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에는 액션 명장면들이 많다.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으로부터 제작 뒷이야기를 들었다. <톰과 제리>,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 <프로젝트 A> 시리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베테랑>이 바친 오마주도 함께 정리했다.
카센터 액션
영화 초반, 중고차 절도단이 차량을 불법 개조하는 창고 장면에선 카센터의 지형지물을 활용한 슬랩스틱 코미디가 빛을 발한다. 유머러스하면서도 타격감이 센 성룡의 액션이 생각났다고 하자 정두홍 무술감독은 이런 답을 들려주었다. “성룡스러웠나? 이건 황정민스러운 액션, 서도철스러운 액션이다. 서도철이 유쾌하고 통쾌한 캐릭터 아닌가. 앞서 장윤주와 황정민이 투닥거리면서 코믹한 모습도 보여주고. 그러한 서도철의 캐릭터를 반영해 힘이 아니라 지략으로, 꾀와 순발력으로 일대 다수의 싸움을 영리하게 돌파해가는 액션의 합을 짰다.” 중고차 절도단 멤버 배성우가 혼자 쇠로 된 공구에 머리를 맞고 나가떨어지는 장면(‘변방의 북소리’의 심형래를 연상시키는 그 장면), 왕 형사(오대환)가 카센터 바닥에 팬 홈으로 정확하게 낙법하는 장면은 배우들이 잘 살린 경우라고. 이날 제작진의 또 다른 임무는 2억원짜리 벤츠 S클래스가 망가지지 않도록 하는 거였다. 보닛이 찌그러질까봐 보닛 안을 모포 등으로 채웠고, 자동차 문짝이 주저앉지 않게 바닥에 누워 하중을 막는 스탭도 있었다는 게 조성민 PD의 설명이다.
부산항 컨테이너 박스 액션
중고차 절도단과 광역수사대가 미로 같은 부산항 컨테이너 야적장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류승완 감독의 아이디어로 완성됐다. “<베를린> 촬영 당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서 표종성(하정우)과 리학수(이경영)의 추격전을 찍고 싶었는데 촬영허가가 나지 않았다. 그때 못 찍은 한을 여기서 풀었다.” 서도철이 컨테이너와 컨테이너 사이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장면은 콘티상에선 “좁은 곳으로 불편하게 간다” 정도로만 설명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기 베테랑 황정민은 류승완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살짝 정신줄을 놓은 채” 컨테이너에 열심히 제 몸을 부딪혔고, 결과적으로 예상보다 큰 웃음을 만들어냈다. 배성우가 발로 뛰고 오달수가 차로 쫓는 장면은 보이는 것과 달리 꽤 위험한 촬영이었다. 이유는 오달수의 미숙한 운전 실력 때문. “달수 형이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았다. 본인 연기 해야지, 촬영 차와 자신이 운전하는 차 속도 맞춰야지, 배성우에게 물도 주고 수갑도 줘야지, 그러면 한손으로 운전해야 하는데, 이 사람은 기계에 자신을 맡길 줄 모르는 사람이고…. (웃음) 여덟번 만에 오케이가 났는데, 긴 거리를 계속 뛰어야 했던 배성우는 마지막에 진짜 울려고 했다”는 게 류승완 감독의 설명이다.
광역수사대가 전 소장 아지트를 급습하다
영화의 중반부, 좁은 아지트에서 전 소장, 조선족 살인청부업자 2명, 광역수사대가 뒤엉켜 싸우다가 전 소장이 도망가자 서도철이 뒤쫓는, 긴 시퀀스이다. 류승완 감독은 “이 시퀀스를 기준으로 앞부분에서 코미디 액션영화를 보던 관객이 어느 순간 진짜 액션영화로 넘어오게 되는 장면”이라고 소개했다. 정두홍 무술감독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오 팀장과 미스 봉이다. 여러 사람이 뒤엉키는 좁은 방 안 액션 시퀀스는 오 팀장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설계했다”며 “자취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각종 양념통을 뿌리거나 던지는 설정이 오 팀장과 어울렸다”라고 말했다. 서도철이 도망간 전 소장을 쫓기 위해 옥상 위를 뛰어다니는 장면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톰과 제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본 시리즈처럼 격렬하게 연출한 게 아니라 다닥다닥 붙어있는 여러 건물의 옥상을 위험천만해 보이도록 연출했다. 서도철과 전 소장이 톰과 제리처럼 지그재그로 달리면서 말이다”라는 게 류승완 감독의 설명.
