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단편애니메이션계의 원더 보이가 나왔다. 우경민 감독은 2014년 연출한 단편 <쟈니 익스프레스>를 공개하며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년 후 <슈퍼배드>(2010)로 유명한 북미 스튜디오 일루미네이션은 <쟈니 익스프레스>의 장편화 계획을 발표했다. 첫 단편으로 대형 스튜디오의 장편 극장판 감독까지 거머쥔 우경민 감독에게 성공의 비결을 묻자 그는 ‘아직은 진행형’이라며 겸손하게 말문을 열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오른 우경민 감독의 신중하면서도 자신감에 찬 이야기를 들어보자.
-<쟈니 익스프레스> 장편 제작 결정을 축하한다.
=감사하다. 아직은 조금 이른 단계인데 공식 발표가 나버려서 인터뷰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부터 이야기는 꾸준히 오갔는데 확정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정확히는 영화개발계약을 통해 개발 지원을 받고 있다. 여기서 좋은 시나리오가 나와 통과한 뒤에 다시 제작계약을 해야 한다. 아직 성공을 말하기엔 한참 멀었다.
-그럼 현재 어떤 작업을 진행 중인가.
=트리트먼트를 잡아나가는 단계다. 일루미네이션의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 중이다. 메일을 자주 주고받고 일주일에 두세번 화상회의를 한다. 꽤 많이 엎어졌는데 최근에는 진척을 보이고 있다. 이 단계를 통과하면 북미쪽에서 작가가 붙어서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후 그 시나리오로 유니버설에서 제작을 하겠다는 결정이 나면 그제야 제작에 들어간다. 넘어야 할 관문이 한두개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가치 있는 도전이라 생각한다.
-알프레드 이미지웍스 소속이었는데 올해 1월 모팩과 합병해 ‘모팩앤알프레드’로 거듭났다. 일신상에 변화가 있나.
=지난해부터 합병 이야기가 꾸준히 나와 올해 1월경 합병했다. <쟈니 익스프레스>가 이슈화되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두 회사가 합쳐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영역을 넓혀가자는 취지였다. 지금 현재는 전략기획콘텐츠 사업본부에 소속되어 있다. 알프레드에 있을 때는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기획뿐 아니라 제작에도 상당수 참여했지만 지금은 온전히 프리 프로덕션 단계의 기획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트리트먼트 막바지라 9할 이상은 <쟈니 익스프레스>에 매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웃음)
-감독 데뷔 과정이 독특하다. 원래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첫 단편으로 <쟈니 익스프레스>를 연출했다.
=한양대 시각패키지디자인학과를 나왔다. 대학 때 막 3D애니메이션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토이 스토리>(1995)를 보고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모션 그래픽에 흥미가 생겨 거의 독학으로 공부했다. 거창한 계획이 있었다기보다는 그저 재미있고 잘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다. 알프레드 이미지웍스에 입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입사 후엔 주로 게임영상과 광고영상을 제작했다. 운 좋게도 하나만 반복적으로 한 게 아니라 기획, 제작 등 여러 파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예전부터 꿈꿨던 연출, 창작욕이 타올랐다. 4년차 즈음에 온전히 한편의 단편을 제작하고 싶어 회사를 그만둘까 생각했다. 더 늦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회사에 이야기했더니 함께 작업해보자고 제의를 하더라. 회사의 도움으로 온전히 단편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그렇게 <쟈니 익스프레스>가 태어났다.
-전혀 경력이 없는 상태였는데 어떻게 그런 전폭적인 지원과 믿음을 이끌어낼 수 있었나.
=타이밍이 좋았다. 알프레드 이미지웍스에서도 자체 콘텐츠가 필요하던 차에 내가 단편 제작에 대한 생각을 밝히니 지원해주신 것 같다. 비결이라면 자신감? 모르면 용감해진다고 내용만 좋으면 얼마든지 어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때는 시작한 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었고. (웃음) 사람들이 재미만 가지고 어디까지 반응해줄지가 궁금했다. 확실하게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면 반응은 돌아오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문제와 정답은 단순한 것 같다. 주변에선 단편 작업이 그 자체로는 수익성이 없는 험난한 길이라고 했지만 결국 작품이 재미있는가 아닌가, 그게 전부이고 제일 중요하다. 그 믿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5월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고, 1천만뷰를 돌파하며 그달의 우수작으로 뽑혔다. 이후 북미 스튜디오들의 접촉도 이어진 걸로 안다. 이 정도 반응을 예상했나.
=어떻게 될 거라는 구체적인 비전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말했다시피 재미가 있으면 반드시 통할 거라는 생각은 흔들리지 않았다. 가급적 전 연령층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고, 그 반응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유튜브를 선택했다. 전세계 수백만명과 직접 소통하고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이런 통로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쟈니 익스프레스>의 가능성과 확장성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여러 북미 스튜디오 중 일루미네이션과 함께하기로 했다.
=일루미네이션은 똑똑한 회사다. 디즈니 픽사가 보여주지 못한 신선함이 있다. 마니아적인 정서를 보편적으로 풀어내는 것에 능숙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함께하면서 느낀 것은 예술가를 존중하는 마인드가 확실하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열린 인재상을 가지고 있다. 감독의 개성을 존중하고 기다려준다는 점이 가장 좋다. (웃음) 물론 아직은 초기 단계이니 좀더 서로를 알아가야겠지만 지금까지는 매우 만족스럽다.
-특촬물, 괴수물 등 B무비의 정서가 묻어나는 점도 재미있다.
=특별히 연출 공부를 따로 한 적은 없지만 여러 영화에서 배울 건 배우고 있다. 애니메이션에 국한하지 않고 영화까지 레퍼런스로 삼는 건 그 편이 훨씬 장르와 볼륨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애니메이션은 자칫 잘못하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빠지기 쉬운데, 영화는 실사이니 그런 실수를 상대적으로 적게 범하는 것 같다.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나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예를 들면 <프로메테우스>(2012)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 장르적으론 SF와 코믹을 선호하는 편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는 진짜처럼 개연성 있는 짜임새에 항상 놀란다. <쟈니 익스프레스>도 SF, 코믹물이지만 너무 멀리 가고 싶진 않다. 이 이야기가 진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믿도록 만들고 싶다.
-단편에서 출발해 북미 스튜디오로부터 직접 제작 지원을 받는 희귀한 사례다. 직접 해보니 어떤 장단점이 있나.
=원래는 <쟈니 익스프레스> 시리즈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스케일이 훌쩍 점프한 상황이다. 기쁘지만 동시에 부담도 크다. 하지만 좋은 건 좋은 거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즐기려 한다. 내게 <토이 스토리>가 그랬듯이 보고 나올 때 알차고 기분 좋은, 평점 9점을 흔쾌히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빠르면 2018년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부디 순조롭게 진행되길 희망한다. 요즘은 ‘조지 루카스: 진부한 비밀’이라는 인터뷰 영상을 자주 되새기고 있다. “밖에선 아무리 진부하게 보여도 그건 어마어마하게 힘든 몸부림의 연속이다. 그것을 우회할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꿈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두 함께 노력 중이다. 나도 그중 한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