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저편>(2012)
21세기 말, 인류는 종말을 맞이하고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은 모든 체계가 무너진 지구 안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나간다. “마지막 종말의 순간, 예술은 어떤 의미일까? 또한 이전의 모든 가치가 사라지고 난 후 새로운 예술은 과연 어떤 형태이고 무슨 의미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두개의 스크린에 각각 종말의 순간을 맞이하는 과거의 예술가(이정재)와 그의 작업실에서 과거의 예술의 흔적을 발견하는 신인류(임수정)의 모습을 담는다. 두개의 스크린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 인상적인 작품. 이 영화 속 임수정의 모습은 <축지법과 비행술>에서 그녀가 분한 신인류의 모습과도 겹치는 지점이 있다.
<순수존재>(2012)
<세상의 저편>의 속편. 변방의 아카이브로부터 과거의 예술과 조우했던 여인이 돌아온 이후, 신인류가 세운 새로운 도시 템퍼스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더 이상 템퍼스의 엄격한 규율에 따르지 않게 된 여자와 그녀에게 영향을 받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자, 위기감을 느낀 템퍼스는 문제의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냉철한 수사관(이정재)을 과거로 파견한다. 미래에서 줄곧 무표정했던 그의 얼굴은 과거의 도시가 선사하는 긴장감과 생동감을 경험한 뒤 점차 복합적인 감정을 담게 된다. ‘시간여행’이라는 형식을 통해 현재의 예술을 성찰하는 작품.
<묘향산관>(2014)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북한 식당 ‘묘향산관’이 배경이다. 이곳에서 베이징에서 개인전을 여는 남한 화가(고수)를 축하하기 위한 파티가 열리고, 식당을 찾은 화가와 친구들은 아름답고 신비한 묘향산관의 북한 여종업원 오영란(한효주)을 만난 뒤 이상한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묘향산관’은 현실과 꿈, 남과 북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중립적인 공간으로 기능한다. 전준호, 문경원 작가의 단편 전작을 통틀어 가장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주인공과 더불어 큐레이터, 미술 기자, 현대무용가 등 묘향산관을 찾은 인물들의 예술에 대한 태도를 다양한 형식으로 보여준다. 극중 인물로 출연하는 안무가 정영두가 직접 안무를 고안한 작품이기도 하다.
<q0>(2014)
리움미술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영화. 리움의 소장품인 ‘금은장 쌍록문 장식조개’에서 영감을 얻어, 이 유물의 탄생과 역사에 가상의 스토리를 덧입혔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각기 다른 사연과 상황 속에 놓인 남녀의 모습을 시적인 영상과 내러티브로 구현했다. 두 작가의 그 어떤 작품보다 ‘윤회’의 테마가 짙게 반영된 영화. 주로 현대물에 출연해왔던 소지섭의 사극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