민으로 상징되는 도시의 빛은 물론 방랑자와 소녀의 몫이다. 아카데미로부터는 외면받았지만 1931년 전미비평가협회 톱10 영화로 꼽혔다.
1936 <모던 타임즈>
흑백 / 89분 / 감독 찰리 채플린 / 출연 찰리 채플린, 파울레트 고다드
명실상부 채플린의 대표작이자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방랑자 캐릭터를 연기한 마지막 영화. 1931년부터 18개월에 걸쳐 세계여행을 했던 그가 실업과 대공황, 자동화와 인간소외에 대해 느낀 바를 풀어낸 작품이다. 이후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혀 미국을 떠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부품이 되어버리는 현대 노동자를 풍자한 장면은 디트로이트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들이 신경쇠약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기사를 본 후 구성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미래 사회의 감시와 탄압의 가능성을 읽어낸 통찰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미 유성영화가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뒤 나온 영화라 완벽한 무성영화는 불가능했지만 틀은 여전히 우아한 율동을 바탕으로 한 슬랩스틱이다. 레오 다니데르프의 코믹송 <Je Cherche Apres Titine>에 엉터리 가사를 붙여 카페 손님들에게 들려주는 장면이 유일하게 소리가 입혀진 순간이다. 찰리 채플린이 직접 작곡한 영화음악은 이후 <Smlie>이란 제목으로 냇 킹 콜, 에릭 클랩턴, 마이클 잭슨 등 유명 가수들에게 불렸다. 르네 클레르의 1931년작 풍자 코미디 <우리에게 자유를>과 유사하다며 표절 시비에 휘말렸지만 이후 르네 클레르 감독이 거듭 사과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1942 <황금광 시대>
(재개봉버전) 흑백 / 69분 / 감독 찰리 채플린 / 출연 찰리 채플린, 맥 스웨인, 톰 머레이
채플린이 말년에 자신의 대표작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할 만큼 애착을 보인 <황금광 시대>는 동전의 양면처럼 한몸으로 붙어 있는 희극과 비극의 정수를 읽을 수 있다. 채플린은 1896년 클론다이크에 몰려든 노동자들의 궁핍한 생활상을 기록한 사진에서 이야기를 발전시켰다고 밝혔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모여든 사람들이 우여곡절 끝에 오두막에 갇히고 굶주림 끝에 환각을 겪으며 물건들을 먹는다는 설정 역시 1846년 시에라네 바다산맥에서 조난당해 동료의 시체를 먹고 버틴 도너 일행의 실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살인범이 환각을 일으켜 방랑자를 닭으로 착각하고 잡아먹기 위해 위협하는 장면이나 방랑자가 자신의 신발을 요리해서 먹으려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방랑자와 살인범, 또 다른 채굴꾼이 좁은 오두막에서 쫓고 쫓기는 긴장관계를 형성하는데 절벽 끝에 매달린 오두막 세트가 희극적 서스펜스를 효과적으로 구축한다. 이를 위해 산악 지역과 똑 닮은 정교한 모형을 만들고 상당한 특수효과도 동원했다. 특히 세트와 미니어처를 적절히 활용한 편집이 돋보인다. 빵과 포크를 이용해 댄스를 선보인 명장면은 이후 <베니와 준>(1993)에서 패러디하는 등 숱한 영화에 영감을 남겼다. 물신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의 날을 유지한 채플린의 날카로운 시선을 읽을 수 있는 작품.
1952 <라임라이트>
미국 / 흑백 / 132분 / 감독 찰리 채플린 / 출연 찰리 채플린, 클레어 블룸, 버스터 키튼
1910년 영국을 배경으로 한 멜로드라마이자 후기. 늙은 희극인과 젊은 발레리나 사이의 애틋한 사연을 그린 자전적인 작품이다. 왕년에 잘나갔던 배우 칼베로는 자살 직전의 여인 테리을 구한다. 발레리나였던 그녀를 위로하는 사이 점차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지만 테리는 채플린 영화 속 숱한 여주인공들처럼 다른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고, 칼베로는 그런 테리에게 끝까지 헌신한다. 은혜를 잊지 않은 테리는 칼베로를 위한 자선공연을 준비하지만 칼베로는 무대에서 실족해 춤추는 테리를 보며 조용히 숨을 거둔다. 채플린은 말년에 풍자와 비판에서 다소 거리를 둔 채 우수에 가득한 작품을 만들었는데 <라임라이트>에 그 슬픔이 구체적으로 녹아들어 있다. <모던 타임즈> 이후 꾸준히 작곡을 한 채플린은 이 영화의 메인음악 <테리의 테마>에서 과장 없이 심금을 울리는 선율을 선보이며 천재성을 다시금 증명했다. 이후 <테리의 테마>는 <이터너리>라는 제목의 노래로 사라 본이 발표했다. 라이벌이자 오랜 동지 버스터 키튼이 한물간 코미디 배우로 출연해 채플린과 호흡을 맞췄다. 이 작품이 만들어진 1952년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혀 미국에서 추방당했다. 채플린의 가장 개인적인 작품이자 희극인의 삶 그 자체를 그린 우수에 찬 초상화다.
