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개봉 9월16일)를 들고 이준익 감독이 돌아왔다. 아버지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갈등, 이어지는 사도의 죽음, 그리고 왕이 된 사도의 아들 정조까지. 무려 삼대에 걸친 30여년의 시간을 125분의 러닝타임 안으로 운반해왔다. 언어로 유희하며 역사의 이면을 들춰냈던 <황산벌>(2003)과 <평양성>(2010), 신명나는 마당극에 광대를 뛰놀게 했던 <왕의 남자>(2005)와 비교해봐도 <사도>는 이준익 감독의 전작들 가운데서도 가장 묵직한 대설(大設)이다. 유희적 인간에 대한 탐구를 줄기차게 해오던 감독이 구중궁궐 왕족의 세계로, 그중에서도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게 만든 비극의 역사로 시선을 옮긴 것이다. 그러니 이준익 감독의 <사도>가 궁금해질 수밖에. 감독과 그의 오래된 영화적 동지들인 <사도>의 시나리오작가 조철현, 이송원, 오승현의 말을 빌려 <사도>에 대한 짧은 글을 전한다. 이어 이준익 감독과의 긴 문답을 지면에 옮긴다.
‘사도세자는 왜 하필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 <사도>의 질문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 이준익 감독에게 <사도>의 이야기를 처음 제안한 <사도>의 시나리오작가, 조철현 전 타이거픽쳐스 대표, 이송원 작가, 오승현 현 타이거픽쳐스 대표의 질문이기도 하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말할 수 있지만 정작 그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쉽사리 말하지 못한다. <사도>는 사도라는 한 사람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서 영화적 해석으로 짐작 가능한 정황과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의 영화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사도세자는 왜 하필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 사도가 아버지 영조를 죽이려는 역모를 꾀했다면 영조는 사도를 의금부에 넘겨 국법에 따라 처벌하면 됐을 일이다. 하지만 영조는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고 집안일이다. 나는 지금 가장으로서 아비를 죽이려고 한 자식을 처분하는 것”이라며 사도를 기어이 뒤주에 가둬버린다. 8일 후, 사도는 뒤주 안에서 죽음을 맞았다.
“사도만의 이야기였다면 영화화하지 않았을 것”
그렇다면 영조는 어째서 이러한 선택을 했을까. <사도>는 이 질문을 풀기 위해 몇 가지 전략을 취한다. 영화 전체에서 단 하나의 사건인 사도의 비극적인 죽음을 극의 중심에 두고 영조, 사도, 정조로 이어지는 삼대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도만의 이야기였다면 영화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준익 감독의 말대로 <사도>는 이들 삼대에 걸친 역사를 영화화하는 데 주력한다. 사도 개인을 울화병과 광증에 시달리는 인물로 그리지 않고 그의 화의 원인을 사도 주변의 인간관계에서 찾아보려 애쓴다. 오승현 작가는 “영화가 다소 길어지더라도 사도를 대상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삼대를 그리는 일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사도>의 형식적 선택 또한 흥미롭다. 사도가 뒤주에 갇힌 첫쨋날부터 여덟쨋날까지, 그 매일이 하나의 시퀀스가 된다. 사도가 뒤주에 갇힌 기간이 8일이고 극 전체는 8개의 시퀀스로 이루어졌다. 시퀀스마다 짧은 현재와 긴 과거가 있고 중간 시퀀스에서는 과거의 과거가 병렬적으로 나열돼 있다. 이야기의 기준이 되는 시점, 그러니까 극중의 현재 역시 사도가 뒤주에 갇혀 있는 8일이다. 이 시점을 중심축으로 삼아 영화는 40대의 영조가 늦둥이 사도세자를 어여삐 여기는 모습, 공부보다는 개 그림을 그리며 땡볕에 나가 노는 데 관심을 보이는 어린 사도를 못마땅히 여기는 영조, 대리청정을 하는 사도에게 호통을 치는 영조 등을 플래시백으로 보여준다. 플래시백으로 거슬러 올라간 과거가 시작되는 인물도 영조와 사도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때론 혜경궁(문근영)으로, 때론 정순왕후(서예지)로 옮겨가며 이야기가 직조된다. 삼대의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펼쳐져 기승전결을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시간과 시점을 이동한다. “삼대 이야기를 영화로 소화할 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물리적인 한계를 돌파하고 <사도>를 보다 입체적으로 그려가려는 시도”라는 게 오승현 작가의 설명이다. “애초의 시나리오에는 플래시포워드 즉, 현재 시점에서 14년 후 왕이 된 정조까지 보여주는 구성이 있었다”고 조철현 작가는 덧붙인다. 이처럼 <사도>는 처음부터 왕이 된 정조가 혜경궁의 환갑잔치를 열어 어머니뿐 아니라 죽은 아버지 사도까지 애도할 마음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이 기획을 받아든 이준익 감독은 당시에 본 고바야시 마사키의 <할복>(1962)에서 하나의 영감을 얻었다고 전한 바 있다(<씨네21> 948호, ‘감독 표준계약서가 영화산업 상생의 길 이끌까’ 인터뷰 중 불현듯). 그때 그는 “현재와 과거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사실보다 진실을 추구하는 플롯을 발견했다. 기록은 사실을 남기는 거라지만 그 기록조차도 과연 사실일까라는 의심은 항상 창작자들에게 좋은 힌트가 된다”고 말했다. 다시 만난 이준익 감독은 이에 대해 좀더 명확한 대답을 들려준다. “<할복>에서 영감은 받았으되 지배받지는 않았다. <사도>를 봤을 때 그 영화가 떠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학자는 사료와 고증을 통해, 기자는 팩트를 통해 진실에 접근한다. 감독은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허구를 통해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팩트에 근거한 진실과 허구를 통해 도달한 진실 중 무엇이 더 진실되다고 할 수 있는가. 섣불리 답할 수 없다. 그럼에도 플래시백을 통해 <할복>과 <사도>는 후자의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단순히 플래시백을 썼다는) 방법론의 (유사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에 <사도>는 이준익 감독의 작품 가운데서도 이야기의 구성과 구조에 대한 고민이 가장 깊은 작품이다.
