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은 김상경(극중 이름은 경수)이 택시를 타고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클로즈업(그러고보면 이만한 클로즈업은 홍상수 영화에선 흔치 않다)으로 잡힌 김상경의 얼굴은 홍상수 감독과 많이 닮았다. 기른 건지 그냥 며칠 안 깎은 건지 판단하기 어려운 염소 수염, 술기운과 잠기운이 반쯤 섞여 정상보다 1.2배쯤 부어오른 얼굴, 나 말하기 귀찮다고 써놓은 뚱한 표정, 입은 지 최소한 사흘은 지난(그렇게 보이는) 하늘색 와이셔츠…. 홍상수 감독과는 어떤 식으로든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기자시사회라 여기저기서 킥킥 소리가 새어나왔다. 어떤 이는 홍상수 감독이 카메오 출연한 것으로 알았다고 한다.
김상경과 홍상수는 닮지 않았다. 나란히 앉아 있으면 확실히 알 수 있다. 12살 차이 띠동갑이고, 한 사람은 매끈한 미남 배우 또 한 사람은 후줄그레한 차림새의 감독이다. 영화에서 둘이 닮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착시효과다. 아니면, 뭔가 말을 만들어내기 위해 너스레를 떠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이건 너무 닮았다. 실제로 촬영현장에서부터 그런 얘기를 두 사람은 많이 들었다. 그래서 가설을 세운다. 김상경은 홍상수적인 것에 취했다. 사람한테 취하면 그를 닮아간다. 부부도 그래서 닮는다. 김상경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확실히 홍상수에게 마음 깊이 휘말렸다. 달리 말하면, 귀공자 전문 TV스타 김상경은 TV적인 세계와 거의 정반대편에 있는 홍상수를 발견하고 그를 자기 속에 받아들였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김상경에게 물어 그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 호기심 - 그 이상한 감독은 지금…
“스케줄 어때요?”
“안 되겠는데요.”
“그래요. 그럼 옛날얘기나 해요.”
김상경은 몇번인가 영화출연 교섭을 받았으나 거절해왔다. 마음에 맞는 시나리오가 없었고, 감독과의 인터뷰엔 일체 응하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의 어느 날, 홍상수 감독이란 사람이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연락을 전해왔을 때 김상경은 뜻밖에 왠지 그냥 만나보고 싶었다(‘왠지’라는 건 중요하다. 아마 대부분의 궁금증은 이 왠지라는 우연의 미궁에 남겨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실 홍상수의 영화들이야말로 인간의 행위에서, 동물적 욕망을 빼면, ‘명백한 이유’라는 게 논리의 신화일 뿐이라는 사실을 꼼짝없이 수긍케 하는 보고서 같은 것이기도 하다). 굳이 따지면 이유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본 기억이 났고, 아주 이상한 감독이 있구나, 라고 그땐 생각했다. 그 이상한 사람, 요즘은 무슨 생각하나. 그런 생각하며 만나러 갔다.
영화촬영은 8월에 시작해야 하고 드라마는 그때까지 끝나지 않으니 스케줄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홍 감독 말대로 옛날얘기만 했다. 두번째 만나서도 이런저런 잡담과 옛날얘기를 했다. 홍 감독은 김상경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듣고 자기 어릴 때 생각하던 것과 많이 비슷하다고 좋아했다. 그 잡담엔 이런 것도 끼어 있다. “왜 컵은 이렇게 둥글까요?”(김상경) “그건 컵 만드는 사람이 알겠지.”(홍상수) 이 썰렁한 문답이 ‘왠지’ 김상경에겐 약간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맞지 않는 스케줄은 어쩔 수 없는 일. “감독님, 영화 잘 찍으세요”, “다음엔 꼭 하자”,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며칠 뒤에 또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나갔다.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하자”라고 홍 감독이 뜬금없이 말했고, 김상경은 ‘왠지’ 그래야 될 것 같아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했다.
# 혼란과 불안 - 메시지가 뭐죠?
“어때?”
“재미있기는 한데요….”
