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시네마&토크에서는 단순한 영화 관람을 넘어 영화가 과학에 던지는 화두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꼼꼼히 읽고, 뜯어보고, 다시 말하는 시간. 영화의 상상력, 영화 속 여러 과학기술이 오늘날 우리를 어떻게 자극할지 미리 짚어봤다.
<매트릭스>(1999)
SF영화의 역사를 바꾼 워쇼스키 남매의 화제작. 2099년 기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인류는 매트릭스의 노예가 된다.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기계가 만든 인공자궁에 갇혀 기계의 전력공급원 역할을 하고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 속에서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살아간다. 매트릭스의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한 네오(키아누 리브스)와 네오를 찾아 구출하려는 모피어스, 트리니티 등 동료들의 활약이 펼쳐진다. 우리가 현실을 인지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지,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는 경계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인 작품이다. 수많은 패러디와 오마주의 출발점이 된 탁월한 영상 스타일은 물론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철학적인 질문들로 인해 가상현실에 관한 창세기가 된 영화. 이후 이어진 <매트릭스> 3부작의 출발점으로 가상현실이 가능한지에 대한 큰 질문 이외에도 호버 크레프트, 인간 전지 등 여러 가지 흥미로운 과학기술들이 눈에 띈다. 상영 후 <씨네21> 주성철 편집장이 진행하는 시네토크에서 김상욱 물리학 교수가 영화 속 양자역학, 가상현실 등에 대해 알려줄 것이다. 손승우 응용물리학과 교수가 진행하는 시네도슨트도 마련되어 있다.
<썸머워즈>(2009)
떠오르는 신예에서 이제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대들보로 자리잡은 호소다 마모루의 기발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 전세계 사람들이 이용하는 가상 네트워크 ‘OZ’에서 보안 관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천재 수학 소년 겐지는 짝사랑하던 선배 나츠키의 부탁으로 시골 여행에 따라가게 된다. 그 와중에 사이버 세계 OZ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큰 위기에 빠지고, 겐지와 나츠키의 가족은 사이버 세계를 구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한다. 시골의 목가적인 풍경과 사이버 세계의 전쟁을 대비시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판타지 애니메이션으로, 작품 속 가상세계인 OZ는 현재 우리가 이용 중인 SNS의 근미래 확장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가치와 그 속에서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들에 대해 일깨운다. 일상생활의 궁금증을 물리학적으로 연구하는 유쾌한 과학자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와 전상일 게임디렉터가 각각 작품 속의 기발한 요소들을 짚어줄 것이다.
<인셉션>(2010)
크리스토퍼 놀란은 언제나 관객에게 놀라움을 안겼지만 <인셉션>만큼 시각적인 충격과 지적인 게임을 즐긴 적도 드물다. 드림머신이라는 기계를 이용해 타인의 꿈속에 들어가 생각들을 빼내올 수 있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돔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최고의 전문가가 타인의 머릿속에 생각을 심어놓고 오는 ‘인셉션’ 작전을 지휘한다. <인셉션>은 ‘자각몽’, ‘꿈속의 꿈’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놀라운 영화다. 아카데미상 촬영, 각본, 음향편집, 시각효과상 수상작으로, 정교한 연출과 설계로 타인의 무의식 속을 직접 탐험하는 듯한 감각을 안긴다. 인간의 무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부터 인간의 꿈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의식과 기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다양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매트릭스>, <다크시티>(1998), <13층>(1999) 등 가상현실로 유명한 작품들의 영향하에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기존의 가상현실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디자인된 인간의 인지작용과 반응에 대한 해석이 인상적이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이 진행하는 시네토크에서 뇌과학자로 유명한 정재승 교수가 영화 속 궁금증을 풀어줄 예정이다.
<빅 히어로>(2014)
마블 코믹스와 디즈니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로봇애니메이션. 천재 공학도 테디가 개발한 치료용 힐링로봇 베이맥스와 테디의 동생이자 또 다른 천재 소년 히로가 정체불명의 악당으로부터 도시를 구한다는 내용. 뼈대는 여느 히어로영화와 다를 바 없지만 핵심은 힐링로봇 베이맥스의 진화 과정에 있다. 역대 가장 푸근하고 사랑스러운 로봇 중 하나인 베이맥스를 악당과 맞설 수 있도록 개조해나가는 히로의 모습이나 영화 속 각종 과학기술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좀더 다가가기 쉬운 존재로서의 로봇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것은 물론, 근미래에 우리에게 제공될 로봇 서비스를 짐작해볼 수 있는 작품. 기존의 로봇물이 기능적인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빅 히어로>는 우리가 로봇에 바라는 역할이 무엇인지 새삼 질문하게 만든다. 작품의 매력 포인트는 여느 로봇과 차별화되는 베이맥스의 디자인이다.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오준호 교수와 로봇공학자로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진 한재권 박사가 귀요미 로봇 베이맥스의 이모저모와 로봇의 미래에 대해 알려줄 것이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
무한 반복되는 시간 안에서 점차 강해져가는 슈퍼 솔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타임루프는 영화가 즐겨 사용해온 소재이지만 <엣지 오브 투모로우>처럼 시간 설정을 제대로 설명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한 영화는 드물다. 사쿠라자카 히로시의 라이트 노벨 <올 유 니드 이즈 킬>을 원작으로 한 이 이야기는 타임루프라는 소재 그 자체가 영화의 핵심이자 인물의 캐릭터에도 영향을 끼치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전장 한복판에서 죽음을 반복하며 경험치를 쌓는 빌 케이지(톰 크루즈)는 전장의 여러 요소를 파악해나가며 한 걸음씩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죽지 않는, 아니 죽어도 살아나는 주인공이 펼치는 액션 쾌감이 만만치 않지만 그보다 눈길이 가는 건 게임 진행과 유사한 영화의 서사와 전장의 설계다. 타임루프가 과연 가능한 것인지의 여부보다 그로 인해 인물과 인물의 시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가 궁금해진다. 입자물리학의 세계를 대중적으로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데 힘써온 이종필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가 타임루프를 비롯한 영화 속 과학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이다.
<이색지대>(1973)
<쥬라기 공원>의 원작자 마이클 크라이튼은 숱한 할리우드영화의 영감을 제공해왔다. 과학에 기반한 그의 작품들은 여러 영화와 TV드라마로 제작되었는데, 그가 직접 메가폰을 잡은 작품도 무려 7편이다. 그중 마이클 크라이튼이 감독을 맡은 첫 영화 <이색지대>가 이 영화제 유일한 15세 섹션으로 상영된다. <이색지대>는 제목 그대로 서부극과 SF를 결합한 독특한 색깔의 영화다. 서부시대, 로마시대 등 여러 테마로 운영되는 최첨단 시설의 휴양지에 사람들이 몰리고 단짝 친구 마틴과 블레인도 휴가차 서부지대를 방문한다. 색다른 즐거움도 잠시,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급기야 총잡이 로봇들이 폭주를 시작한다. 총잡이 로봇 역을 맡은 율 브린너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인데, 스스로의 얼굴을 떼어내고 수리하는 장면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 중 하나. <황야의 7인>의 크리스를 모델로 한 총잡이 역할을 크리스 역을 맡았던 율 브린너가 직접 연기한다는 점도 재미있다. <터미네이터>와 <로봇캅>의 전신이 된 장면들도 적지 않은데, 1976년 속편 격인 <퓨처월드>도 제작되어 성공을 거둔, B급 정서의 매력적인 명작 SF서부극이다. <HBO>에서 2016년 방영을 목표로, TV드라마 <웨스트월드>로 리메이크 중이니 스크린에서 미리 관람해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