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현실의 무게를 견디는 ‘믿음’
2015-05-26
글 : 장병원 (영화평론가)
전작 <무산일기>보다 깊어진 박정범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산다>

박정범 감독이 장편 <산다>로 돌아왔다. 장편 데뷔작 <무산일기>(2010)에 쏟아진 관심 이후 4년 만의 신작이다. <산다>는 절박한 영화다.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경험한 감독이 그 고통을 담아낸 작품이라서 절박하고, 첫 작품과 마찬가지로 시스템에 편입되는 대신 독립제작방식하에서 어렵게 찍어 절박했다. 165분이라는 장대한 서사나 제작방식 모두, 어떤 타협도 거부한 채 밀어붙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산다>는 온전히 박정범의 영화다. 강원도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정철(박정범)을 중심으로 ‘비정상적인’ 가족 관계 안에서, 그는 노동과 자본, 인간성 회복이라는 주제를 꺼내놓는다. 간결하고 묵직했던 전작에 비해 할 말이 많아졌고, 한결 따뜻해진 시선이 인상적이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2014 프로젝트로 이 작품의 탄생을 지켜본 장병원 프로그래머의 비평과 이화정 기자가 만난 박정범 감독의 인터뷰를 수록한다.

공전의 명성을 획득한 데뷔작 <무산일기> 이후 박정범은 주체적인 삶과 영화 만들기의 존재 의의를 안으로부터 성찰하는 이야기를 기획하고 있었다. 2011년부터 박정범의 머릿속을 꽉 채운 이 아이템은 노동자의 고통에 관한 영화였다. 노동이 고통이 된 시절에 관한 이야기. <산다>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2014년 단편 지원에서 장편 제작 프로젝트로 전환한 전주국제영화제의 ‘디지털 삼인삼색 2014’ 중 한편으로 만들어졌다. 필자는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산다>의 제작 과정을 근거리에서 지켜봤다. 박정범은 자신의 고향인 강원도 평창의 혹독한 추위를 스스로 택했고, 겨울로 예정되었던 촬영 일정을 훌쩍 넘기고 봄을 지나기까지 매우 고단한 시간을 보냈다.

박정범의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영화계에서 놀랄 만한 데뷔작 이후 두 번째 영화를 내놓았을 때의 전적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2년차 징크스를 겪는 사례는 허다하다. 지난해 2월 한없이 지체되는 촬영이 근심스러워 현장을 방문했을 때, 10kg 이상을 감량하여 깡마른 얼굴이 된 그는 형형한 안광(眼光)만이 매섭게 번쩍이는 짐승 같은 모습이었다. <산다>의 가장 공격적이고 묵직한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하는 인간의 육체, 그가 감내하는 고통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이것은 <산다>의 내러티브가 그려내는 한국 사회의 계급적 모순상보다 유서 깊고, 공감의 폭이 두터운 테마이다.

한국 사회 계급구조의 모순

박정범의 야심은 서사극에 어울릴 법한 러닝타임(165분)으로만 표현된 것이 아니다. <산다>는 생존을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노동자 정철(박정범)의 고통을 모체로 한 이야기이다. 튼튼한 지붕이 덮인 집에 대한 소망을 품고 정철은 가혹하기만 한 세상의 학대를 견딘다. 무너져가는 집을 재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정철은 건설현장 인부들에게는 돈을 떼먹은 원흉으로, 된장공장 노동자들에게는 탐욕스러운 사장의 하수인으로, 툭하면 발작을 일으키는 누이 수연(이승연)에게는 동정 없는 동생으로, 호시탐탐 서울로 떠나려는 여자친구 진영(이은우)에게는 미래가 없는 애인으로 비난을 산다. 더 나은 삶에 도달하기 위한 정철의 마조히스트적인 투쟁은 시종일관 화면에 질식할 것 같은 긴장을 불어넣는다.