1957 <뉴욕의 왕>
영국 / 흑백 / 100분 / 감독 찰리 채플린 / 출연 찰리 채플린, 돈 애덤스
채플린이 마지막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 <라임라이트>가 희극인의 삶과 우수를 포착했다면 <뉴욕의 왕>은 사회에 대한 조롱, 특히 매카시즘에 대한 반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영화다. 런던에서 12주간에 걸쳐 촬영했으며 유럽의 작은 국가 에스트로비아에서 민중 봉기로 퇴위한 샤도프 왕(찰리 채플린)이 뉴욕으로 도피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따라간다. 이후 샤도프 왕이 공산주의자로 고발되고 유럽으로 떠나는 과정이 채플린의 행보와 꼭 닮았다.
매카시즘에 함몰된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직설적인 대사를 통해 거침없이 표현된다. 때문에 북미 개봉이 16년이나 늦춰졌고 그나마도 10분이 잘려나갔다. 특유의 마임과 슬랩스틱은 없지만 날선 풍자가 곳곳에서 냉소를 자아낸다. 당시 자신에게 가해졌던 마녀사냥에 대한 지극히 채플린스러운 응답이다. 로큰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당시 막 보급 중이던 시네마스코프에 대한 풍자, 광고의 홍수나 성형수술에 대한 조롱 등이 곁들여져 미국 문화 전반에 대한 그의 견해를 읽을 수 있다. 매카시즘에 대해 채플린과 열린 토론을 벌이는 소년 루퍼트 역으로 아들인 마이클 채플린(10살)이 함께 출연했다. 위대한 무성영화 배우의 빼어난 유성영화 연기를 확인할 수 있다.
방랑자 The Tramp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1913년 찰리 채플린은 키스턴 영화사와 출연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키스턴 영화사의 맥 세네트와 만나기로 한 날, 채플린은 자신을 좀더 인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분장실에서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즉흥적으로 캐릭터를 만든다. 우선 배우 겸 감독이었던 ‘뚱보 아버클’에게 헐렁한 바지를 빌려 입는다. 아버클의 장인으로부터 작은 중산모도 함께 빌렸다. 여기에 배우 포드 스털링이 신던 커다란 구두를 신고, 감독 겸 배우 찰스 에이버리로부터 꽉 끼는 양복저고리를 빌린다. 마지막으로 콧수염은 배우 맥 스웨인의 머리카락을 작게 다듬어 붙였다. 찰리 채플린이 따로 가져온 것은 지팡이 하나면 족했다. 넝마주이 같은 소품으로 치장한 방랑자는 그렇게 태어났다. 당시 이런 분장으로 희극적인 효과를 노리는 건 흔한 일이었지만 각 배우들에게 빌려 입은 몸에 맡지 않는 옷들은 그를 더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유랑민과 신사가 뒤섞인 방랑자의 외양은 당시 이민자들의 마음을 위로했고 자본가들의 허영을 조롱했다. 채플린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난 이 캐릭터로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막상 분장을 마치자 나는 그 캐릭터가 되었고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무대에 오르자 비로소 캐릭터가 완전히 태어났다.”
채플린의 여인들
영화 속 방랑자는 언제나 희생하며 순수한 존재들, 특히 여인들을 지켰지만 채플린의 개인사는 그리 평온하지 못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가 정신병원을 자주 드나든 탓에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거의 고아나 다름없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은 이후 그의 여성 편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자신의 작품에 출연했던 여배우들과 숱한 염문을 뿌리던 가운데 1918년 밀드레드 해리스, 1924년 리타 그레이, 1936년 파울레트 고다드, 1943년 우나 오닐까지 총 4번 결혼했다. 세 번째 부인 파울레트 고다드에게 첫눈에 반한 채플린은 그녀에게 <모던 타임즈>의 여주인공을 맡겼다. 채플린은 회고록에 ‘아무 걱정 없이 사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여자’라고 남길 만큼 그녀를 신뢰했다. 어쩌면 사랑하는 여인의 손을 잡고 길을 떠나는 <모던 타임즈>의 엔딩 장면은 채플린이 간절하게 바랐던 희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채플린에게 진정 평화가 찾아온 건 마지막으로 1943년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 우나 오닐과 결혼한 후다. 18살로 54살의 채플린과 결혼한 우나 오닐은 채플린이 추방당하자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며 34년간 채플린의 곁을 지켰다. 11명의 자식 중 8명이 우다 오닐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우나 오닐은 채플린 사망 후 그의 시신이 도굴당했다가 돌아오는 사건이 벌어지자 다시 떠나지 못하게 그의 묘지를 콘크리트로 봉해버릴 만큼 서로 아끼고 사랑했다고 한다.
채플린의 명언들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적게 느낀다.”
-<위대한 독재자> 중
“인생은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정말 멋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용기와 약간의 상상력, 그리고 구질구질하지 않을 만큼의 돈만 있으면 된다.”
-<라임라이트> 중
“이타주의는 인류 진보 중 가장 늦게 나타난다. 하지만 결국 이타주의가 살아남고 선의가 승리할 것을 굳게 믿었다. (중략) 지나고 나면 결국 웃어넘길 수 있는 것들.”
-자서전에서 밝힌 추방 당시의 심경
“불행해하면 인생이 널 비웃을 것이고 행복해하면 인생이 웃음지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면 인생은 너에게 경의를 표할 것이다.” “다들 웃으세요, 웃으며 즐거움을 찾으세요.”
-1972년 44회 아카데미 특별상 수상 소감 중
(1952년 미국에서 추방당한 그는 20년 만에 미국 땅을 밟은 이 자리에서 긴 세월 자신이 받았던 고통과 억울함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감사의 말을 전했다. 관객의 기립박수는 12분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