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생활의 발견>의 감독 홍상수 [2] - 홍상수 인터뷰
2002-03-15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달라졌다고? 그렇게 봤다면 나쁘지 않다”

-시나리오 없이 트리트먼트로 출발하여, 현장에서 모든 것을 썼다고 들었다. 공간이 주는 어떤 특정한 느낌이 있는가.

=여러 가지가 있다.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긴장감이나, 뭐가 정해져 있을 때는 안 되면 이걸로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 있는데 아예 정해지지 않았을 때는 계속 생각을 하게 된다. 배우들이 전날 한 말도 있을 수 있고, 트리트먼트 과정에서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부분도 있고.

-처음 장소를 헌팅할 때와 촬영 당시 공간에 대한 느낌이 바뀌는 경우가 있는가.

=헌팅 때는 몰입을 미룬다. 내가 그런 타입이다. 마지막 결정의 순간까지 완전 몰입을 미룬다. 헌팅 때는 채집 정도의 몰입이다. 촬영 직전에 몰입해서 본다. 헌팅 때와 달라지는 것은 있다. 그러면 거기에 맞춰서 한다. 춘천 공지천 호수를 갔더니, 헌팅 때에는 없던 영화세트가 들어와 있었다. 원래는 그쪽을 통해 넓은 호수로 나아갈려고 했는데, 없던 게 생겨 풍경이 바뀌었다. 그것도 괜찮다. 더 아담하고 지방의 작은 나들이 코스같은 그런 기분이 나오게 카메라 위치를 바꿨다.

-<강원도의 힘> 인터뷰 때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영화감독을 주인공으로 해서는 못 찍을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주인공은 영화배우인데, 많이 가까워진 것 아닌가.

=예전이나 비슷하다. 대학강사 때의 디테일 가져오는 과정은 비슷하다. 감독과 다투는 모습도 아는 배우가 해준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가 기억나서 가져왔다. 모방이라는 패턴이 있으니 배우라는 직업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배우란 누군가를 흉내내는 직업이고. 배우기 때문에 크게 다를 건 없지만.

-이전 영화에서는 감독이 인물들을 몰고간다는 느낌이었다. <생활의 발견>에서는 자유로워진 것 같은데.

=처음에 두 가지 조각이 있었다. 여행경로와 모방. 그것과 같이 생각난 건데 정말 일어남직한 이야기 같은 7일간의 여행. 보편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누가 7일간 여행 갔다온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같은 의외성, 자연스러움. 그런 보편적인 연애담같은 것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과거에는 형식적으로 아주 치밀한 영화들이었는데. 이번에는 형식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가.

=그게 형식이다. 인위적인 구성이 드러나지 않는, 그냥 흘러가는 것 같은. 그런데 그 진행이, 느낌이 사람들 여행에 있음직한 자연스러운 경로를 가졌으면 했다. 그게 구성의 뼈대다. 구성이라는 것을 하지 말자.

-<생활의 발견>이란 제목은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언제나 영화제목이 내용과 따로 논다. 어떤 학생에게 요즘 뭐 읽니 했더니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을 읽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귀에 딱 박혔다. 너무 거창한 것 같고 오해할 수도 있어 안 쓰려 했는데. 왜 좋을까. 말 자체의 원초적인 그냥 생활, 그냥 생활의 발견. 발견해 주겠다던가 생활을 정리해서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득한 느낌. 뚜렷하게 각을 갖지 않는, 의미없는. 봄날의 파란 하늘같이 멍한.

-작품들에 대해 냉소적이고 비관적이란 평가가 많은데.

=자연인 나는 냉소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왜 그렇게 말할까. 사람들이 뭘 만들어서 표현할 때 자연인일 때보다 조금 더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자연인일 때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데. 있는 모양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조화상태를 유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어떤 현상이 있으면 그걸 조금 왜곡해서 수용하고 편안하게 보려고 한다. 그걸 표현할 때 더 심해진다. 남에 대한 의식 때문에. 그러다보니 서로의 의식 속에서 알아가는 것들에서 사실 우리하고 다른 모습들을 우리라고 여기며 살고 있다. 그것이 더 좋은 방식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고.

-<생활의 발견>은 조롱이나 냉소적인 시선이 많이 누그러들고, 그냥 바라본다는 느낌이다.

=조롱은 모르겠고, 자극이 필요하고,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뭐라고 하는 것은 건강한 일이다. 그런 게 많이 없어졌다고는 생각지 않고 이번에는 그런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갖고 그냥 편안한 작은 소품같은 연애담을, 구성의 인위성이 없어진 상태에서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물이다. 그러다보니 남들 보기에 그런 게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느꼈다면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한다.

-당신의 세상에 대한 태도를 비관적이라 부를 수 있나.

=아니. 인간은 꽤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알 수 없는 것. 어떤 커다란 주제에 대해서 "왜 그래?" 이렇게 물으면 대답이 안 나온다. "왜 내가 이렇게 생겼냐?" 물어도 대답은 안 나와. 사실 우린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우리는 알고 싶어하는 욕망이 그만큼 강해서 뭔가 이상한 것을 갖다 붙이고는 논리적인 척 안다고 하고 싶어한다. 그것들을 그냥 쓸데없는 기름기 같다고 생각해서 그걸 없애면 세상이 클리어하게 설명될 수 있고 이해가 편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상태가 편하다. 모방패턴이라고 한 것, 기억이 정확하지 못하다는 것을 짜봤다. 보통 장르영화들을 보면 이데올로기가 있다. 선악미추가 있다. 그것도 패턴이다. 그런 패턴으로 조각들을 묶어놓으면 기존의 이데올로기와 싸워서 이길 순 없다. 그건 이미 우리 세포에까지 들어와 있는 거니까. 그렇지만 다르게, 이렇게 패턴을 묶어서 볼 수 있다는 것을 잠시만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자극이나 해방감을 주는 것 같다. 대안이나 굉장히 중요한 발견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묶어볼 수 있다. 다르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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