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악(惡)을 맛볼 준비 됐나요?
2015-06-11
글 : 김현수
<한니발> 시즌3 미리 보기

드라마 <한니발>의 세 번째 시즌이 곧 시작된다. 전개상 당연히 지난 시즌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지만 이를 제외한 주요 캐릭터, 디자인, 로케이션, 의상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설정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다시 시작하는 드라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달라진 재미와 파격적인 볼거리를 선사할 드라마 <한니발> 시즌3는 6월6일부터 매주 토요일 밤 10시50분 AXN채널에서 방영된다. 새롭게 꽃단장한 희대의 살인마를 영접하기 전에 지난 시즌과는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간단히 짚어봤다.

무려 인간 사냥만 세 시즌째다. 쓸데없는 궁금증이지만 희대의 식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매즈 미켈슨)는 삼시세끼를 전부 챙겨 먹을까? 드라마에서 묘사된 바에 따르면, 그는 끼니마다 전채요리에서부터 후식에 이르기까지 격식이란 격식은 전부 갖춰 챙기는 것은 물론, 자신뿐만 아니라 지인들의 끼니마저 몽땅 챙긴다. 식자재나 음식 문화에 관한 지식은 또 얼마나 해박한지 모른다. 특유의 나긋한 목소리로 일본의 요리문화 양식 중 하나인 가이세키 요리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는 렉터 박사를 보고 있노라면(<한니발> 시즌2 1화, ‘가이세키: 되살아난 기억’편), 생선 요리 정도는 눈 딱 감고 그에게 대접받고 싶어진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육류 요리를 얻어먹을 용기는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의 냉장고에 어떤 재료가 들어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드라마 <한니발>은 소설이나 영화와는 조금 달리, ‘한니발 렉터’라는 인물 자체의 역사를 주목하는 드라마다. 그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왜 우리에게 시도 때도 없이 엽기적인 요리를 건네며 식사를 하자고 권하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그것도 하필 인육을 재료로 말이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응원하는 드라마라니, 이 얼마나 불편하고 부당한 선택인가. 심지어 채널만 돌리면 사방에서 요리사들이 쏟아져 등장하는 최근 한국의 TV프로그램 풍경을 보며 따분하다는 듯 SNS에 “당장 한니발을 섭외하라”고 일갈한 어느 ‘팬니발’(<한니발>의 팬을 가리키는 별칭)의 농담 섞인 한마디를 듣고 있자니, ‘한니발’이라는 캐릭터를 과연 황교익 선생이나 이연복 셰프와 동일한 종족으로 생각해도 괜찮은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TV시리즈의 작가이자 프로듀서로도 참여한 브라이언 풀러가 “무례한 사람을 먹는 신사적인 식인마라는 사실” 때문에 처음 한니발이란 캐릭터에 반하게 됐고, 드라마로서는 “사회적으로 방어막 같은 게 생겨 타인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거나 공감 능력을 상실해버린 사회에 관한 블랙코미디를 담아낼 수 있을 거라 여겨” 작품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인육 권하는 한니발에 대한 거부감이 좀 누그러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껄끄러움은 남지만, 아무튼 드라마 <한니발>이 시대의 공기를 섭취하기 위해 등장한 ‘괴식가’를 다룬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너무 얌전했던 식인마

정신의학에 정통한 렉터 박사는 낮에는 환자들의 뇌를 챙기고 밤에는 요리를 하고 새벽엔 식자재 사냥을 나가는 바쁜 일과를 보낸다. 소설가 토머스 해리스에 의해 탄생한 한니발 렉터는 지금껏 다섯 차례나 영화화되면서 마성의 매력을 마음껏 뽐냈다. 인간 너머의 묘한 악마적 본성에 사로잡힌 듯 아닌 듯 줄타기하며 침착하게 피해자의 오장육부를 적출하는 살인마 캐릭터는 영화적으로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드라마는 시기적으로 소설 <레드 드래곤>과 이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맨헌터>, <레드 드래곤>의 프리퀄에 해당한다. 즉 FBI 특별 수사관 윌 그레이엄(휴 댄시)을 비롯한 세상 사람들이 한니발 렉터라는 살인마와 어떻게 조우하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총 26화에 걸쳐 펼쳐졌다.