조태오의 차가 신세계 백화점 앞 8차선 도로 한가운데에 돌진하다
클럽에 광역수사대가 들이닥쳤다는 얘기를 듣고 조태오가 포드 머스탱을 타고 신세계 백화점 앞 8차선 대로로 빠져나가려다가 차가 많아 여의치 않자, 반대쪽인 명동 한복판으로 방향을 돌리는 시퀀스다. 류승완 감독이 원래는 그보다 훨씬 긴 구간을 정교하게 질주하는 장면을 찍고 싶었으나, 촬영을 위해 지방으로 이동하면서까지 찍고 싶진 않았다고 한다. 로케이션 헌팅 때문에 명동을 둘러보던 중, 류 감독은 퇴근길에 차가 막힌 신세계 백화점 앞 거리를 보면서 이곳에서 찍기로 결심했다. “제작진의 반대가 심했다. 최영환 촬영감독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찍어봐야 속도도 별로 안 난다고 했고, 제작부는 8차선 도로 양쪽 모두 통제해야 한다고 난리났고. 다른 동선 다 포기했는데 이마저도 못하게 되면 영화 안 찍겠다고 드러누웠다. (웃음) 그러다가 황정민 선배와 남대문 경찰서에 가서 촬영 허가를 받으면서 찍을 수 있었다”는 게 류승완 감독의 ‘웃픈’ 얘기다.
이 시퀀스에서 관건은 조태오의 차가 8차선 대로를 향해 질주하기 전에 그를 막는 경찰관 두명과 차례로 충돌하는 장면이다. 문제는 두 번째 경찰관 오토바이와의 추돌 장면에서 조태오의 차가 오르막길에서 내려오고, 오토바이가 내리막길에서 올라가는 동선. 정두홍 무술감독은 “위험천만했다. 가벼운 오토바이가 내려오다가 차와 부딪히면 오토바이 운전사는 안전하게 공중으로 붕 뜬다. 하지만 그 반대일 때는 오토바이 운전사가 공중으로 붕 뜨다가 오토바이 손잡이에 걸리거나 차 아래에 깔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액션스쿨 최고의 카스턴트맨 권귀덕과 충무로 최고의 오토바이 스턴트맨 권지훈이 추돌했는데, 공중으로 뜬 권지훈의 다리가 오토바이에 걸리는 바람에 턱이 오토바이 앞 유리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응급처치팀이 현장에 상주한 까닭에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 치료했다. 다시는 시도하기 힘든 고난도 장면이 탄생한 순간이다.
