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만 맡고 죄가 있는지 없는지 대번에 파악하는 촉.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집요함. 수갑 차고 다니면서 ‘가오’ 떨어지는 행동을 하지 않는 직업적 자존감. <베테랑>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서도철은 삼박자 모두 갖춘 베테랑 형사다. “이런 형사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류승완 감독의 말처럼 관할 사건이 아니기에 신경쓰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책임감과 직업윤리를 가진 그다. 그렇다고 정의감이 불타고, 신념이 투철한 형사를 떠올리면 안 된다. 팀장(오달수)의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또 쫀다”고 꼬박꼬박 말대답하다가도 집에 들어가면 아내 앞에서 꼼짝 못하는 남편이요, 아들이라면 껌뻑 죽는 아버지다. 그런 점에서 서도철은 황정민의 “실제 모습과 여러모로 닮았”다. “워커홀릭 같은 면도 있고, 다혈질이다. 나랑 비슷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전작을 통틀어 서도철만큼 그의 실제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한 캐릭터는 없었다고 한다. “30대 때 이런 인물을 맡았더라면 스스로 좀 불편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다 부질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황정민을 좀 보여주면 어때? (웃음)”
<베테랑>은 서도철과 재벌 3세 조태오의 쫓고 쫓기는 과정을 직선적으로 펼쳐내는 이야기다. 선과 악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서사가 단순하다. 황정민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관객이 이야기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더 묵직하고, 힘 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것도 그래서다. “류승완 감독과 함께 내린 결론은 인물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게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함께 상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황정민의 설명이다. “두 시간 가까이 인물의 한 단면만 보여주면 재미가 없다. 남편 서도철, 형사 서도철, 부하 직원 서도철 등 모두 제각기 다른 모습이지 않나. 그렇다고 각각의 모습이 서도철이 아닌 건 아니잖나.” 서도철의 여러 면모 가운데 매력적인 건 상대가 누구든 표적이 생기면 조금의 망설임 없이 끝까지 쫓아간다는 것이다. “조태오가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 범죄를 저질렀으니까.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게 서도철이 멋진 이유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야 했던 까닭에 현장에서 항상 긴장감을 유지해야 했던 <부당거래>(2010) 때와 달리 이번 영화에서 황정민은 “우당탕 모드”여야 했다. “서도철은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정감 있는 사람이다. 맡은 캐릭터에 따라 현장에서 성격이 잘 바뀌는 까닭에 이번 현장에서는 장난도 많이 치고, 항상 즐거웠다.” 보통 촬영할 때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 습관이 있는데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촬영이 끝난 뒤 동료 배우, 스탭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화기애애하게 영화 얘기를 했다.” 서도철을 포함한 광역수사대가 돈과 권력 모두 갖춘 조태오를 상대로 끈끈한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회식의 힘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매 작품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지만, 황정민에게 <베테랑>은 “편한 마음으로 연기를 한 작품”이다. “지금까지 연기를 하다보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연기를 잘하려고만 했는지…. 즐기지 못했던 시기들이 있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특별한 계기는 없다. 연기를 편하게 하기 시작하면서 연기가 더 좋아진 것 같다. 어쨌거나 관객이 <베테랑>을 보고 ‘속이 다 시원하다’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현재 그는 부산에서 이일형 감독의 <검사외전>을 찍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히말라야>와 <곡성>은 이미 촬영을 끝냈다. 그리고 류승완 감독의 차기작 <군함도>에 출연하기로 했다. “우리가 몰랐던 그 섬의 진실을 보고 관객이 스스로 역사를 판단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일단은 그보다 아사리판이 된 여름 박스오피스 시장을 뚫는 게 우선이다. “톰 아저씨, 그 양반 때문에 죽겠어. 비행기에 매달려 날아가는 걸 보고 하… 나도 크레인에 매달린 적 있는데. (웃음) 자신 있냐고? 물론이다.” 서도철의 배짱이라면 그 무엇이 두려우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