30여쪽의 트리트먼트를 읽고 난 김상경은 약간 실망했다. “이거 내가 혹시 잘못 선택한 거 아닌가?”라는 입 밖에 낼 수 없는 생각으로 머리 속이 약간 복잡한데 홍 감독이 소감을 물었다. “재미있기는 한데요…. 그런데 이게 뭐예요? 뭘 말하자는 건데요? 주제가 뭐죠?” 그렇다. 무릇 영화라면 주제가,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TV드라마가 싫증난 건 자신에 맡겨진 캐릭터의 반복 때문이었다. 자신은 꼭 검사나 부잣집 아들 같은 엘리트였고 사랑에 빠지는 여인은 꼭 결손가정 출신이고, 부모는 꼭 결혼을 반대했다. 김상경에겐 좀더 강하거나 무겁거나 전혀 다른 게 필요했다. 그런데 <생활의 발견>은 좀 이상했다. 뭔가 다른 것 같기는 한데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주제와 메시를 찾으려는 김상경의 질문에 대한 홍 감독의 답. “아, 그런 건 없어. 그냥 봐.”
연극을 전공한 김상경은 영화를 몰랐다. 프린트라는 용어도 몰라서 홍 감독이 “프린트 보러 간다”고 말할 때 ‘감독님은 교수이기도 하니까 학생들 리포트 보러 간다는 말인가?’라고 짐작하며 “프린트가 뭐예요?”라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홍 감독은 “촬영은 네거티브 필름으로 하는데…” 하며 꼼꼼히 알려줬다. 기술적인 질문엔 자상하게 답했지만 정작 자신의 영화에 대해서 홍 감독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잘 알려진 대로 끝내 시나리오는 나오지 않았고, “걱정하지 말고 잠이나 자라”는 홍 감독의 말을 듣고도 촬영 전날까지 김상경은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 힘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제3자의 눈으로 봐도 이건 안전한 코스가 아니다. 영화의 첫발을 가장 비전형적인 작품에 들여놓은 김상경에게 이건 과연 행운일까, 불운일까. 어쨌든 본론이 시작됐다.
#연기1 - 만취 혹은 의지으로부터의 해방
홍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끊임없이 술을 먹고 먹인다. 술을 좋아해서이기도 하고, 술 마시는 장면의 리얼한 연기를 위한 것도 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강원도의 힘>을 찍을 때, 백종학의 연기가 마음에 안 들면, 홍 감독은 스탭들을 잠시 쉬게 한 채 배우를 앉혀놓고 양주 한병을 맥주잔으로 한번에 나눠마셨다. 만취와 홍상수의 세계는 깊은 통로로 이어져 있다. 홍상수 감독은 머리보다 몸을 믿는다. 몸은 머리보다 훨씬 덜 오염돼 있다. 적어도 만취상태는 몸이 머리로부터 혹은 욕망이 의지로부터 해방돼 있다. 그 상태에 자주 이르러야 숙취에서 깨어나도 몸이 그걸 어렴풋이라도 기억한다(영화 속에서 홍상수의 인물들은 완전한 만취상태에 있지 않다. 엉뚱한 지점에서 관습과 의지가 개입한다. 그 지점의 포착이 홍상수적 디테일의 열쇠다).
그 해방의 어떤 단계까지를 일상적 용어로는 망가진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김상경도 추상미도 예지원도 자주 만취해야 했고, 망가져야 했다. 술을 먹어도 잘 안 취하고 얼굴색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김상경은 남보다 훨씬 많은 양의 소주를 들이부어야 했다. 다행히 홍상수 감독은 가위바위보 게임이라는 걸 창안해서(지는 사람이 술을 마시는 아주 단순한 게임이다) 이른 시간 내에 많은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생활의 발견> 팀이 소비한 소주는 촬영기간 두달여 동안 20개들이 박스로 모두 200여 박스.