영화적 상상력을 위한 기초 공사에 해당하는 자료 수집은 세명의 작가가 짊어졌다. 출판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한중록>과 각종 문헌, 논문 자료를 읽어내려갔다. 씨네월드 시절부터 이준익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황산벌>,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평양성> 등의 각본을 써온 조철현 작가는 “감독님과 오승현 대표 등과 함께 사극을 만들어온 영화집단으로서 그동안 사료를 읽는 법을 많이 배웠다. 외적인, 역사적인 평가가 꼭 내용의 정확성을 담보한다고 볼 수 없다. 사료는 충분히 검토하되 그 행간과 맥락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 속에서 영화적 서사와 감정의 진실을 포착하는 게 우리의 몫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의 영화적 상상력에는 극중에 쓰인 말의 맛을 살리는 것도 해당될 것이다. <사도>는 사극 하면 떠올릴 법한 정형화된 말투를 덜어냈다. 예컨대 영조가 일침을 하고 있는 데서 웃음보가 터진 어린 사도에게 영조는 “너 왜 웃니?”라고 말한다. “~느냐?”가 아닌 “~니?”가 주는 경쾌한 끝맺음은 배우 송강호의 어조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난다. 영조가 대리청정을 하는 사도에게 “네가 국방에 대해 뭘 알아? 함경도 가봤어?”라고 윽박지를 때도 말은 인물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낸다. 형식화된 장르의 어법과 말투를 벗어나려는 건 이준익 감독의 영화 안에서는 이미 익숙한 일이다. <황산벌>에서는 ‘쿠데타’, ‘쇼부’라는 단어가 등장했고,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선조(김창완)는 참수형을 당한 시신에 대고 “너 내가 입조심하라 했잖아”라고 말했다.
다양한 해석으로 열린 이야기
<사도>는 그 자체로 정치적, 문학적, 영화적으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열린 텍스트다. 영조와 사도의 부자관계를 놓고 보면 세대 갈등의 고리가 있다. 무수리 출신의 어머니를 뒀다는 데서 오는 영조의 콤플렉스와 아버지를 향한 사도의 인정투쟁도 읽힌다. 여기에 왕의 역할을 두고 영조와 사도의 입장과 온도 차이를 확인할 수도 있다. 사도가 아버지를 향해 “당신이 지금까지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해봐. 이게 임금이 할 짓이야”라고 말할 때나 영조가 “왕은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신하들의 결정을 윤허하고 책임을 묻는 자리다”라고 단언할 때 현대 정치 현실에 대한 기시감이 드는 건 자연스럽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의 가지들을 뭉쳐내는 <사도>라는 드라마의 힘은 비극이라는 이야기의 원형에서 온다. 애초부터 이준익 감독과 세명의 작가는 “비극을 통해 인간의 칠정(七情: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의 드라마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컸다. 감독은 “비극성을 통해 인간 내면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고 그걸 통해 “죄책감을 정화하고 해원(解寃)하며 화해에 이르는 것”이라 말한다. 조철현 작가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죽음이 너무 쉽게 말해지고 있어 안타깝다. 우리의 현실이 즐거움을 공유할 수 없다면 적어도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만큼은 슬픔과 애도의 마음이 들길 바란다. 관객이 <사도>를 보는 순간만큼은 슬픔(을 서로 위로할 수 있는)의 공동체를 공유하길 바라본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