서도철과 조태오가 격돌하는 명동 거리
서도철과 조태오의 최후 격돌지인 명동 한복판은 실제로는 청주에서 촬영된 장면이다. 청주의 명동이라 불리는 성안길은 <짝패>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마지막 액션 신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류승완 감독은 정두홍 무술감독이 만든 디지털 콘티를 여러 번 “빠꾸”시켰다고 하는데, 조태오의 포악한 공격과 서도철의 반격으로 이루어진 마지막 액션 시퀀스의 실마리는 ‘따귀’였다. “승기를 빼앗겼을 때 뺨따귀를 맞으면 정말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한다. 서도철이 조태오에게 당한 것을 시원하게 갚아줘야 하는 상황에서 따귀 때리는 걸 생각했다. 서부극 <내 이름은 튜니티>(1970)를 보면 뺨 때리고 권총 뽑고, 뺨 때리고 권총 뽑는 것을 반복하는 장면이 있다. 따귀 맞은 상대방은 정말 수치스러운 표정을 짓는데, 문득 그 영화가 생각났다.” 정두홍 무술감독의 얘기다. 류승완 감독은 이 싸움이 “조태오와 서도철만의 싸움이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하는 싸움”이었으면 했다. 그리고 “복잡한 가치관이나 윤리관이 끼어들 틈 없이 오로지 나쁜 놈을 징벌하는 데 감정을 모으는 통쾌한 장면이길 바랐다”. 정두홍 무술감독은 이 액션 시퀀스가 “혈기 왕성하던 20, 30대 때보다 더 나 자신을 혹독하게 대하면서 만든 장면”이라고 했다. “혼자서 미친놈처럼 지지고 볶기도 많이 했는데,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화에 미쳐갔던 것 같다. <베테랑>은 정말로 내게 크레이지한 영화다. 그런데 류 감독은 이런 거 전혀 모른다. 노는 줄로만 알지. (웃음)” <베테랑>의 크레이지하고, 속 시원한 액션은 이렇게 탄생했다.
<베테랑>이 알게, 모르게 바친 오마주
<베테랑>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류승완 감독이 알게 모르게 바친 오마주를 발견하는 재미다.이 영화 속 캐릭터와 캐릭터의 관계에서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1985)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 몇 있다. 일단 서도철 형사와 오 팀장 그리고 총경은 <폴리스 스토리>의 진가구(성룡) 형사, 반장 표숙(동표), 서장(임국웅)과 닮았다. 티격태격하다가도 부하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눈감아주기도 하는, 끈끈한 직장 선후배 사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두 영화 모두 아내나 여자친구가 경찰서까지 찾아와 형사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불만을 터트린다. <베테랑>에서 서도철 아내는 자신의 직장까지 찾아온 최 상무로부터 거액의 돈을 건네받은 것이 불쾌해 서도철에게 “우리 쪽팔리게 살지 말자”라고 경고한다. <폴리스 스토리2: 구룡의 눈>에서 진가구의 여자친구 아미(장만옥)는 연애보다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친구를 이해하는 데 지쳐 경찰서까지 찾아가 “자신을 아껴주는 남자가 더 좋다”고 울음을 터트린다.
부산항 컨테이너 액션 시퀀스에서 카메라가 열심히 도망가는 배성우를 길게 보여주다가 프레임 밖에서 오 팀장이 차를 천천히 몰고 들어와 배성우에게 “차 타고 가라”고 말하는 신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유명한 인천부두 시퀀스에 오마주를 바친 장면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우형사(박중훈)가 용의자(권용운)을 쫓는 긴 추격 신인데, 카메라가 권용운만 담다가 박중훈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면 투숏이 되고, 기진맥진한 권용운이 다시 속도를 내 프레임 밖을 빠져나가기를 수차례 반복하는 명장면이다. 또 <베테랑>에서 막내 형사에게 칼침 놓은 전 소장을 구타하기 위해 CCTV를 가리는 설정은 <폴리스 스토리2: 구룡의 눈>에서 성룡에게 하도 촐싹대서 얄미운 범인을 때리기 위해 동료 형사들이 칠판으로 반장의 방을 가리는 장면(사진)을 떠올리게 한다. <베테랑>에서 컨테이너와 컨테이너 사이의 좁은 길에서 코믹하게 펼쳐지는 컨테이너 추격 신은 <프로젝트 A>(1983)에서 성룡이 좁은 골목길 사이에서 지형지물을 이용하며 악당들을 따돌리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다닥다닥 붙은 옛 건물들을 현대식 컨테이너 더미로 치환한, 창조적 패러디의 훌륭한 사례다. 또 조태오의 차와 서도철의 오토바이가 명동 거리에서 벌이는 추격전은 <프렌치 커넥션>(1971)을 비롯한 1960~70년대 할리우드 형사영화의 에너지를 느끼게 만드는 카 체이스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