드라마가 100m 달리기라면 영화는 마라톤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마음편히 소주의 공세에 몸을 맡긴 김상경은 그렇게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몸도 7kg이 불어나, 근사한 귀공자의 자태는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몇 차례의 베드신에서 그의 불어난 허릿살이 화면의 중심에 등장한다). 그러고보니 <생활의 발견> 전체가 다름 아닌 한 남자가 개판치면서 망가지는 얘기다. 메시지나 주제에 대한 회의를 이 이상한 만취 여행의 쾌감이 밀어내고 있었다. 김상경은 어느샌가 자신이 일탈을 꿈꾸고 있었으며, 지금 그걸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연기2 - 버릇과 여담, 그리고 뒤섞기
김상경은 홍 감독에게 별다른 생각없이 말한 자신과 관계된 많은 것들이 대사로 몸짓으로 에피소드로 영화에 반영된다는 사실에 놀랐다. 알고보니 예지원도 추상미도 그랬다(이건 이전의 배우들 그리고 꽤 많은 영화계 지인들이 경험해온 일이기도 하다). 그중 하나가 버릇과 사소한 체험담이다. 홍상수 감독은 다른 사람들의 버릇에 예민하다. 아니 버릇을 좋아한다. 버릇은 이성이나 의지로부터 몸이 순간적으로 자유로워지는 상태다. 그래서 버릇에는 특정한 의미가 없다. 홍 감독은 채집된 무의미한 버릇을 영화 속에 그대로 밀어넣는다. 분명한 줄거리가 있는데도 버릇, 몸이 스스로 작동하는 그 무의미의 순간들이 이곳저곳에 출몰하면서 인과관계와 동기화는 자꾸만 왜소해진다. <생활의 발견>에는 술 마실 때 몸 흔들기(<강원도의 힘> 때는 술잔 돌리기였다), 당황할 때 손부채질하기(이건 김상경의 어릴 적 여자친구의 버릇이다)를 비롯해 많은 무의미한 버릇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주로 세 배우들과의 인터뷰 혹은 술자리에서 취재된 것들이었다.
사소한 체험담이나 여담도 비슷한 효과를 발휘한다. 별로 대수롭지 않아서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배우들의 체험담이 영화에서 곧잘 되살아난다. 예지원이 홍상수 감독과 인터뷰하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종종 너구리처럼 눈이 붓는다고 예사롭게 말했는데, 이건 <생활의 발견>에서 되살려져 가장 웃기는 장면의 하나가 된다(좀더 확실히 붓게 하기 위해 촬영 전날 밤 라면을 먹이고 계속 울렸다고 한다). “내가 텅 빈 식당에 가면 손님들이 몰려오고, 내가 타는 택시는 꼭 합승이 잘 된다”는 대사는 김상경이 촬영 전에 생각없이 한 말이다. 물론 어느 쪽도 이야기 전개에 필요없는 설정이거나 대사다. 이걸 두고 배우들에게 바로 자신을 연기시킴으로써 좀더 자연스런 연기를 이끌어낸다, 라고 생각하는 건 맞지 않다. 김상경은 촬영 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홍 감독에게 “이 영화가 김상경을 그린 거면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홍 감독의 답이 묘했다. “그건 아니야. 이건 너도 아니고 경수도 아닌 거야.”
홍상수는 뒤섞는다. 어디선가 채집된 혹은 자신의 버릇과 여담을, 직관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판단과정을 통해 인물들에게 나눠준다. 홍상수의 인물들은 누구나 이야기 전개와는 관계없이 텅 빈 행위와 말을 수시로 보여준다. 그게 자연스럽다거나 리얼하다고만 말하는 건 부족하다. 오히려 종종 어색하다. 묻기 좋아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김상경은 자주 항변했다. “누가 이렇게 말해요? 감독님은 그러시나보죠?” 선영(추상미)에게 거부당한 경수(김상경)는 상상을 초월하는 괴이한 행동을 한다. 곁에서 지켜보던 식당 아줌마가 “뭐 하려고 그래요?”라고 묻자, 경수는 “부도덕한 자를 징벌하려고요”라고 말한다. “아니, 징벌이란 말을 누가 써요? 너무 이상해요”라는 김상경의 불평에 홍 감독은 태연하게 “안 이상해. 그냥 해”라고 대꾸했다(<오! 수정>의 정보석은 “피가 뭐예요?”라고 괴상하게 물어본다). 김상경은 결국 이렇게 생각했다. ‘경수라는 인물에는 나와 경수와 감독님이 골고루 섞여 있다.’ 홍상수의 인물들이 전형성과는 다른 차원에 놓여 있으며 자연스러움이나 어색함의 경계 너머에 있다는 걸 김상경은 조금씩 눈치채갔다.