감독이자 주인공 정철을 연기하는 박정범은 <산다>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영화에서 그는 자신의 고향인 평창의 인간과 풍경을 당대의 사회적 환경으로 치환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박정범은 그 구성원들이 된장공장에서의 노동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재래식 수공노동 공동체를 무대로 삼아 자본과 임노동의 대립이 낳은 결과를 심각한 형태로 예시한다. 메주를 빚고 발효하는 전통공법을 고수하는 재래식 된장공장은 수지타산을 맞추기 힘들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젊은이들이 떠나면서 마을은 공동화의 위기에 몰려 있다. 이와 같은 변방 공동체의 궁색한 현실은 손이 느리고 굼뜬 나이 든 노동자들을 젊은 노동자들이 대체하는 사정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질곡에 찬 계급구조를 서사화한다는 점에서 <무산일기>와 <산다>는 혈연적 친밀성을 가지고 있다. 소박한 생활의 욕구를 가진 소외자를 주인공으로 택했다는 것, 두 영화가 화제로 삼고 있는 사회적 변방의 정황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지점 중 하나이다. 그러나 <산다>는 변방으로 밀려난 농촌의 생활과 풍속을 묘사하려는 이야기도, 노동자들의 공동체성을 재확인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여기에 <산다>를 인상적으로 만드는 특징 중 하나가 있다. 현장의 감각을 생생하고 처절하게 전하는 것에 더하여 <산다>에서 동원되고 있는 수법은 ‘전형’을 벗어난 계급의 지도 그리기이다. 각자의 생존을 위해 개인적인 소유에 집착하는 노동자들에게 단결은 없다. 재래식 임노동 관계가 지배하는 작은 공동체에서 노동자들은 왜소하고, 밝은 미래를 위한 정철의 투쟁은 무기력해진다.

<산다>가 그리는 계급 역학에서 주목할 지점은 자본가와 무산자 사이의 이분법적인 대립구도 바깥에 있다. 그가 도달하는 길의 끝에는 무산자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인 신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철과 강 사장, 그의 주변인들은 일정한 정치적, 계급적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지만 그들의 현실은 경제적인 구도나 역사적 인식의 틀 안에서 제시되지 않는다. 정철은 노동자 계급이지만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착취하는 ‘관리자’로 된장공장에서의 입지를 다진다. 그러나 계급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정철의 행태를 일면적으로 비난하기란 쉽지 않다. 된장공장 강 사장, 그를 대리하는 사장 딸 현경의 감시와 억압이 그려지는 한편,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미지급 노임을 두고 벌이는 드잡이 싸움, 된장공장 노동자들 사이의 밥그릇 싸움은 자신이 처한 조건에 무지한 무산자들의 불우한 인식을 보여준다. 인간과 삶의 현실을 역사적 전체성으로 표현하려고 들지 않는 <산다>는 계급 내부의 불화와 상잔(相殘)으로 인한 참혹과 신음에 초점을 맞춘다. 정철과 그 주변인들이 속한 계급의 반대편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박정범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계급구조의 모순을 인상적으로 형상화한다. 그 결론은 여전히 암담한 현실의 확인이다.

‘산다’는 것의 고통과 아름다움

날카롭고 감각적인 문체와는 거리가 멀지만 <산다>의 숏은 대부분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동시에 시각적으로 강렬하다. 영화의 무대가 되는 공간은 인물의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최적의 요소로 보인다. 허물어져가는 집과 퇴락한 된장공장, 버려진 폐건물, 가로등이 켜진 도로 등의 공간은 인물이 처한 곤경과 혼돈, 그리고 다시 이를 이겨나가는 힘을 대변한다. 극사실주의적인 묘사가 존재론적으로 확실한 현실을 제시한다는 생각에 의존하지 않고 박정범은 풍요로운 삶의 다면체 양상을 진실하게 구성해나가는 방법을 찾아냈다. 혼숫감을 물색하기 위해 찾은 전자제품 매장에서 강 사장과 현경이 나누는 대화는 ‘진실한 이미지’에 대한 박정범의 철학을 간단하게 요약해준다. HD보다 4배 더 뛰어난 화질을 구현한다는 UHD TV 앞에서 “실제로 보는 것보다 선명하다”는 현경의 감탄을 듣고 강 사장은 “사람 눈으로 보는 것보다 선명하다는 게 말이 되냐. 가짜 같지 않냐”라고 말한다. 화려하지만 가짜 같은 이미지 대신 <산다>는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진실을 보여준다. 때로는 미학적으로 불쾌한 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 결정적인 순간 시적인 비유로 방점을 찍고 있다.