드라마 <한니발> 시즌1은 기존의 소설과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윌 그레이엄이라는 독특한 수사 능력의 소유자가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사람을 죽이게 됐는지, 그로 인해 어떤 심리 변화를 겪게 되며 한니발 렉터 박사는 왜 그에게 흥미를 갖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윌의 정신과 상담의로 등장해 그를 치료해주는 렉터 박사는 되레 주변 인물 정도의 비중에 가까웠다. 사건의 대부분은 렉터 박사가 아닌 다른 모방범이 저지르니 시즌 내내 렉터 박사는 드라마 제목이 ‘한니발’이란 사실이 무색할 만큼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무언가 했다손 치더라도 화면에 등장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시즌2에서는 렉터 박사가 식인마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몇몇 에피소드를 다뤄 팬들의 갑갑한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다. 그가 대체 어떤 식자재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음식을 요리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묘사도 등장해 시리즈 본연의 충격미를 살리기도 했다. 물론 수사관 윌이 어떤 이유로 렉터 박사 대신 범인 누명을 쓰게 됐는지, 그리고 윌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관해 초점을 맞춘 에피소드가 시리즈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렉터 박사가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은 대부분 그에 관한 부연설명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리즈 전체의 완성도로 보건대, 렉터 박사가 아닌 수사관 윌을 전면에 내세우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식은 욕심을 부릴 법한 과감한 전개이긴 했겠지만 총 26화 내내 살인마 한니발 렉터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는 점은 <한니발>이라는 드라마의 과감성이 빚어낸 치명상이라는 사실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한니발, 유럽에 가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시즌3에 임하는 제작진의 전략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못해서 안 보여준 게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숙제를 앞에 두고 작가 브라이언 풀러는 “보다 자유롭게 먹고 죽이는(killing openly, eating openly) 살인마로 살아가는 한니발의 모습”을 시즌3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시즌2의 엔딩에서 사실상 그동안 렉터 박사 자신과 연을 맺었던 대부분의 사람들과 잔혹하게 이별을 고하고 도망자 신세가 된 그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지로 건너가 대학 연구 교수로 신분을 세탁하고 정착한다. 렉터 박사와 가장 각별했던 수사관 윌 역시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렉터 박사와 대면할 기회만을 노린다. 시즌3에서는 이전에도 간간이 등장해 존재감을 과시했던 렉터 박사의 상담의사 베델리아(질리언 앤더슨)가 렉터 박사와 사실상의 연인 관계처럼 등장해 유럽 도피 생활을 돕는다. 그리고 시즌 중반에 이르러 윌과 렉터 박사와의 사이가 정리되고 나면 우리가 익히 아는 원작 소설 <레드 드래곤>의 설정과 동일한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 신호탄은 바로 이빨요정이라는 또 다른 살인마의 등장이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제작진이 보여줄 렉터 박사의 면모란 이전까지 봐왔던 너무 우아해서 종종 지루하기도 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궁극적으로 시즌3에서 보게 될 렉터 박사의 새로운 면모에 대해 배우 매즈 미켈슨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한니발의 보다 자유로운 삶을 위해 시즌3에서 주요 배경을 이탈리아로 이동했다. 그에 맞춰 외모나 스타일도 기존 시즌과는 다르게 표현했고, 또한 계획된 삶보다는 즉흥적인 면이 드러나도록 꾸몄다. 시즌3는 미국에서의 사회적 입지를 떠난 공간에서 벌어지는 만큼, 한니발 렉터의 숨겨왔던 본색을 드러내는 시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즌3야말로 온전히 한니발 렉터 개인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가 될 거라는 기대를 품게 하는 대목이다.

다시, 인간 사냥이 시작되다

지난 시즌에 비해 급격히 달라지는 캐릭터의 면면을 시각적으로 부각하기 위한 장치도 준비됐다. 바로 렉터 박사의 의상이 그 주인공이다. 시즌3의 1화에서는 무려 슈트를 벗고 가죽 재킷을 입은 채 프랑스 파리의 밤거리를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렉터 박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저 볼거리 위주의 다양한 시도를 위한 설정 변경일 수도 있겠지만 의상 하나 바꿨을 뿐인데도 기존의 시리즈영화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젊은 액션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기기도 한다. 유년 시절을 다룬 <한니발 라이징>을 제외한 다른 작품에서는 이미 한니발 렉터가 나이 든 인물로 설정된 탓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새 시즌에서 역시 액션에 능통한 매즈 미켈슨이 연기하니 전략적으로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를 마련했을 거라는 추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시즌3에서는 무작정 씹고 뜯고 맛보는 살인 행각만을 나열해서 보여줄 심산일까. 천만의 말씀. 시즌3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유럽에서의 첫 살인 현장(1화)에서 렉터 박사는 자신의 동료인 베델리아에게 “살인에 참여할 건지, 그저 관찰만 할 건지”를 묻는다. 하지만 그는 “관찰이 곧 참여”라는 도덕적 고뇌에 빠질 법한 언변으로 베델리아를 비탄에 젖게 한다. 작가 브라이언 풀러에 의하면, 애초 이 드라마를 처음 기획할 당시에는 한니발 렉터를 통해 “단순히 살인을 저지르는 악마적인 캐릭터의 면모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사랑받는 캐릭터로 만들고, 렉터 박사를 보다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것. 그렇기에 시즌3에서 다른 캐릭터들이 한니발 렉터를 쫓는 이유는, 그가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간적인 매력 혹은 그와의 관계를 그리워하며 쫓아가는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이 얽혀드는 전개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등장했던 “네가 나를 체포할 수 있었던 건 결국 네가 나와 비슷한 존재이기 때문이야”라는 렉터 박사의 유명한 대사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니발 렉터는 혼돈 그 자체인 악역은 아니다. 장기를 적출해 굽거나 생살을 물어뜯는 잔혹성을 지닌 짐승 같은 존재지만 죽음 자체를 좇는 캐릭터는 아니다. 인간의 본성 깊은 곳에 숨겨진 무언가를 사냥 중이지만, 한니발 렉터가 진짜로 갈구하고 사냥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시즌3에서는 좀더 명확하게 제시해줄 거라는 믿음을 가져도 될까. 아이러니하게도 한니발 렉터를 연기하는 매즈 미켈슨은 인간의 잔혹한 본성과 집단 광기를 다룬 영화 <더 헌트>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아무튼 인간 본성을 요리하는 한니발 렉터가 느낄 어둠의 맛이 궁금하다. 6월6일 첫 사냥을 시작할 그의 모습을 숨죽이며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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