# 연기3 - 리얼리티 혹은 현장성
엉뚱한 대사와 몸짓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이던 홍상수 감독이 어떤 대목에선 강박적으로 리얼리티에 집착했다. 경수와 명숙(예지원)이 동침하고 아침에 눈뜨자마자 기막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촬영 전날 두 사람을 각방에서 재웠다. 제3의 방에 세팅을 갖춰놓고 아침 일찍 홍 감독이 김상경을 깨웠다. 김상경이 눈을 뜨면서 무슨 말을 하려 하자 홍 감독이 입을 막았다.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침대에서 눈을 떠 명숙에게 잠에서 깬 첫목소리로 대사를 해야 한다. 연습은 필요없다. 중요한 건 첫목소리여야 한다. 예지원도 입을 꾹 다문 채 퉁퉁 부은 눈에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한번은 홍 감독이 뭔가 복잡한 숫자를 열심히 쓰면서 계산하고 있기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김상경은 감독님이 또 무슨 이상한 거 꾸미고 있나 싶어 뭐 하는지 물었다. 경수가 서울 선배한테 받은 돈을 100만원이라고 가정할 때, 여비가 경주에서 다 떨어지지 않았는지 계산하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엔 술값, 밥값, 여관비 등이 촘촘히 기록돼 있었다. 술 취한 장면에선 실제로 그만큼 취하게 만들어놓고 연기를 시켰다는 건 반복할 필요없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김상경이 극중에서 들고 다니는 가방 속에는, 가방을 열어 보여줄 일이 없으니 어떤 게 들어있어도 관계없지만, 정말 경수처럼 팬티와 양말 그리고 한권의 책만 넣어다녔다. 몸은 설정에 가장 가까운 상태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홍 감독은 리얼리티에 집착한 게 아니라 현장성에 집착한 것이다. 리얼리티는 목적 아닌 설정이고 출발점일 뿐이며, 그걸 따질 때조차 인위성의 최소화가 목적이다. 거기에서 출발해 이르게 될 어떤 새로운 리듬과 상태가 홍상수 영화의 고지다. 그러나 감독의 머릿속에만 있을 설명될 수 없는 그 리듬을 배우가 어떻게 짐작하고 어떻게 맞춰줄 수가 있을까.
# 김상경의 발견
어느 순간 김상경에게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라는 깨달음이 왔다. 테이블에 숟가락을 놓는 연기는 속도와 각도에 따라 수십 가지가 나올 수 있다. 홍 감독이 원하는 건 그중의 하나이며 그건 설명되지 않는다. 때로 극히 단순한 동작인데 10차례 이상 재촬영해야 했다. 어느 때부터인지 박자와 타이밍이 보였다. 말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건 자신이 가장 택하지 않을 것 같은 타이밍과 박자를 택할 때 이루어졌다. 적어도 경주장면들에선 홍 감독의 한두 마디만으로도 김상경은 홍상수의 리듬으로 연기했다.
김상경은 <생활의 발견>을 좋아한다. 관객으로서 좋아한다. 촬영할 때, 촬영 직후에 같은 장면을 수십번 모니터로 봤지만 그땐 몰랐다. 완성된 영화는 보고 또 봐도 새로운 게 보였다. 그래서 계속 봐도 또 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무지 웃었다. 제일 놀라운 건 경수에게서 자기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보인다는 것. 완전히 낯선 것이 자기 속에서 나온다는 건 이전의 연기 경험에선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건 홍상수의 얼굴이기도 하며, 우리가 감추며 모른 척해온 또 다른 우리의 얼굴이기도 할 것이다. 낯선 자아로의 일탈을 꿈꿨다면 김상경은 가장 멋진 여행을 했다.
문제는 있다. <생활의 발견>은 그냥 영화가 아니라 홍상수의 영화다. 여기에서 그가 찾은 어떤 균형과 경지를 다른 영화들이 고스란히 필요로 하진 않을 것이다. 안 그래도 요즘 그는 뭘 해도 재미없고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라고 한다. 드라마 연기도 할 생각이고 영화도 기회가 되면 또 할 생각이지만 선뜻 내키는 일이 아직은 없다. 김상경은, 이 낯설고 이상한 여행의 후유증으로 독립된 자아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가, 라는 얼마간 심각한 질문을 던지며 개봉일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