<산다>의 내러티브에서 특이한 점은 주인공 정철을 막다른 길로 몰고 가는 결정적인 사건(부패한 된장의 내력과 관련한 미스터리)에 대해 깔끔하게 진상을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탈진으로 치닫는 분투에도 불구하고 모든 면에서 정철을 기다리는 것은 완전한 절망이다. 수연은 위로 또는 축복을 발견하는 시도가 헛수고로 돌아가자 자멸적으로 스스로를 해한다. 꿈을 꾸는 것 같은 눈동자로 미래에 대한 소망을 말하던 조카 하나(신햇빛)는 기도를 거부하고 신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박정범은 모호하게 드러난 진실 위에서 속죄와 화해를 위한 길을 모색한다. 정철은 계속 자신의 집을 짓고, 하나와 함께 수연이 올지도 모르는 길을 밝힌다. 맹목적으로 추락해가는 현실 속에서 돋보이는 것은 거의 멸종되어가는 믿음, 삶의 뼈저린 고통을 견뎌내게 하는 삶의 본원적인 생명력이다. 박정범은 특이한 감동을 전해주는 순간을 통해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이 붙잡아야 하는 것이 무언가를 실감나게 호소한다. 리얼리즘에 뿌리박고 있는 <산다>의 서사적 추동력을 만들어내는 근원은 이 순진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믿음에서 비롯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지면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은 이러한 믿음의 구체적인 실례이다. 이 인상적인 라스트신은 이미지와 사운드의 탁월한 결합을 통해 삶의 의지를 가진 모든 것들이 제각각 제 몫의 빛을 내고 있음을 역설한다.

<산다>는 창작자의 가열한 의욕이 자기갱신의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결실을 맺은 작품이다. 극중 정철의 내면에 근접하기 위해 막다른 골목으로 자신을 몰아가면서 박정범은 초조와 위축이 야기한 조바심이나 관성에 안주하려는 나태를 극복하였다. <산다>에서 억압적인 사회 시스템을 성찰하는 박정범의 태도는 좀더 은근하고 깊어졌다. 그는 자신을 향한 주제와 내용을(<산다>의 스토리는 된장공장을 운영하는 박정범 자신의 부모님의 삶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것에 걸맞은 영화적 형식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 영화는 전작에 비해 훨씬 더 넓고 깊어진 개인의 세계를 내세우며 점점 진실을 멀리한 채 안으로부터 썩어가는 한국 사회의 구조를 짚어간다.

대중상업영화의 관행을 따르지 않겠다는 작가적 결기 때문인지 <산다>의 제작 과정은 그다지 따뜻하지 않았다. 제작비도 적잖게 초과됐으며 그 과정에서 감독은 적지 않은 채무를 떠안아야 했다. 그러나 영화에는 망설임이 없다. 영화 곳곳에는 상심의 기운 한복판을 뚫고 언 마음을 어루만지는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다. 삶의 가혹함과 ‘산다’는 것에 대한 수긍, 그로부터 얻어지는 낭만적 서정이 한몸을 이룬 중층적 정서는 <산다>를 특별한 위치에 올려놓는다. 이연실의 <소낙비>가 구성지게 흐르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박정범이 다시 한번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의 궁상 속에서도 순박한 인간의 향기가 풍겨나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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