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16일 목요일, 캘리포니아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에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컨벤션 센터 주변을 걸어다니는 사람의 90% 이상이 <스타워즈> 속 캐릭터가 그려진 옷을 입었거나, 캐릭터와 관련된 상품을 들고 다니거나, 개인적으로 만들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속된 말로 ‘고퀄’인 코스튬을 입은 채 컨벤션 센터를 향하고 있었다. 아침 출근시간이 막 지난 오전 9시, 거리는 한산한데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는 ‘스타워즈 셀러브레이션 2015’ 행사를 위해 모여든 팬들의 열기로 소리없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4월16일부터 20일까지 나흘 동안 열린 ‘스타워즈 셀러브레이션 2015’ 이벤트의 개막식에 다녀온 이야기를 전한다.
스타워즈 셀러브레이션 2015에 다녀왔다. 이 행사는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의 새 영화 개봉을 축하하는 팬들의 축제로, 1999년 미국 콜로라도의 덴버에서 열린 초대 셀러브레이션을 시작으로 비정기적으로 꾸준히 개최됐으며, 영국, 일본, 독일 등에서도 각각 스타워즈 셀러브레이션 유럽과 스타워즈 셀러브레이션 재팬이라는 타이틀로 행사가 열린 바 있다. 올해 행사는 조지 루카스의 제작사인 루카스필름이 덴버에서 개최했던 첫회로부터는 10번째 행사이며, 미국에서 열린 행사로는 7번째였다. 첫회 셀러브레이션 참가자는 2만명에 불과했으나 이듬해 행사에는 7만5천명이 참가했으며, 추후 집계된 바에 따르면 올해 행사에는 나흘 동안 15만명이 다녀갔다. 2015년 12월18일로 개봉을 정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개봉을 축하하기 위해 기획된 올해 행사의 개막식에는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J. J. 에이브럼스와 루카스필름의 대표이자 영화 제작자인 캐슬린 케네디, 영화의 출연진인 존 보예가, 데이지 리들리, 오스카 아이삭, 캐리 피셔, 마크 해밀 등이 참석해 한 시간가량 팬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날 아침,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의 주차장은 9시가 채 되기도 전에 만차가 됐고, 주차장 입구에서 컨벤션 센터까지 걸어가는 길은 스타워즈 속 캐릭터 코스튬을 입은 남녀노소 팬들로 가득했다. 주위 사람들에 따르면 행사장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팔찌를 받는 대기줄은 하루 전부터 길게 늘어섰다고 한다. 유모차에 앉은 아기는 루크 스카이워커로, 자신을 다스베이더로 꾸민 아버지도 있었으며,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여름 날씨에도 스톰트루퍼스 갑옷 안에 몸을 가둔 열혈 팬들도 많았다. 레이아 공주의 메탈 비키니 차림이 날씨와 가장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인구 100명당 <스타워즈>의 열성 팬이 한명쯤 있겠지만, 이날만큼은 반대였다. 정원 7500명을 꽉 채우고 입석까지 판매된 컨벤션 센터의 불 꺼진 아레나는 끝없이 환호하고 함성을 지르는 팬들과 그들이 휘두르는 형형색색의 라이트 세이버로 흡사 아이돌그룹의 콘서트장을 보는 듯한 장관을 만들고 있었다. 무대 위의 디제이는 <스타워즈 메인테마>(Star Wars Main Theme)와 <임페리얼 마치>(Imperial March)를 번갈아가며 틀었고, 팬들은 두곡의 박자에 맞춰 한 동작으로 손을 흔들었다. 에이브럼스 감독이 무대에 올랐을 때는 록스타를 향한 그것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함성이 객석에서 터져나왔다. 이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감동인지 소름인지 알 수 없는 기분이 피부로 느껴졌다.
지난 4월 <할리우드 리포터>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전세계 개봉수입이 5억4천만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영화 사상 최고의 개봉수입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타워즈 셀러브레이션 2015 오프닝은 그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 자리였다. 에이브럼스 감독과 제작자인 캐슬린 케네디의 인터뷰는 지금까지 경험해본 어떤 GV와도 비교할 수 없는 끈끈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 핼러윈 때 <스타워즈> 캐릭터 코스튬을 입고 사탕을 얻으러 나간 적이 있다는 에이브럼스의 고백이나, 스타워즈 셀러브레이션 행사장에서 구입한 티셔츠를 입고 있다는 캐슬린 케네디의 자랑이 그렇다. 창피할 수 있는 고백과 소박한 자랑을 들으며 팬들의 눈은 반짝거렸다. 하긴 이들은 앞으로 여덟달을 더 기다려야 하는 영화에 대한 조각 정보들을 하나라도 더 먼저 맛보기 위해서 평일 아침부터 이곳에 모여드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언젠가 <스타워즈>에 대한 미국인의 추앙에 가까운 충성스러움에 대해 분석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충성스러움은 길게 봐야 200년 미국 역사에 대한 보상심리에서 왔다는 골자의 문화인류학적인 글이었다. 이민자가 세운 나라이며 아직도 새로운 이민 인구가 유입되고 있는 까닭에 뿌리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열등감이 강한데 <스타워즈>는 일종의 신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뿌리에 대한 열망이 큰 앞세대의 열망은 컬트에 가까운 팬덤을 낳았고, 그 팬덤으로 인해 프랜차이즈 제작이 지속되며, 부모에서 아이들에게,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스타워즈>의 세계는 이어져 내려왔다. 거창한 해석이야 어찌됐든 영화 한편이 프랜차이즈가 되고 브랜드가 되고 나아가 역사가 되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며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스타워즈 셀러브레이션 2015’는 문화를 통한 공동체의 소통이 가지는 시너지 효과와 영향력에 대해 또렷하게 인식하는 기회가 됐다. J. J. 에이브럼스 감독은 올해 무대에 패널로 서지 않았다면, 에이브럼스가 이전 행사들에 참여했던 것처럼, 엄청난 인파 속에서 함께 소리를 지르고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의 백미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두 번째 티저 트레일러 공개였다. 트레일러의 문을 닫는 한 솔로(해리슨 포드)와 츄바카 장면은 이날 등장한 어떤 캐릭터들보다도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함성이 잦아들자 진행자는 “또 보고 싶지 않나요?”라고 외쳤고, 같은 트레일러를 한번 더 상영했다. 조금 전보다 훨씬 조용해진 채로 2분이 채 안 되는 영상에 숨죽이는 사람들, ‘스타워즈 셀러브레이션 2015’는 팬을 위한, 팬에 의한, 그리고 팬이 만들어내는 행사임이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스타워즈 셀러브레이션 2015’는 오프닝 행사를 비롯해 행사의 일부를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했다. 또 행사에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모습도 보여줬다. ‘#Storm-Troopers’, ‘#C3PO’, ‘#BB8’, 세 가지 해시태그와 이모티콘을 결합해 트위터에서 이 해시태그를 붙이면 이모티콘이 보여지도록 지원했다. 또 SNS를 통해 각지의 팬들이 보내온 질문을 모아 묻고 답하는 시간을 따로 두기도 했다. 팬덤이 기반이 되어 만들어지고 성장한 행사는 이렇듯 전세계 팬들이 참여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하지만 현장의 열기와 감동, 그리고 생동감은 라이브 스트리밍이나 SNS로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열기의 현장 속에 있고 싶은 팬이라면, 내년 행사를 위해 빨리 움직여야 한다. 스타워즈 셀러브레이션 2016은 런던에서 7월15일에서 17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VIP 티켓은 이미 마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